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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오픈골프 최고령 우승 / 최상호 프로

淸潭 2010. 2. 1. 19:40

[초대석]KT&G 매경오픈골프 최고령 우승 최상호 프로




‘한국골프의 살아있는 전설’ 최상호 프로. 그의 평상시 모습은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다. 하지만 그린에만 서면 그의 눈빛은 이글거린다. 얼마전 최고령 우승 기록을 갈아치운 그는 “은퇴하는 그날까지 목표는 우승”이라며 전성기 못지않은 승부욕을 불태웠다. 박경모 기자

‘퍼팅의 귀재’ 최상호(崔上鎬·50). 그는 2005년 5월 29일을 결코 잊을 수 없게 됐다. KT&G매경오픈골프대회에서 국내 최고령 우승을 차지한 날. 그는 난생 처음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이전까지 국내 최다승인 42승을 거뒀건만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독종’이다. 중2 때 뉴코리아CC 연습생으로 골프채를 처음 잡은 뒤 산전수전 끝에 1978년 여주오픈에서 감격적인 프로 첫 우승을 거뒀을 때도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그였다.

흔들림 없던 그도 단 1승도 추가하지 못한 지난 9년간은 고통스러웠다. 추락하는 자기 자신을 참을 수 없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하루 평균 2갑을 피우던 담배를 5년 전 딱 끊었다.

“물론 금단현상이 심했죠. 게임이 잘 풀리지 않을 땐 담배생각에 미치겠더군요.”

이후 단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고 마침내 시니어투어 입문 나이인 올해 정규투어에서 목마른 1승을 추가했다.



골프장비 성능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노장이 드라이버샷 평균 280야드 이상을 날리는 비결은 무엇일까.

“담배를 끊었더니 모든 게 좋아지더군요. 항상 충혈돼 있던 눈도 맑아졌고 연습량(하루 볼 1000개 이상, 일주일 평균 4라운드)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유지할 수 있죠. 그런데 담배회사가 스폰서였던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 이런 얘기해도 되나요(웃음).”

그는 웨이트트레이닝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근육 안쪽을 발달시켜야 장타를 칠 수 있습니다. 허리를 구부린 자세에서 앞가슴까지 끌어당기는 헬스도구를 주로 이용하죠. 그렇게 하면 팔다리 안쪽과 허리 근육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습니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매경오픈에서 우승상금 1억 원을 받아 올 시즌 상금랭킹 선두(1억2580만 원)에 나선 그는 솔직했다. “상금왕 욕심이 납니다. 돈보다는 그것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전성기 퍼팅감각을 되찾아 자신감이 생긴 그는 올해 일본 시니어투어 8개 대회 출전권이 있지만 대회 일정이 겹칠 때는 통산 11번째 상금왕을 목표로 국내대회에 출전할 생각이다.

그는 올 시즌 평균타수(71.83타)와 그린적중률(71.76%)에서 모두 선두다.

그린적중률이 높으면 퍼팅 수가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 그런데도 퍼팅랭킹이 4위(홀당 1.81타)라는 것은 놀랍다. 퍼팅에 왕도는 없다지만 그의 퍼팅비법은 뭘까.

“저는 왼발을 약간 뒤로 뺀 오픈 스탠스로 퍼팅합니다. 퍼팅라인과 홀컵이 동시에 보이기 때문에 궁금해서 고개 돌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죠. 하지만 수십 년간 시행착오를 거쳐 익힌 것이기 때문에 초보골퍼는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연습생 시절 변변한 연습도구가 없어 쇠파이프로 스윙을 연습한 그가 두 팔을 벌린 길이(176cm)는 키(170cm)보다 길다.

그런데도 그는 “고생한 적이 없다”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제가 좋아서, 미쳐서 한 골프이기 때문에 결코 고생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남들이 감탄하는 집중력은 바로 그 시절 만들어졌다.

“당시 연습생은 선배 프로골퍼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만 필드에 나갈 수 있기에 어두컴컴할 때 볼을 칠 수밖에 없었죠. 귀한 볼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죠. 그리고 옛날 볼은 토핑을 내면 밤송이 껍질처럼 벗겨지기 때문에 볼 뒤를 정확하게 쳐야 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였지만 의외로 역대 대통령과의 라운드 경험은 적다. 전두환 전 대통령 퇴임 후 2차례 동반 라운드가 전부라고.

한국 최초의 골프장(6홀 코스)이 1900년 원산에 만들어진 이래 현재 골프장 수는 200여 개. 골프대회도 최상호 프로가 첫 우승을 거둔 1978년에는 고작 4개였지만 현재는 20개에 육박하고 우승상금도 그가 첫 우승 당시 받은 300만 원의 수십 배.

한국골프는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성장했지만 그는 아직 많이 아쉽다.

“아직도 대회 코스 구하기가 어렵고 안정적인 대회 스폰서도 많지 않습니다. 제2, 제3의 최경주가 탄생하려면 선수들이 뛸 수 있는 무대가 많아야 합니다.”

그는 은퇴 이후 무엇을 하고 싶을까.

“후진양성도 하고 싶고… 아무튼 죽는 날까지 골프장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에게 ‘은퇴’는 없다. 최상호는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은 것이다.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