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방 새댁의 복수
어젯밤, 더위 때문인지
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다가 출출하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옆에 아내를 보니 깊은 잠에 빠져 약하게 코까지 골고 있네요.
요즘 병원에 계신 시어머니 간병에 꽤나 피곤한가 봅니다.
혹시 아이들 간식이라도 있을까 식탁엘 가 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고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하다가 그냥 안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귀찮은 일을 할 정도로 배가 고픈건 아니었으니까요.
문득,
대학시절 배고팠던 어느날 밤이 생각났습니다.
시험공부를 해야하는데 공부가 되질 않아 하숙방 선배와 안절부절...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배까지 고파오는 것이었습니다.
통행금지가 가까운 시간이니 동네 구멍가게도 문을 닫았을 테고
마음만 급해서 책을 보고 있지만 배고픔에 공부는 되질 않았지요.
게다가 신혼부부가 사는 옆방에선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 까지...
참다못한 우리는 책을 덮고 소리없이 방문을 열었습니다.
방문 밖이 바로 옆방 신혼부부의 부엌이었기 때문이지요.
약간의 소리가 나더라도 라디오 소리에 묻히리라 생각하고
손전등 하나 켜고 조심조심...
그리하여 우리는 먹다 남은 밥 반그릇과 김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방으로 가져와 몰래 먹는데 얼마나 맛있던지요.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설겆이도 못하고 빈 그릇만 제자리에 갖다 놓았지만
다음 날 옆방 새댁을 어찌 봐야 하느냐 였지요.
뭐 그냥 사과하면 되겠지 하면서도 속으론 마주치면 어쩌나...
다행히 다음 날 아침에도,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하루에 몇 번씩 마주치던 그 새댁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사실, 그 새댁과는 마주치면 눈 인사만 겨우 나눌 뿐이었고
우리 공부에 방해될까봐 평소 매우 조심하는 분이었지요.
다시 밤이 되어 다음날 시험에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밤이 이슥해지자 어제 처럼 또 배가 고파왔습니다.
우리는 이심전심 마음이 통하여 또 방문을 열었고
이왕 한번 한 거, 이왕 버린 몸, 하며 여유롭기까지 하였지요.
정말 간덩이가 부은 상태였습니다.
조심스레 신발을 신고 손전등을 켜 몸을 돌리는 순간,
우린 그자리에서 '얼음'이 된 듯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방문 쪽 부뚜막에는
아직 식지않은 밥 두그릇과 반찬들이
작은 두레반 위에 곱게 차려져 있었습니다.
삼십 여년 전
부산 대연동 모 대학 앞동네 허름한 셋방에서
술 좋아하시던 남편과 어렵게 사시던 그 분,
우리와 비슷한 나이였으니 오십대가 되셨겠지요.
베푸신 만큼 복 많이 받으셔서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사시리라 믿습니다.
글쓴이 방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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