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조절/당뇨조절및 치료

고혈압·당뇨병 前 단계서 약 먹는 게 '최신 트렌드'

淸潭 2008. 9. 13. 14:59

고혈압·당뇨병 前 단계서 약 먹는 게 '최신 트렌드'

환자도 정상도 아닌 '경계 환자'

 
진료실에서 흔히 만나는 사람들이 환자도 정상인도 아닌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다. 환자는 환자대로, 정상이면 정상인대로 치료나 건강 관리법을 택하면 된다. 하지만 환자도 정상인도 아닌 사람들은 치료와 건강 관리의 중간에서 딱히 해법을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협심증으로 심장 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한 70대 환자가 40대 초반 아들 둘을 데리고 진료실에 왔다. 그는 "내가 젊어서부터 고혈압이 있었으나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아 스텐트 시술까지 받았다. 아들들이 혈압이 높은 것 같은데도 아무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억지로 데리고 왔다"고 했다.

두 사람의 혈압은 135(수축기)/85(이완기)㎜Hg정도였다. 콜레스테롤, 혈당, 흡연 경력 등을 측정한 뒤 장남에게는 음식조절 등 생활습관 교정을 권하고 3개월 후 다시 측정하기로 했다. 차남은 생활습관 교정과 아울러 혈압약과 콜레스테롤 저하제를 복용하라고 했다. 왜 장남에게는 약을 처방하지 않았는데, 차남에게는 약을 복용하라고 했을까?

▲ /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고혈압은 140/90 이상일 때이다. 고혈압으로 진단되면 약물치료를 시작해야 하며, 생활습관 교정을 함께 하도록 한다. 정상 혈압은 120/80이다. 그렇다면 121~139/81~89인 사람들은 환자일까, 정상일까? 이들은 '고혈압 전 단계' 또는 '높은 정상 혈압'이라고도 한다. '경계 환자'라 부르기도 한다.

고혈압 전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무척 많다. 국내 성인 중 고혈압 전 단계가 30.4%를 차지하고 있으며, 40대 남성은 절반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많은 이들이 '높은 정상 혈압'이라고 하니까 이 정도 혈압으로는 건강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짐작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뇌졸중이나 심장병 환자의 절반이 '고혈압 전 단계'인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다.

고혈압 전 단계로 진단되면 당장 구체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생활습관 교정과 약물치료이다. 고혈압 전 단계로 진단된 사람들에게 "아직 고혈압은 아니지만,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면, 대부분 "살부터 뺀 뒤에 약 먹으면 안 되느냐"고 묻는다. 물론 생활습관 교정은 꼭 해야 하며 효과도 있다. 체중을 줄이고, 짠 음식을 멀리 하며 지방이 적은 음식을 섭취하고 적절히 운동하면 대개 혈압이 내려간다. 하지만 이런 생활습관 교정을 오랫동안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요즘은 약물치료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체중을 줄여도 혈압이 내려가지 않으면 약을 먹겠다"는 환자에게 "약을 함께 복용하는 것이 훨씬 쉽지 않느냐"고 설득하는 의사의 모습을 병원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앞의 두 환자 중 장남은 고혈압 전 단계이긴 했으나 담배도 피우지 않고, 콜레스테롤 등도 정상이어서 생활요법만 일단 권했다. 하지만 차남은 술을 일주일에 서너 번은 마시고, 담배는 하루에 한 갑씩 피우고, 콜레스테롤도 높았다. 규칙적인 운동을 할만한 시간 여유나 의지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약을 처방했다. 물론 장남도 약물치료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3개월 이후에 혈압에 변화가 없으면 약 처방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처럼 고혈압 전 단계라도 꼭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중요한 것이 심혈관 질환의 위험 인자이다. 남성 55세·여성 65세 이상, 흡연, 지질대사 이상(총 콜레스테롤 250㎎/dL 이상, 혹은 LDL 콜레스테롤 160㎎/dL이상, HDL 콜레스테롤 남성 40㎎/dL 이하, 여성 48㎎/dL 이하), 조기 심장병의 가족력(남성 55세·여성 65세 이하), 복부 비만(남성 90㎝ 이상, 여성 80㎝ 이상), C-단백질의 상승 등이다. 이들 중 3개 이상을 갖고 있거나 당뇨병, 심장비대, 신장 합병증 등이 있으면 고혈압 전 단계라도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특히 고지혈증은 중요하다. 국내 고지혈증 환자의 78%가 고혈압, 당뇨병, 비만, 당뇨 전 단계 등의 심혈관계 질환을 함께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1990년 국내 성인의 평균 총 콜레스테롤치가 161㎎/dL이었으나, 최근에는 198㎎/dL까지 상승한 것은 지난 20여 년 간 심장병 사망률이 12배 증가한 것과 무관치 않다.

당뇨병도 경계 환자가 있다. 공복 혈당 101~125㎎/dL를 '당뇨병 전 단계'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 방치하면 당뇨병으로 진행할 수 있으며, 철저하게 생활습관을 교정하면 정상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

생활습관 교정은 규칙적인 운동과 저염(低鹽)·저지방식 등이 기본이다. 또 트랜스 지방을 피하고 잡곡, 콩, 생선, 야채와 과일, 견과류의 섭취를 늘려야 한다. 아울러 절주(節酒)와 금연도 필수다. 이를 잘 실천하면 '경계 수준'까지 오른 혈압, 콜레스테롤, 혈당 등을 정상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다.

하지만 생활습관 교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적당한 정도로 생활습관을 교정하면서 '괜찮겠지'라고 자위하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질 수 있다. 따라서 하루 한두 알씩 약을 먹으라고 경계 환자들에게 권한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되고, 환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서 꺼리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 약은 비타민이나 건강기능 식품보다 훨씬 더 확실히 건강과 생명을 지킨다.


/ 오동주 고려대 의료원장·심장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