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12) 진보당 사건 • 刑場의 조봉암 "마지막 술 한 잔을 달라" (12) 진보당 사건 |
발행일 : 2008.06.26 / 종합 A6 면 기고자 : 유석재 |
"우남(이승만)이 기어이 죽산(조봉암)을 죽여버릴 작정인 모양이더군." "들었어. 그런데 운석(장면)이나 유석(조병옥)은 뭘 하나? 어째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말리지 않고." 이문열의 자전적 소설 '변경'의 첫머리는 기차 안에서 옆자리 어른들의 대화를 들은 어린 주인공을 통해 1950년대 말 민심의 단면을 보여준다. 진보당 사건의 본질이 '간첩 혐의'가 아니라 '최고 권력자가 정적(政敵)을 제거하려는 의도'에 있었음은 민초들의 눈에도 뚜렷했다. 조봉암(曺奉岩)의 존재는 대한민국의 건국 세력이 특정 이념에 편향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방증이기도 했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그는 1925년 조선공산당 창립에 참여했던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러나 1946년 '노동계급의 독재와 자본계급의 전제를 모두 반대'하는 중도통합노선을 주장하고 공산당과 결별한 뒤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했다. 제헌의원과 초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고 2,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신익희의 급서 때문이기도 했지만 3대 대선에서 216만여 표를 얻어 자유당을 위협했다. 그가 1956년 11월 창당한 진보당은 민주사회주의를 표방, 한국 혁신정당의 물꼬를 텄다. 1958년 1월 13일, 경찰은 진보당 간부들을 전격 검거했다. 조봉암은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그가 주장한 '평화통일론'이 북한 노선과 같으며, 북한과 접선해 자금을 전달받았다는 혐의가 씌워졌다. 주요 혐의가 1심에서 인정되지 않아 징역 5년이 선고됐지만, 3개월 뒤 2심에선 갑자기 모든 혐의가 인정돼 1959년 2월 27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사형 집행에는 미국도 반대했으나 재심이 기각된 바로 다음 날인 7월 31일 사형은 서둘러 집행됐다. 여러 차례 사설을 통해 재판 과정의 의혹을 제기하며 조봉암의 무고함을 시사했던 조선일보는 1959년 8월 1일자 지면에서 사형 직전 그가 남긴 말을 전했다. 그것은 "내 죄는 정치활동밖에는 없는데…. 마지막 술 한 잔을 달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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