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죽지 않는다던 황 교수, 종교집단 교주 같았다”
줄기세포 대변인` 안규리 교수, 황우석 연구팀과 결별 내막
“줄기세포는 없었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공동 연구자에게 설명했어야 합니다. 자신을 믿었던 동료를 배려했다면…” 한 사람은 증인석에, 한 사람은 피고인석에 앉았다.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이는 서울대 의대 안규리(신장내과) 교수. 가볍게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날이 서 있었다. 피고인석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방청석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법정 경위가 방청석의 황 전 교수 지지자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했다. 안규리 교수가 증인 선서를 하고 있었다. 안 교수는 한때 황우석 연구팀의 대변인으로 불렸던 인물. 그가 황 전 교수와 2년5개월 만에 자리를 함께한 것이다.
‘황우석 사태’가 소용돌이치던 2005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안 교수는 “저 역시 줄기세포가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됐다”는 공개 편지를 평화방송에 보내 황 전 교수와 선을 그었다. 이듬해 3월 서울대에서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받긴 했지만, 파면을 당한 황 전 교수와 달리 대학에 복귀할 수 있었다.
검찰 측 신문이 시작됐다. 안 교수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이 맞는지를 법정에서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2005년 사이언스 논문과 관련해 줄기세포에 대한 면역 거부반응 검사를 의뢰받았지요? 하지만 줄기세포가 아니라 같은 체세포를 대상으로 검사했다면 당연히 일치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지요?
“예.”
-검사 결과가 제대로 나오기 전에 논문이 제출됐지요? 논문에 서명도 하지 않았는데 공동 저자로 등재됐지요?
“예.”
안 교수는 2005년 5월 논문 발표 후 세계 줄기세포 허브가 추진되면서 황 전 교수의 감정기복이 심해진 것으로 기억했다. “황 교수는 다른 사람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기 일정에만 맞추라고 강하게 요구하는 일이 잦았다. 다른 교수에게 ‘황 교수를 보면 궁예의 말기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황 교수 연구와 거리를 두기 위해 미국 단기 연수를 계획했는데, 서울대병원이 허브를 유치하는 바람에 가지 못했다.”
같은 해 10월 세계 줄기세포 허브가 발족했다. 거의 동시에 ‘황우석 신화’도 붕괴음을 냈다. 연구 파트너였던 미국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턴 교수가 11월 12일 난자 취득 과정을 문제 삼아 결별을 선언했다. 22일 MBC PD수첩이 ‘난자 매매 의혹’을 방송했다. 황 전 교수는 사과 회견과 함께 허브 소장직을 사퇴했다. 해외출장을 갔던 안 교수는 귀국 다음날인 11월 30일 잠행 중이던 황 전 교수와 ‘007식 접선’을 해야 했다.
“서울대병원으로 온 이병천 교수 차를 타고 갔다. 저녁 8시쯤 경기도 양지의 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서 황 교수를 만났다. 황 교수는 모자를 눌러 쓰고, 수염도 깎지 않은 초췌한 얼굴이었다. 그때 MBC 쪽에서 ‘미국에 있는 김선종 연구원과의 인터뷰를 담은 PD수첩 2탄이 12월 6일 나간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황 교수가 ‘큰일 났다. 연구팀과 허브에 치명적이다. 나는 미국에 갈 수 없는 처지이니 안 교수가 다녀와 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YTN 측에 전화를 걸어 동행 취재 계획을 짰다.”
YTN은 12월 4일 “PD수첩 팀이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김 연구원을 회유·협박해 거짓 증언을 얻었다”는 내용의 현지 인터뷰를 보도했다. 방송 후 연구팀이 한자리에 모인 곳에서 이병천 교수가 “이제 복귀해 일을 하자”고 했다. 황 전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황 교수는 ‘스트레스로 체중이 4㎏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점쟁이가 지금 나가면 악재가 있으니 4~5일 쉬면 된다고 했다’고 해서 내가 주치의를 맡게 됐다.”(안 교수 증언)
그러나 상황은 다시 반전됐다. 사이언스 논문에 나온 사진과 DNA 지문 분석 결과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다. 안 교수는 12월 13일 황 전 교수 주치의를 그만뒀다. 그 이유에 대해 안 교수는 “연구원이 자신 몰래 난자를 제공했다는 설명과 달리 황 교수가 직접 해당 연구원을 데리고 병원에 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너무 놀라 의사로서 계속 진료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12월 14일 밤. 줄기세포 허브 소장실. 황 전 교수는 연구팀이 참석한 가운데 안 교수에게 ‘놀라운 제의’를 했고, 그것이 두 사람의 결별에 결정적 쐐기를 박았다. 안 교수의 얘기.
“황 교수는 ‘혼자 죽지 않는다. 강성근·이병천 교수와 옥쇄(명예를 위해 깨끗이 죽는다는 뜻)를 하겠다. 안 교수도 함께하려면 하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있는 그대로 세상에 밝혀야 한다’고 말하고 소장실을 떠났다. 황 교수 모습이 굉장히 냉혹해 보였다. 섬뜩해서 종교집단 교주처럼 보였다. 그날 가슴이 너무 떨려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이 들었다.”
황 전 교수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이어졌다. 황 전 교수가 김선종 연구원의 줄기세포 섞어 심기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부각했다.
-당시 영장류 실험과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시험을 추진했지요? 직접 FDA를 방문해 실무 협의를 하기도 했지요? 줄기세포를 국내외 기관에 분양하기도 했지요?
“예”
-만약 황 전 교수가 줄기세포 수립에 확신이 없었다면 그런 것을 추진하지 않았겠지요?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안 교수는 그러나 줄기세포에 대한 질문이 거듭되자 “나는 줄기세포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 달라”고 했다. 변호인 측은 “증인이 자신을 피해자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시의 사실관계를 다시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변호인 측이 황 전 교수의 12월 14일 제의에 대해 “원천 기술에 대한 강한 확신을 나타내면서 동참을 요청한 것인데, 증인이 잘못 받아들였다”고 지적하자 안 교수는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며 공동 연구자에 대한 배려 부족을 지적했다.
재판이 끝난 뒤 안 교수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5시간 넘게 진행된 재판에서 황 전 교수와는 눈길 한 번 주고받지 않았다. 기자는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던 황 전 교수에게 감회를 물었다. 그는 “다 내 운명이 이런 걸 어떻게 합니까. 훗날 얘기합시다”라고 말한 뒤 착잡한 얼굴로 법원 문을 나섰다.
2006년 5월 검찰의 기소로 시작된 재판은 이번이 22번째 공판. 재판부만 세 번째다. 아직 검찰 측 증인신문이 끝나지 않았고, 변호인 측 증인이 40여 명이나 대기하고 있다. 올해를 넘길 것이 확실해 보인다. 황 전 교수가 말하는 ‘훗날’은 너무 멀어 보이는 상황이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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