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은 노벨상에 욕심 없으시다. 석학(?)님들아~!!
-외국 연구자들이 노벨상 수상감이라고 했는데
. “나의 우호 세력들이 나서겠다고 하더라. 이번 연구가 의학적 치료에 결정적 의미를 가졌다는 점이 규명된다면 유력한 노벨상 후보라고 말했다. 내가 수상후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뒤쯤 후배 과학자가 받도록 하고싶다.”
2004논문 발표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바이오정상 오르리라는 신앙갖고 연구"
태극기를 휘날리며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가‘금의환향’했다. 13일 사이언스지 기자회견부터 16일 미 국가과학진흥회 학술대회의 피날레 강연까지, 황 교수가 미 시애틀에 머무는 동안 한국의 생명공학은 세계적 명성을 구가했다.
사인 대열이 줄을 지었고 사람들은 그를 ‘히어로’라 불렀다. 그리고 귀국 다음날인 19일 오전 6시30분 황 교수는 여느 때처럼 실험실을 찾아 촌음을 다투는 아까운 연구경쟁에 다시 뛰어들었다. 18일 인천국제공항의 합동기자회견과 심야까지 이어진 단독 인터뷰를 통해 황 교수의 성공과 실패를 들었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자발적으로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이다. 미 강연에서도 특별히 고마움을 표했다. 청중들이‘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라고 하더라. 중국에선 500달러, 미 메사추세츠주에선 4,500달러에 난자가 매매되는데, 처음부터 난자를 산다는 생각은 아예 배제했다. 그런 난자엔 탐구정신과 열정이 스며들 수 없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론 세포질을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생산을 연구하겠다. 그러면 난자가 필요없고, 인간복제도 불가능해 윤리적 문제도 해결된다.”
-화려한 성공 뒤엔 수백, 수천번의 실패가 있었을 것이다. 어려운 순간을 어떻게 극복했나.
“정말 힘들었다. 해도 해도 되지 않을 땐 피가 말랐다. 연구팀 모두 ‘선생님, 이거 원래 안 되는 겁니다’라고 말했을 땐 늘 긍정적이던 나도 흔들렸다. 하지만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 실험실이 떠오르고, 내가 꼭 일으켜 세우고 싶은 환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된다, 반드시 된다, 내가 된다면 되는 거다!’는 주문을 외우고 다시 실험실로 갔다. 전 세계의 수많은 연구자 앞에서 성과를 발표하는 광경을 그렸고 그것이 현실이 됐다.”
-앞으로 공동연구 계획은?
“콧대 높던 학자들로부터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국제학회장에서 눈길 한번 주지 않던 피터슨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먼저 저녁을 먹자며 공동 연구를 제안해왔다. 2만마리의 원숭이를 공굴리듯 실험하는 섀튼 피츠버그대 교수팀은 가장 중요한 공동연구자가 될 것이다.
세포특성 연구의 권위자인 한스 쉘러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도 손길을 내밀었다. 정부와 협의를 거쳐 이달 말이면 연구협정 체결이 될 것이다. 미국쪽에선‘돈은 얼마든지 대겠다’고 하는데 꼭 반갑지는 않다. 자칫 연구성과와 이권이 넘어갈 우려가 있다.”
-외국 연구자들이 노벨상 수상감이라고 했는데.
“나의 우호 세력들이 나서겠다고 하더라. 이번 연구가 의학적 치료에 결정적 의미를 가졌다는 점이 규명된다면 유력한 노벨상 후보라고 말했다. 내가 수상후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뒤쯤 후배 과학자가 받도록 하고싶다.”
-한국의 간판 과학자로서 사회적 역할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일단 실험실로 잠행하겠다. 단 청소년에게 과학의 꿈을 심어주는 기회가 필요하다면 그것만큼은 하겠다.”
-수많은 난치병 환자에게 희망을 준 이번 연구 성과에 대한 개인적 소회가 있다면.
“있는 자는 병을 고치고 없는 자는 마음의 고통까지 얻는, 그런 상황만은 피하고 싶다. 이번 연구가 인류 공동선에 기여했으면 한다. 특허로 생기는 경제적 수입도 가난한 병자를 위해 쓰이기를 바란다. 특허권은 국가 소유니 선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황 교수는 무엇을 얻나.
“명예가 있지 않나. 그것도 나의 명예라기보다 대한민국의 명예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바이오의 정상에 오르리라는 것은 나의 신앙이었다. 스카우트돼 외국에 나갈 생각은 0%다. 그러면 프로 선수처럼 고액 연봉은 받겠지만 거기서도 지금처럼 새벽 6시부터 연구원들과 지지고 볶을 수 있을까? 나는 지금이 훨씬 보람 있다.”
-집으로 돌아가 제일 먼저 할 일은? 부인과 포도주라도?
“(크게 웃으며) 그런 거 없다. 기자회견만 없었어도 귀국하자마자 실험실로 갔을 것이다. 외국 출장에서 돌아와 한번도 집으로 직행한 적이 없다. 아내도 그러려니 한다. 그동안 애들에게 미안했는데 이제는 아빠를 자랑스러워한다.”
-아이들도 과학자로 키우나.
“애비의 삶을 닮고 싶었겠나. 큰 아들은 미국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하며, 둘째 아들(불문학 전공)는 막 제대했다.”
-정부와 주변에서 해 줄 일은.
“우리를 조용히 실험실에 내버려 두라. 이제 잠수하겠다.”
'줄기세포의 진실 > 진실밝히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리꾼의 승리 (0) | 2008.03.03 |
---|---|
누가 이 나라를 위해 ..... (0) | 2008.03.03 |
한국에서 제일 극성맞고 이쁜 아줌마들... (0) | 2008.03.03 |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기술''황교수팀, 국제특허 출허 (0) | 2008.03.03 |
국과수 연구실장 '줄기 조작' 개입 가능성 (0) | 2008.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