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법장스님법문] 목련 스님의 효행

淸潭 2008. 3. 2. 19:01

목련 스님의 효행

 

시방법계(十方法界)의 모든 영혼(靈魂)들이 부처님의 가호로 해탈의 기쁨을 얻는 날이 왔습니다. 우란분(盂蘭盆)이라는 말은 번역하면 구도현(救倒縣; 거꾸로 매달린 것과 같은 고통에서 구한다)이라는 의미로 온 법계(法界)에 사는 유주 무주 영혼(有主無主靈魂)들이 고통받는 것을 구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우란분절이라는 것을 목련경(目連經)에 보면 그 기원(紀元)이 목련 스님(目連尊者)의 효행에서 비롯되었으며, 음력 7월 보름 하안거 해제일(夏安居解制日)로써 부처님의 위신력(威信力)과 스님들의 수행력(修行力)과 재가신도님의 정성으로 일체 영가들이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얻는 날을 말합니다.
목련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분으로서 신통제일(神通第一)의 덕이 높으신 스님이셨는데 출가 전에는 이름이 나복(羅卜)이셨고 아버지 부상 장자(傅相長者)와 어머니 청제 부인(靑提夫人)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어느 해 아버지께서 병이 들어 돌아가시자 유복하게 자란 나복 청년은 가산(家産)을 삼 등분 하여서 그 중 이분은 어머니께 드려 일분은 3년 동안 아버지의 천도(遷度)를 위해 매일 재(齋)를 모시게 하고, 일분은 어머니의 생활비로 쓰시게 하고, 일분은 자신의 장사 밑천을 삼아 타국으로 장사를 하러 떠났습니다. 나복은 3년 후에 집에 돌아올 것을 기약하고 떠났으나 그 후 어머니는 매일매일 화려한 몸치장으로 음주와 방탕을 일삼고 살생을 즐겼습니다. 그러다가 3년 후 아들 나복이 돌아오는 때를 맞아서는 다시 상복을 입고 재를 모시는 척한 죄로 사후에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져 갖은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홀로 된 나복 청년은 재산을 모두 하인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보시하고 출가를 하여 목련 스님이 되십니다. 목련 스님께서 하루는 신통력으로 부모님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버지 부상 장자는 천상에 있는데 어머니는 도통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련 스님께서는 생전에 악행을 많이 지으신 어머니께서 분명 지옥에 계실 것이라 생각되어 지옥으로 갔습니다.
결국 어머니를 아비지옥에서 찾았으나 해탈시켜 드릴 방법을 몰라 부처님께 간곡히 그 방법을 여쭈시니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우란분절을 택하여 항하 강변(恒河江邊)에서 수행하시는 많은 스님들을 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재를 지내면 청제 부인은 물론 시방세계의 일체 애혼(一切哀魂)이 고통의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목련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심을 내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정성껏 실천하시니 어머니뿐만 아니라 선망 부모님과 일체 영혼들이 모두 천상에 나셨습니다.
이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은 목련경(目連經)을 보시면 잘 알게 됩니다.
또 오늘은 백중(白衆·百中), 백종(百種·魄縱·白踵), 자자일(自恣日)이라고도 하는데 우선 불가(佛家)의 명칭부터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백중(白衆)이라는 말은 대중에게 고백(告白)한다는 뜻으로 하안거(夏安居; 음력 4월 15일 입제 7월 15일 해제) 결제기간(結制其間) 동안 묵언(默言) 속에 정진하다 보니 그 동안 생겨난 공부에 대한 의심이나 소감(所感) 내지 잘못한 점을 드러내놓고 참회(懺悔)하며 대중에게 자신의 뜻을 밝힌다는 뜻이며, 자자도 스스로 뉘우친다는 뜻으로 결제 중에 생긴 자신의 허물을 대중 앞에 숨김없이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며 다시는 같은 허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는 뜻입니다.
백종(魄縱)은 업(業)에 얽혀서 고통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혼들이 부처님의 자비와 권능(權能) 법력(法力)에 의하여 해탈되므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세속(世俗)에서는 오늘을 백중(百中)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이는 일년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절기(節氣)라는 뜻이며, 백종(百種)은 요즈음 백 가지 햇곡식이 거의 익었으므로 처음 나는 곡식으로 제물(祭物)을 정성껏 장만하여 조상님께 천신(薦新)하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백종(白踵)이라는 것은 농부들이 봄부터 일하기에 바빠서 흙 묻은 발을 깨끗이 씻을 시간이 없다가 이제야 농사일도 거의 끝이 나 한가한 틈이 생겨 발뒤꿈치가 희어졌다는 뜻과 여름 내 논에서 물에 발을 담그고 일을 해서 발뒤꿈치가 허옇게 벗겨졌다는 뜻으로 일컬어진 것입니다.
이렇듯 칠월 보름날은 불가에서나 세속에서나 봄부터 긴 여름을 정진으로 보낸 후 그 결실을 논하는 날이며, 조상을 위하여 정성 들여서 재를 모시는 공통점이 있으니 실로 효의 정신에서 비롯된 아름다운 명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효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여 봅시다.
부처님께서 『인욕경(忍辱經)』에 이르시기를, “선(善)의 최상은 효도보다 큰 것이 없고, 악의 최상은 불효보다 큰 것이 없다.”라고 하셨으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서는 “가령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서 피부가 닳아져 뼈에 이르고 뼈가 뚫어져서 골수(骨髓)에까지 이르도록 수미산을 백천 번 돌더라도 오히려 부모의 은혜는 갚을 수가 없느니라. 가령 어떤 사람이 굶주리는 흉년의 겁운(劫運)을 당해서 부모를 위하여 자기의 온 몸을 도려내어 티끌같이 잘게 갈아서 백 천겁이 지나도록 봉양하더라도 오히려 부모의 깊은 은혜는 갚을 수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으니 부모님의 그 크신 은혜를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짐승도 자기 새끼는 귀한 줄은 아니, 우리가 흔히 쓰는 ‘단장(斷腸)의 슬픔’이라는 말도 중국의 『세설신어(世說新語)』라는 책에 원숭이가 주인공이 되어서 생긴 말입니다.  
그 내용을 말씀드리자면 진나라의 환혼이라는 사람이 배를 타고 삼협이라는 곳을 지날 때 그의 시종이 계곡의 벽에서 놀던 새끼원숭이를 붙잡아 배에 싣고 떠나왔다고 합니다. 그 때 어미원숭이가 잡혀가는 새끼를 보고 울부짖으며 골짜기를 따라 백여 리를 달려와 배에 뛰어내려 새끼를 안고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해서 어미원숭이의 배를 갈라보았더니 뱃속의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어미원숭이가 새끼를 쫓아오며 얼마나 애를 태웠으면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지고 타서 죽었겠습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모님에게 효도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너무나 실천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대성효2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라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신라의 모량리에 김대성(金大城)이라는 효자가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서 석불사(石佛寺; 현재의 석굴암)를 세우고 현생의 부모님을 위해서 불국사(佛國寺)를 세웠다고 되어 있으니 그 효심과 신심에 감동할 따름입니다.
또 빈녀양모(貧女養母) 이야기가 눈시울을 붉게 합니다. 분황사(芬皇寺) 동쪽 마을에 사는 가난한 처녀가 눈먼 어머니를 위하여 구걸해 봉양했는데, 흉년이 들어 걸식하기도 힘이 들어서 남의 집에 가서 몸을 팔아 30석을 얻어서 주인집에 맡겨놓고 일을 하고 날이 저물면 쌀을 가지고 와서 밥을 지어 어머니를 봉양하고 같이 잠을 자고 새벽이면 주인집에 가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머니가 딸에게 말씀하시기를 “예전에는 강비(糠粃; 몹시 거친 음식)를 먹어도 마음이 편하더니 요새는 쌀밥을 먹어도 창자가 찔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치 못하니 어찌된 일이냐?”고 하셔서 딸이 사실대로 말씀드리니 통곡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는 딸이 효도를 하되 어머니의 구복(口腹; 음식을 먹는 입과 배)만 봉양하고 색난(色難;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 못함)을 살피지 못한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빈녀양모의 일화를 통해서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것은 효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참다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세속에서 일부 사람들은 출가한 스님들에게 효를 저버리고 산다고 말하는데 이 또한 너무도 치우친 주장입니다.
목련경(木連經)에 목련 스님께서 나복(羅卜) 청년으로 계실 때 출가를 하시기 위하여 부처님께 여쭙기를 “부처님이시여! 저는 이제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복(服) 입기를 마쳤습니다. 이제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고자 합니다. 원컨대 출가를 하면 무슨 공덕이 있겠사옵니까?” 하고 여쭈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복아, 잘 왔구나. 남염부제(南閻浮提) 중에서 만약 한 사람의 남자나 여자, 또한 한 남자 종이나 여자 종이라도 부처님을 따라 출가케 하는 것은 8만 4천의 부도(浮屠) 보탑(寶塔)을 조성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니라. 이로써 이 세상에 살아있는 부모는 백년 동안 복락을 누리게 되고 7대를 거슬러 올라가 조상까지도 마땅히 정토(淨土; 극락세계)에 태어날 것인데 하물며 너는 스스로 보리심(菩提心)을 내었으니 그 공덕이 가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실로 우리 불가에서는 출가야말로 최상의 효를 실천하는 길에 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끝으로 오늘 우란분절대법회를 통해서 대중 모두 일심으로 더욱 참회하고 정진할 것을 서원하며 작은 나에서 벗어나 대 우주의 주인공으로서 육도중생의 해탈을 위하여 부처님전에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올립시다.
안과 밖이 늘 같은 수행자가 됩시다.
                                
- 우란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