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대종사 영결식
종단 역사상 최초의 다비식 없는 영결식
▲ 법장스님께서 다비식을 통해 얻는 사리 대신 오색빛깔의 무지개를 보여주셨다.
불기 2549년 9월 15일 오전 10시, 조계사에서는 인곡당 법장 대종사의 영결식이 봉행되었다. 지난 9월 11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입적한 법장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큰 서원을 가지고 종단의 중흥기를 만들었지만 세수 64세로 현생을 마감하였다.
관례에 따라 원래는 법장스님의 출가본사인 수덕사에서 다비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법장 스님이 1994년 3월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일 때 장기기증서약을 한 뜻에 따라 종단 사상 최초로 다비식 없는 영결식이 봉행되었다. 스님의 법구기증은 마지막 가는 길에도 자비와 보시로써 중생을 구제하려는 스님의 생전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이후 스님의 뜻과 함께 하려는 장기기증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 종단 원로 범일스님께서 법어에 앞서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셨다.
조계종 총무원과 조계사, 주변 우정국로에는 근래 보기 드문 3만여 명의 스님, 신도, 각개 인사 및 취재진이 모여, 한마음으로 법장스님의 무상정각(無上正覺)을 빌며 엄숙하게 영결식에 참석하였다. 원로스님들의 명종으로 시작된 영결식은 삼귀의, 영결법요(법장스님을 부르는 의식), 스님의 업적을 소개하는 행장소개, 총무원장 권한대행인 현고스님의 아쉬움이 담긴 영결사, 원로 범일스님의 법어, 법등스님의 추도사 등으로 진행 되었다.
▲ 종단 역사상 최초의 다비식 없는 영결식이 봉행되었다.
법등스님은 추도사에서 “법장스님은 정말 따뜻하고 강직하고, 순수하면서도 열정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모든 고통은 당신께서 다 받을 터이니 그것을 가져 오라시던 스님은 살아있는 보살이었습니다. (중략) 불사를 위해서는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도 사양하지 않았습니다.”라며 추모하였다.
특히 영결식 도중에 참석한 신도들의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는데 하늘을 보니 맑고 청명한 하늘의 태양 주변에 둥근 무지개가 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비식을 통해 얻는 사리 대신 오색빛깔의 무지개를 보여주어, 보아야 믿는 중생들을 위안한 것 같아 장내는 더욱 경건해 졌고 법장스님의 큰 법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였다.
조사는 조계종 전국교구본사 주지 대표 정락스님을 비롯하여, 혜국스님, 비구니회 회장 명성스님, 노무현 대통령과 달라이 라마의 조의문, 문화관광부 정동채 장관, 이명박 서울시장, 천주교 김희중 주교 등 각계각층의 인사가 조사를 낭독하였으며, 중국, 대만, 일본, 베트남, 스리랑카 등의 세계 종교 지도자들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한편, 법장스님이 생전에 결연한 초등학교 6학년 최예슬 양은 법장스님을 향한 애도의 뜻을 전달해 참석한 사부대중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조사에는 한결같이 '스님이 어서 중생들이 있는 이 땅으로 돌아와 구제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었다.
▲ 큰스님을 보내는 영결식에서 조계사 주지 원담스님께서도 슬픔을 감추지 못하셨다.
2시간 여의 영결식이 끝난 한참 뒤에도 법장 대종사의 영결식단에는 헌화하려는 추도객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인곡당 법장 대종사의 초재는 수덕사, 49재는 조계사에서 봉행될 예정이다.
앞으로도 그간의 불사에 필적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가진 법장스님을 보내는 아쉬움의 영결식이 이렇게 끝이 났다. 법장스님의 도량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육성이 벌써 그리워진다. 그렇지만, 법장스님을 잡지 않고 진심으로 놓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 큰 슬픔속에 스님의 위패와 영정을 차에 모시고 있다.
▲ 법장스님의 위패와 영정이 조계사를 빠져나가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신도들
▲ 법장스님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차가 수덕사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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