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제1주제 논평:鏡虛禪師를 또 다시 생각함

淸潭 2008. 2. 20. 20:57
 

제1주제 논평:鏡虛禪師를 또 다시 생각함


 

심재룡(서울대학교 교수)

Ⅰ. 큰스님/고승(高僧) 만들기에 동참한다.

  일백여년을 격하여 경허 선사(1846~1912)를 추모하는 마당이다. 추모와 평가는 큰스님 만들기의 일환이다. 무슨 준거들로 그 분을 평가해서 추모할 것인가? 이미 큰스님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를 통하여 우리들은 경허 스님을 기억하고 숭모하고 있다. ‘근세의 고승’, ‘현대 한국선불교의 중흥조’, ‘보살만행의 완성자’, ‘참선 수행의 모범’ 등등 여러 가지 평가를 받는 경허 큰스님이시다. 그런 평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시대적 구분, 종단의 흥망, 특이한 행동, 참선수행의 지침 내지 표준 등 여러 방면에서 스님을 평가하는 준거들이 제시되어 있다. 경허 스님을 큰스님으로 모시는 한국선불교 조계종 내에 다른 역사적 인물들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다른 분들과 비교, 평가하는 틀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을까?
  본 논문의 논주는 이능화 거사가 내린 경허 스님에 대한 평가를 주로 문제삼고 있다. 따라서 인물평을 둘러싼 큰 줄기 질문에 곁들여 잔가지로 여러 가지 논의가 예상된다.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구분하고 어떻게 보는가? 고승과 범승, 명승 내지 권승을 가르는 기준은 다른 나라 중국이나 지금과 다른 시대 중세에 비해서 어떻게 다를까? 혹시 시대를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나 절대로 적용되는 오직 한 가지 기준만이 존재할까? 시대마다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불교 내지 선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도대체 역사의 마당을 뛰어 넘는 절대-순수선 내지 초역사적 불교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혹시 상대성을 주장하지 않고도 현재에 충실한 불교, 또는 역사를 뛰어넘지 않고도 역사적 사명에 철저한 실존적 불교가 가능한가? 절대와 상대, 현재와 영원이라는 흑백 논리적 이분법적 분류에 휘둘리지 않는 중도적 불교를 주장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이 학술적 논의에 포함되는 것이라 짐작한다. 이 자리에서 모두 논의하지는 못해도 문제들 사이의 연관성을 짚어 보고 따지는 것이 학자들의 일이다. 이런 문제를 한번 진지하게 따지는 것이다. 이는 큰스님 만들기에 동참하는 학자들의 몫이겠다.
  이 자리는 그런데 역시 추모의 마당이라 문제를 헤집어 따지는 평가보다 숭모의 감정에 휩싸여 평가의 문제는 접어놓고 나가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그런데 다른 문제는 다 접어두고 논주는 한 가지 문제를 집요하게 따지고 있다. 바로 경허 스님의 무애행이다. 이를 둘러싼 상반된 평가를 문제 삼고 있다.
  평자가 생각하기에 불교라는 마당을 빌려 논의한다면 결론은 두 가지로 좁혀질 것 같다. 그 한 가닥은 대승불교는 물론 불교 자체가 무애행 특히 성욕과 애욕 등 인간의 원초적 욕망의 표출에 대해서 본시 이중적 잣대에 가려서 양극적 표현을 모두 허용한다는 것이다. 양극적이라 함은 욕망의 절제 내지 부정을 불교의 원형으로 보는 금욕주의적 해결에 기대는 한 쪽 끝과 욕망의 긍정을 마치 “연꽃속의 보석”으로 여기어 쾌락주의까지는 안가더라도 아무튼 현실을 긍정하는 또 다른 한 쪽 끝을 모두 포괄하는 폭넓은 불교 스펙트럼의 두 끝을 지칭한다. 다른 한 가닥은 불교도 인간이 만든 어느 종교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시대와 장소의 변화에 따라서 딱히 모범답안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닥은 불교 자체의 논리에 기대는 해결법이고, 다른 가닥은 인간이 만들어 가는 역사의 우연성에 기대는 해결이다. 이것은 불교의 특이한 성격에 근거한 논법이요, 저것은 인류에 보편적으로 내재한 유한성, 역사성, 일회성 등에 의탁하는 논법이다. 그런데 무애행이라 일컫는 큰스님의 발자취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Ⅱ. 무애행의 평가와 역사적 사실

  논주 김지견 교수의 유려한 문체로 그려진 경허 선사의 일생과 사상에서 우리는 두가지 문제에 부딪힌다. 하나는 먼저 지적한대로 선사의 무애만행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심지어 그 분의 생몰 연대조차 헷갈리고 있었다는 기가 막힌 사실의 확인이다. 1990년대 나온 <한국불교인물사상사> (불교신문사편, 민족사간, 1990년 초판 1995년 초판 3쇄)나 1990년에 나온 <한국불교인명사전> (불교시대사간)에도 스님의 생년은 1849로 되어 있다. 아직 경허 스님의 행적을 평가하기에는 이른 탓일까? 백년이지만 지금으로부터 시대적으로 워낙 멀리 떨어진 탓인가? 즉 지금의 우리는 경허 스님께서 살다 가신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을 살기 때문인가?
  생몰 연대를 밝혀낸 논주의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분의 만행을 그린 이야기도 역사적 사실일까? 서른 여덟 가지 일화에 담긴 “진실”은 무엇인가? 역사적 사실로 알려지고 우리에게 제시되는 일화 내지 그분의 설법 법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만들어진 사실도 실은 평가의 과정을 거치어 나온 것일터, 사실을 기술한다는 작업과 행동을 평가한다는 작업이 과연 따로 떼어질 수 있을까? 역사적 기술(記述)과 윤리 도덕적 평가는 모두 너른 의미에서 인간의 판단이 개재하는 활동이다. 논주가 제시하는 역사적 사실은 물론 평가까지 우리는 너른 의미에서 큰스님 만들기의 일환으로 보고자 한다. 이를 논평하는 평자의 활동 역시 큰스님 만들기의 일환이다. 왜 우리는 큰스님을 만들고 평가하고 역사적 진실을 캐내려하는가? 행동의 기준을 정하고 이를 지키고 깨고 다시 만들고 허물고 그리고 지우고 편집하고 각색하고 그렇게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이다. 기준을 만들고 지키고 깨는 작업 가운데 어록 작성, 고승전기 작성이 들어있다. 어록 가운데 일화는 무엇일까?
  일화는 경허 스님의 자전적 고백이 아니다. 스승의 행적을 미화하자는 것일까? 또는 변명하자는 것일까? 아니면 스승의 행적을 그림으로써 무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인가? 그 일화를 수집 편집해서 글로 만든 작가들 곧 큰스님 그분의 제자들은 한국선불교를 어떻게 일반 대중들에게 그리고 선불교에 몸담아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그려보이고자 하였을까?
  특히 나병의 여인을 데리고 잠을 자서 평생 피부병으로 고생했다는 경허 스님의 행동은 불교의 계율과 어긋나는 일인가? 깨친 분의 거칠 것 없는 무애행의 표현인가? 논주는 이능화 거사의 평가가 어긋난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Ⅲ. 욕망과 불교, 선불교

  욕망을 긍정적으로 지지하는 대승불교의 교리적 근거는 너무나 많다. 경허 선사의 초견적(初見的) “일탈” 행위는 이 대승불교의 연장선상에서 아무런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열반과 세속이 둘이 아니라면 깨침과 욕망도 둘이 아니다. 사회적 정당화 또한 가능하다. 대승 불교의 믿음 공동체는 본시 천문 승려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승이라는 수레는 세속인 거사 청신녀 청신사 보살들을 태우고 지옥의 끝까지 찾아가는 구세의 모임이다. 저들은 여자보기를 뱀 보듯이 두려워하던 전문 승려들의 가위 ‘여자무서움’증에 시달리지 않는다.
  더욱이 선불교는 그런 대승이라는 수레를 바로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생활 속에 끌어들인 불교이다. 불교의 일상화, 세속화를 완성한 선불교는 우리로 하여금 그럼 어떤 생각을 갖고 살라하는가? 왜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을 집요하게 묻는가? 모든 중생이 부처님이다. 단지 가능태로서의 부처에 그치지 않는다. 아니, 현실태로서 그 자체로서 중생이 하는 행동은 모두 부처의 행동이다. 욕망의 긍정, 육체의 신성시는 여기서 힘을 얻는다.
  귀족노름 왕실의 비호를 먹고 자라던 불교의 지위에서 내려와 스님들이 팔천민의 하나로까지 추락한 조선불교-중생들의 불교, 중생을 위하는 불교, 중생들이 다시 세운 불교는 바로 불교의 본 모습이다. 여기 이런 맥락에서 감히 논평자는 물론 논주도 경허 스님을 읽는다. 그의 무애만행을 읽는다. 대승 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속인에게 적용하는 길을 터놓았다면, 선불교는 이를 일상 생활의 마당으로 끌어내림과 동시에 다시 이를 승화하여 현재 그대로의 중생의 모습에서 초월 신성 영원으로 완성한다. 이 선불교의 중흥을 꾀하는 경허스님과 그분의 제자들이다. 이를 읽지 못한 이능화 거사의 평가이다.
  고목한암을 핑계로 젊은 처자를 마다한 고목을 고승으로 모실 것인가? 고승인줄 잘못 알았다가 고목임을 올바로 확인하고 거연히 이 고승/고목을 불사르는 노파의 대승선을 기릴 것인가?

Ⅳ. 고승 만들기를 다시 생각한다.

  일찍이 중세 중국의 고승전기 작가들 이를 따른 전근대 한국의 전기작가들은 네 가지 기준을 만들었다. 1) 깨침의 완성 2) 금욕의 모범 3) 학문의 성취 4) 신이한 행적을 보임. 겅허 스님에게 이 네가지 기준이 모두 갖추어짐을 전기작가들은 보이고 싶어한다. 이를 읽는 독자들도 갖춘 인격의 기준으로 고승을 기린다.
  하나하나 점검하자. 4) 부처님의 필요조건 가운데 여섯 가지 신통력이 있다. 부처님으로 하여금 영원히 점술사 내지 주술사를 겸비하도록 할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3) 학문적 성취? 선불교에서 소위 교학 배움을 무시하고 문자 그대로 불립문자를 내내 고집하게 할 것인가? 우리가 선택할 일이다. 2) 금욕의 불교를 원형 내지 모범으로 볼 것인가? 이미 금욕은 불교 내부에서 역사적으로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며 양극적 평가를 받아 오고 있다. 불교 밖에서도 욕망은 양극적 평가의 대상이다. 욕망없는 인생은 무엇일까? 1) 깨침의 완성은 욕망의 죽음인가? 아니면 욕망의 활발한 창조적 표현인가?
  경허 스님은 이미 성우/깨친 소라는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입전수수의 난주 선생으로 종생하신 분. 그 행적에서 우리는 만세의 사표, 고승의 새로운 표준, 다가올 새로운 천년의 고승상, 한갖 전문 승려 아닌 깨친 중생의 표본을 찾는다. (1999.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