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수사모

[덕숭총림 수덕사 수좌 설정스님] 수행하는 자체가 행복한 삶 가는 첩경

淸潭 2008. 1. 28. 20:52

“믿음은 도의 근원이고 모체” … “我相 지우고 회향해야”

“세상에 대한 견해 깨뜨리고 지혜 있어야 인생 보람 있어”

 

 

덕숭총림 수덕사 수좌 설정스님이 지난 11월18일 봉은사 법왕루에서 봉행된 ‘큰스님 초청법회’에서 ‘바른 신심’을 주제로 법문했다. 스님은 수행에서 우러나오는 나직한 목소리, 은은한 미소와 사방을 감싸 안는 포용력으로 청중에게 “가을 낙엽이 떨어져 다시 뿌리로 가듯 집착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것을 회향하는 것이 참된 믿음(信)이며, 신앙을 갖고 수행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첩경”이라고 강조했다. 1시간여 동안 이뤄진 스님의 법문을 정리했다.

 

불교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또 믿음(信)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사후의 영혼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서 최고의 고급 종교인 불교는 해답을 주었다. 인류의 스승이신 부처님은 편견을 내려놓고 듣고 실천할 수 있다면 무한한 믿음을 갖게 된다고 했다. 신앙은 역사적으로 회의주의자들에 의해 이뤄진 것은 없다. 큰 일을 하는 사람은 신앙, 큰 신념을 가진 자들이며 이들이 역사의 족적을 남겼다.

 

덕숭총림 수좌 설정스님(서울 화계사 조실)은 “자기가 닦은 선행공덕으로 모든 중생이 열반락을 얻는 것이 진정한 회향”이라고 설했다.

 

<화엄경>에서 ‘믿음은 도의 근원이고 모체’라고 했다. 일체 번뇌를 끊고 열반에 들게 한다. 신(믿음)은 물줄기와 같아 고뇌와 악행의 때를 벗긴다.

불교에서 신(信)이란 것은 다섯가지를 믿는 것이다. 부처님, 부처님 법인 진리, 부처님의 계법, 선지식을 믿는 것, 부처님의 공덕을 믿는 것이다. 재난이 일고 국가적 혼란과 온갖 악행을 막는 길은 부처님을 믿고 불법승 삼보를 믿는 것이며, 공덕을 불러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불교를 믿어야 하는가. 우리는 기도가 끝나면 사홍서원을 한다. 이 중에서 ‘중생이 아무리 많다 해도 다 건지겠다’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를 가장 먼저 왼다. 왜 ‘중생무변서원도’가 가장 먼저 서원하는 것일까.

부처님은 성도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중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부처님과 같은 지혜 와 덕성을 갖고 있다. 공덕과 위신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보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중생들은 모른다. 부처님은 고통받는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출연하셨고, 이 세상에 제도 못할 자도 모두 제도하시는 분이다. 신령스럽고 모든 공덕과 지혜를 갖고 있으며, 방편을 갖고 있고, 일체 위신력을 갖고 있다.

 

본래자리를 표현하기를 <반야경>에 ‘반야지혜는 아는 것이 없되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보지 못하되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본래 청정한 자리는 오고 가는 것이 없다. 길고 짧음, 대소가 없다. 우주를 다 집어 삼켜도 모자라고, 작기로 말하면 바늘구멍 하나 들어갈 것 없는 것이 자성자리다’라고 했다. 본래자리는 바로 무상이고 무념의 경지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등 부처님 명호를 마음에 담고 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 염불 참선 주력이든지 생활 속에서 이를 행하면 악하고 삿된 길에 빠지지 않는다. 무명이라는 것은 번뇌망상에 빠지기 때문이고, 사견(邪見).아견(我見).상견(常見).단견(斷見).계도견(戒盜見).과도견(果盜見).의견(疑見) 등 일곱가지 그릇된 견해에서 비롯된다.

 

그릇된 견해에서부터 탐심이 생기고 애착이 생긴다. 애착이 심해지면 우치(愚癡)해져 108번뇌가 일어난다. 중생을 모두 건지겠다는 서원을 세우기 위해서는 청정해야 하고, 번뇌가 없어야 한다.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는 수행 단계에 중생회향, 보리회향, 실제(實際)회향 등 삼처(三處)회향이 있다. 신앙생활을 할 때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은 시기 질투심이 없어야 한다. ‘중생무변서원도’는 내 자신을 나라고 하는 사견을 다 내려놓는 것이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화를 잘 낸다. 수행이 잘된 사람은 오만도 화도 잘 내지 않는다. 그러나 하심하는 것은 아첨하는 것과 다르다. 상대를 높이는 것이다. <법화경>에 ‘모든 일체 유정무정이 모두 부처님’이라 했다. 가정에서 부인과 남편, 자녀를 부처님처럼 대하라. 가정 사회 정치가 불안하고 혼란한 것은 나만 잘났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회향은 돌려준다는 것이다. 좋은 것을 모두 돌려주는 그 마음이 복이 돼서 오히려 만복이 굴러들어온다. 잘 살고 싶지 않아도 잘 살게 된다. 인과의 법칙에 따르면 ‘선인선과 악인악과’이다. 때로 게으름의 씨를 뿌리고 성공의 열매를 얻으려 하거나 악의 씨를 뿌리고 행복의 결과를 얻으려 하기도 한다. 중생이 무명에 쌓여있고 우치(愚癡)한 까닭이다.

 

자기가 지은 선근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회향하여 공덕의 이익을 나누는 것이 ‘중생회향’이다. 남을 위해 마음을 쓰고 나라는 딱지를 떼게 되면 철통같이 둘러 싸고 있는 아상이 깨어지고 우주 전체가 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경허선사가 오도송에서 ‘홀연히 들었다’고 했듯이 그 소리 듣는 순간 삼천대천 진리가 나다. 너와 나라는 벽을 깨게 되었기에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다. 그대로가 집이다. 자기가 지은 온갖 선덕을 이웃에게 나누어 성불의 보리과를 얻게 하는 ‘보리회향’, 자기가 닦은 선행공덕으로 모든 중생이 열반락을 얻게 되는 것이 ‘실제회향’이다.

 

이 모든 수행의 출발점은 철저한 믿음을 바탕으로, 나라는 것을 없애야 한다. 세상이 대한 견해를 깨뜨려야 한다. 지혜가 있어야 인생을 보람있게 살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홍서원과도 같은 총체적 서원과 별원을 세우고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 부처님 당시 승만부인이 10가지 서원을 세운 것처럼 구체적인 별원을 스스로 생각해서 세우는 것도 좋다. 승만부인은 일곱 번째 서원으로 ‘돈을 모이면 나를 위해서 아니고 불쌍한 중생들을 위해 돈을 모으겠다’는 것을, 열 번째 서원이 ‘여자들이 가진 폐물을 시기하고 부러워하지 않겠다’를 삼았다. 가령 예를 들어 화를 잘 내는 사람은 ‘화를 안 내야 되겠다’고 서원해 보라. 1번 화를 내면 100가지 장애가 생기는데 이를 막을 수 있다.

 

이렇듯 인생을 감동적이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항상 마음속에 불법승 삼보를 새기되 철저하고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다. 신앙심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에 전력투구하라. 노력하지 않고, 무사안일로 세상을 보내려고 하지 말고 이왕 사는 삶을 보람있고 즐겁게 살라. 철저한 신앙심을 갖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요령부리지 않고 사는 삶을 살라.

 

바른 삶을 사는 것은 그 자체가 정토요 예토다. 그대로 부처님 언어 아니고 몸짓 아닌 것이 없다. 부처님이 있어도 들을 수 없는 이유는 무명이 가로막고 있어서이다. 무명이 깨질 때 참 부처님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 참 부처의 말씀은 입이 없고, 참으로 듣는 것은 귀가 없는 것이다.

 

 정리=임나정 기자 muse724@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설정스님

 

1955년 수덕사에서 만공스님의 법손인 원담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수덕사 주지, 조계종 개혁회의 법제위원장, 제11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서울 화계사 회주로 있다.

젊은 시절부터 해인사, 범어사 선방 등에서 수행해 온 스님은 1998년 종회의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죽어도 선방에서 죽겠다”고 다짐하고, 수행에 전념해 한국 근대 불교를 일으켜 세운 경허ㆍ만공선사로 이어지는 덕숭총림의 선맥을 잇고 있다.

 

 

 

 

 

 

 

 

 

 

 

☞ 출처 : 불교신문 : http://www.buddhist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