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박희숙의 ‘그림 속 에로티시즘’ ②] 妖婦여, 권력의 여인이여! [조인스]
“뭇 남성 파멸로 이끈 팜므 파탈…화가들 그림 소재로도 매력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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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 프란츠 폰 슈툭 1906 캔버스에 유채 115X62 뮌헨 시립 렌바흐미술관 소장 | | 많은 남자 가운데 특별한 존재로 영웅이 있는 것처럼 여자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권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자신의 무기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던 여자들이 바로 그들. 우리는 그들을 ‘팜므 파탈(요부)’이라고 부른다. 남자를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여인들이다.
그렇지만 그녀들은 뛰어난 전략가다. 남자의 가장 치명적 약점인 사랑을 쥐고 흔들어 권력화하고, 인생을 재창조하기까지 했다. 이를 통해 그녀들은 단지 신분 상승의 유일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힘만으로 무림의 고수가 될 수 없는 것은 여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다양하고 화려한 유혹의 테크닉을 펼쳐야만 남자의 전리품에서 벗어나 남자의 영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1. 미모로 유혹한 여인 클레오파트라
여자로서는 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남다른 유혹의 기술이 필요하다. 팜므 파탈들은 남자의 허영심을 자극해야만 사랑을 쟁취할 수 있었기에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은 너무 많은 보상을 원하고, 욕망은 번개처럼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권력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사람에게 그보다 강한 유혹은 없다. 따라서 그 권력을 잃고 나면 스스로 권력을 만들어 내야 하는 법이다. 그 상징적 인물이 바로 기원전 50년께 권력을 향해 집념의 드라마를 펼친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다. 그녀가 오랫동안 권력을 향유할 수 있었던 기반은 자신의 미모였음은 물론이다.
클레오파트라는 권력 중심부에서 태어났으나 절대권력을 쥘 수 있는 운명은 아니었다. 파라오의 율법에 따라 남동생과 결혼해 왕좌에 올랐으나 권력을 보장받을 수 없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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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에 물린 클레오파트라> 구이도 레니 캔버스에 유채 113X94 영국 왕실 소장 | | 꿈꾸던 미래의 초상을 잃어버릴 처지에 있던 그녀는 카이사르를 유혹해 그의 애첩이 되면서 비로소 권력의 중심부에 서게 된다. 권력을 남용하기 좋아하는 남자의 심리를 꿰뚫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만들었던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치밀한 계산 아래 사랑을 미끼로 항상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만 유혹했다. 그녀에게 사랑은 순수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다. 오로지 정치적 수단일 뿐이었다. 그 결과 정치는 그녀에게 최상의 오르가슴을 선사하는 수단으로 통했다.
클레오파트라의 존재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옥타비아누스에게는 그녀의 유혹이 통하지 않았다. 세월의 흔적을 무시하고 유혹의 기술을 펼쳤으나 운명에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16세기 화가들에게 클레오파트라의 자살은 흥미로운 주제였다.
권력지향적인 그녀는 화가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지 못하고 남자를 유혹하는 악녀로 인식되기 일쑤였다. 그중에서 구이도 레니(1575~1642)의 작품 <독사에 물린 클레오파트라>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구이도 레니는 클레오파트라의 관능성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화가다. 이 작품은 그녀의 자살에 관심을 갖기보다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독사는 클레오파트라의 젖가슴을 빨기 위해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뱀의 유혹에 빠진 그녀는 죽음의 두려움도 잊은 채 황홀경에 빠져 얼굴이 붉어졌다. 독은 그녀의 온몸에 퍼져 살갗은 창백해졌다.
구이도 레니는 젖가슴을 강조하기 위해 배경을 어둡게 처리했다. 그가 이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죽음에 이르는 성적 황홀경이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의 관능미를 최대한 부각시킨 다른 작품도 제작한다.
2. 몸매로 유혹한 여인 밧세바
미모는 신의 은총이지만, 아름다운 여자는 세상에 엄청 많다. 신은 공평하기 때문에 경쟁자를 곳곳에 만들어 놓는 여유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미모 하나만으로 승부수를 펼치기에는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다. 남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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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세바> 한스 메믈링 1482 패널에 유채 191X84 슈트투가르트 주립미술관 소장 | | 남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벗은 몸을 살짝 드러내는 유혹의 기술을 구사한 여자가 구약성서에 나오는 밧세바다. 밧세바는 다윗과 함께 많은 화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구약성서의 내용은 이러하다.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피할 수 없는 책임감으로 봄날 잠을 이루지 못하고 궁전 옥상을 산책한다. 그때 목욕하던 아름다운 여인 밧세바를 보게 되는데, 그녀의 눈부신 몸매는 그를 자극하고도 남았다. 다윗 왕은 욕망의 불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밧세바를 불러들인다.
다윗 왕은 용맹한 군인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와 정사를 나누며 기쁨을 만끽한다. 그러나 끝내 감췄어야 할 유부녀와의 간통은 임신으로 들통나게 된다. 다윗 왕은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권력을 이용해 우리야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결국 그 죄로 인해 다윗 왕은 신의 분노를 사 아들을 잃게 된다. 아들을 잃은 다윗 왕은 죄를 뉘우치고 신의 용서를 받는다.”
하지만 밧세바의 목욕은 권력을 향한 의지였다. 여자를 좋아하는 다윗 왕이 옥상에서 산책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밧세바는 자신의 집 옥상에서 1시간 전부터 목욕을 하고 있었던 것. 그녀는 우연을 가장해 유혹의 미끼를 던진 셈이다.
한스 메믈링(1435~94)의 <밧세바>는 성서의 내용보다 유혹하는 요부 밧세바를 더 부각시킨 작품이다. 이 그림 속의 밧세바는 욕조에서 나와 샌들을 신고 있다. 그녀는 시녀가 들고 있는 목욕가운으로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고, 다윗 왕은 화면 왼쪽 위 옥상에서 붉은 옷을 입고 훔쳐보는 중이다.
하지만 화면에서 다윗 왕이 그녀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것은 다윗 왕이 신에게 용서받았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한스 메믈링은 이 작품에서 작은 가슴에 가녀리게 보이는 여인의 몸매를 표현했다. 그러나 살짝 나온 복부가 무척 매혹적이다.
3. 춤으로 유혹한 여인 살로메
남자를 유혹하는 데 춤처럼 결정적인 것은 없다. 이성을 유혹하는 데 춤이 빠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춤은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이다. 빠르면서도 때로는 조용하게 움직이는 무용수의 몸짓은 잠자던 욕망을 깨운다.
하지만 무용수의 계산된 동작이든 아니든 춤은 욕망을 부추기고 비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보이지 않는 유혹이 스며 있는 무용수의 춤은 욕망의 배출구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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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에드워드 번 존스 1886 캔버스에 유채 197X75 개인 소장 | | 역사적으로 초창기의 춤은 언어를 대신하고, 신과의 소통을 보여 주는 문화였다. 춤은 공동체의 메시지 전달에 충실했으며, 그 사회를 묶어 주는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춤은 유흥의 볼거리 역할도 함께 했다. 음악에 맞춰 어우러지는 춤은 사람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선사하는 유흥의 필수 요소 중 하나로 통했다.
특히 하늘하늘한 날개옷을 입고 밸리댄스를 추는 여인은 몹시 아름답다. 엉덩이를 흔들 때마다 무용복에 달려 있는 장식이 흔들리는 소리 또한 자극적이어서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배꼽춤을 추면서 이성을 유혹한 여인이 바로 살로메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살로메는 헤롯 왕과 내연의 관계에 있던 헤로디아의 딸이다. 헤로디아는 헤롯 왕의 동생의 아내였다. 세례자 요한은 그들의 불륜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에 헤롯 왕은 요한을 죽이고 싶었으나 사람들이 존경하는 그를 제거할 용기는 내지 못했다. 대신 그는 요한을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세인의 비난을 두려워한 헤로디아는 계략을 세운다. 춤을 잘 추는 딸 살로메를 꼬드겨 헤롯 왕의 생일 연회에서 왕을 유혹할 것을 당부했던 것이다. 헤로디아는 유혹에 약한 헤롯 왕이 살로메의 춤에 빠져 선물을 하사할 것으로 믿었다.
살로메는 격정적이면서도 달콤한 춤으로 헤롯 왕을 유혹했다. 헤롯 왕은 매혹적인 살로메의 춤에 빠져 원하는 선물은 무엇이든 주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연회장 공개석상에서였다. 이에 살로메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에게 약속했기 때문에 헤롯 왕은 어쩔 수 없이 요한을 참수한다는 내용이다.
요한의 참수 장면은 극적인 요소 때문에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많은 화가가 그 장면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했다. 하지만 19세기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에서 살로메는 남자를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의 이미지로 그려졌다. 오스카 와일드는 살로메를 성서의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표현했던 것이다. 이 영향으로 19세기 이후 많은 화가는 살로메를 팜므 파탈의 대표적 여인으로 그렸다.
프란츠 폰 슈툭(1863~1928)의 <살로메>도 요부상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이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그녀는 전형적인 요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벌거벗은 상반신을 강조하기 위해 배경을 어둡게 처리했으며, 배꼽춤을 추기 위해 입은 스커트는 금방 벗겨질 것같이 고혹적이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춤을 추는 살로메의 잘록한 허리는 더욱 육감적이다.
이 작품에서 살로메는 몸으로 유혹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림 오른쪽 하단의 살로메 뒤로 한 못생긴 남자가 그녀를 흠모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세례 요한의 목이 담긴 쟁반을 든 모습이다. 그의 못생긴 외모는 살로메의 미모와 대비돼 더욱 강조되는 듯하다. 프란츠 폰 슈툭이 작품의 배경을 어두운 밤하늘로 선택한 것은 죽음과 파멸을 상징하기 위해서다.
4. 목소리로 유혹한 세이렌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 목소리의 여자 주인공이 있다면 어떨까? 그녀의 달콤하면서도 끈적거리는 목청에서 사랑의 찬가가 흘러나온다면 금상첨화일 것.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남자는 드물 것이다.
목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어 유혹의 마법을 발휘하고도 남음이 있다. 좋은 목소리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부는 바람과 같이 신선하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다. 아무리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고 해도 목소리가 유리창 깨지는 소리 같다면 사랑하고 싶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고대 여성들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는 유혹의 최고 기술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세이렌은 감미로우면서도 사람을 끄는 목소리를 가진 여인이다.
호메로스의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에 나오는 세이렌은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자, 하반신은 물고기이지만 아름다운 노래로 남자를 유혹해 바다에 빠지게 한다. 세이렌은 사랑에 속박당하지 않고 유혹을 즐겼을 뿐이다.
에드워드 번 존스(1833~98)의 작품 <심연>은 <오디세이>의 사연을 충실하게 담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세이렌은 새의 이미지로 나오는데, 새는 지상과 천상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천사의 이미지였다. 중세 이후 세이렌은 새의 이미지 대신 인어의 모습을 띠게 된다.
남자는 죽음에 이르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노래에 빠져 자신의 죽음조차 깨닫지 못한다. 세이렌은 그 남자를 꼼짝 못하게 포옹한 채 미소 지으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에드워드 번 존스는 세이렌의 존재를 죽음의 그림자를 지닌 여인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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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와 옴팔레> 프랑수아 부셰 1730년경 캔버스에 유채 90X74 모스크바 푸슈킨미술관 소장 | | 5. 섹스로 유혹한 여인 옴팔레
섹스는 유혹의 결정체다. 여자가 미모·몸매·목소리·춤 등 다양한 볼거리와 각양각색의 즐거움으로 남자를 유혹해도 마지막에 섹스가 빠진다면 사랑은 어쩐지 허망하게 여겨진다. 섹스는 서로 탐색해야 하는 불편한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서로 묶어 주는 지름길을 선사한다지 않는가? 이처럼 섹스는 안락한 집과 같은 편안함을 제공하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정부 중 한 사람인 루이 15세의 정부 마담 드 퐁파두르는 불감증 환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불감증 때문에 평생 사랑을 잃을 것을 두려워했다. 사랑은 변하지만 섹스의 즐거움은 결코 변하지 않기에 그녀는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는 그리스 신화 중에서도 남성을 유혹하는 기술이 뛰어난 여자였다. 신들의 노여움을 산 헤라클레스가 옴팔레의 궁전에서 노예로 살게 되었다. 당시 경제부국으로서 쾌락의 도시였던 리디아의 여성들은 결혼 후의 만족한 생활을 위해 혼전관계를 통해 섹스를 배우는 풍조가 있었다.
여왕 옴팔레의 남성편력은 리디아에서도 최고였다. 그녀는 탁월한 재주로 남자를 우리에 갇힌 동물 다루듯 했다. 옴팔레의 성적 매력에 빠져든 헤라클레스는 더 이상 강한 남자가 아니었다. 3명의 자식을 낳은 옴팔레가 헤라클레스를 놓아준 것은 성적 매력이 감소해서가 아니라 그의 신분을 알고 해방시켜 준 것이었다.
강한 남성 헤라클레스를 손아귀에 넣고 길들인 여인 옴팔레의 성적 매력에 화가들은 주목했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는 프랑수아 부셰(1703~70)가 신화를 빌려 육체의 탐닉을 표현한 작품이다.
옴팔레의 다리가 헤라클레스의 구릿빛 허벅지에 얹혀 있는 도발적인 모습은 사랑의 절정을 상징하는 듯하다. 완벽한 근육질의 헤라클레스는 정욕을 못 이겨 우윳빛의 탐스러운 가슴을 움켜쥐고 있다. 두 눈을 감고 황홀경에 빠져 있는 두 남녀의 관능적 모습에서 남녀간의 농익은 정염이 잘 드러난다.
프랑수아 부셰는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 퐁파두르의 눈에 띄어 궁정화가로 임명된다. 쾌락에 빠져 있던 귀족들의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부셰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은 당시 분위기가 음화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일 터다. 신화를 끌어들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글=화가 박희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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