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을미왜변 당시 명성황후가 시해된 경복궁 내 건청궁이 일제에 의해 헐린지 근 100년만에 복원됐다.
문화재청은 1873년 조선왕조 역대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 등을 보관할 목적으로 지어졌다가 을미왜변 직전에는 고종과 명성황후 거처로 사용한 건청궁의 복원을 완료하고 18일 개문식을 가졌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이날 개문식에서 "국민소득 1천 달러 시대에 복원한 건물은 지금 전부 뜯어 고쳐야할 지경이 됐다. 하나를 짓더라도 제대로 짓겠다는 각오로복원했다"며 "21세기 들어 가장 잘 지은 한옥이 이 건청궁일 것"이라고 말했다.
건청궁은 궁 내에 99칸의 양반 사대부가를 재현한 창덕궁 연경당(演慶堂), 낙선재(樂善齋) 등 처럼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된 건축형식을 지녔으며, 왕의 거처인 장안당(長安堂), 왕비 거처인 곤녕합(坤寧閤), 그리고 부속건물인 복수당(福綏堂)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오랫동안 평안하다'는 뜻의 장안당은 27칸, 측면 3칸, 7량(집)의 건물로 상류주택 양식에서도 가장 격조가 높은 건물로 전한다. 장안당에는 북행각과 동행각이 딸려 있는데 북행각은 1887년 미국의 에디슨전기회사가 발전기를 설치해 한국 최초로 전깃불을 밝힌 곳으로도 기록돼 있다.
곤녕합의 곤녕(坤寧)은 '땅이 편안하다'는 뜻으로 왕비의 덕성을 표현한 말이다.
곤녕합의 남쪽 누각에는 옥호루(玉壺樓)라는 현판이 붙어있는데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 혹은 시신이 잠시 안치된 장소로 알려져 있다.
건청궁은 을미왜변 이듬해인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하면서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해 1909년에 일본인들에 의해 헐려 사라졌으며,대신 그 자리에는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다. 이후 이 미술관은 한동안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 철거됐다.
건청궁 복원은 2004년 6월에 시작돼 3년여 만에 마무리됐으며 공사비로 100억 가량이 집행됐다. 건청궁은 처음 지었을 당시 252칸이었으나 복원된 건청궁은 관문각 일대의 60칸을 제외한 192칸 296평이다. 1평 당 공사비 3천 만원 이상 든 셈이다.
한영우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장은 "건청궁은 고종이 근대화를 추진한 공간이자명성황후가 시해된 비극의 현장"이라며 "을미왜변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본격적으로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청궁 내부에는 경남 산청군에서 기증한 감나무 고종시(2주)와 신한은행에서는기증한 매화나무(2주)를 심었다. 고종시 나무는 고종과 명성황후가 경남 산청에서 난 곶감을 특히 좋아했다고해 붙은 별명이다.
건청궁 관람은 20일부터 1일 6차례(오전10시, 11시, 오후 1시-4시)에 걸쳐 실시하며 관람인원은 30명으로 제한하나 건청궁 내부까지 모두 둘러볼 수 있다.
관람 희망자는 경복궁 홈페이지(http://www.royalpalace.go.kr)를 통해 접수해야 한다.
--동아 안철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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