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책 속의 향기

오래된 연인과 소풍을 떠나는데 안개는 자욱하고…

淸潭 2007. 7. 29. 10:19
오래된 연인과 소풍을 떠나는데 안개는 자욱하고
 
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소설집|문학동네|256쪽|9500원
소설가 편혜영(35)의 작품을 읽는 것은 삶의 기저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썩어가는 시체와 말라붙은 피, 절단된 육신과 아이들의 입을 들락거리는 벌레 가 난무하는 끔찍한 장면이 잔뜩 등장하는 첫 소설집 ‘아오이 가든’(2003)을 통해 편혜영은 불안을 극한대로 증폭시킨 엽기적 소설 세계를 창조했다. 그녀는 “소설 밖의 세계도 소설 못지 않게 불안정하고 공포스럽다”고 말하려는 듯 했다.

8편의 단편이 수록된 신작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는 ‘아오이 가든’ 이후 4년 만에 내놓는 그녀의 두 번째 작품집이다. “기본적인 정서는 같아요. 현실은 늘 폭력적이거나 불안을 내포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여전히 깔려 있죠. 하지만 전작보다 표현 방식을 차분하게 가라앉혔어요. 소재도 일상적인 것에서 찾았고요.”

이번 작품집에서는 소설 밖으로 흘러나오던 흥건한 피가 멎어 있다. 작가는 “전작이 이미지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담고자 했던 메시지보다 장면이 부각된 측면이 있었다”는 말로 변화를 준 이유를 설명했다. 대신 훨씬 교묘해졌다. 도처에서 위험의 징후가 느껴지지만 막상 눈 앞에 펼쳐지지는 않는다. 예고된 파국을 기다리는 것은 종말을 직접 대면하는 것보다 피를 마르게 한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유독 고속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눈에 띈다. 수록작 ‘소풍’과 ‘사육장 쪽으로’에서 고속도로는 누군가를 치고 달아나지만 불안으로부터 끝내 탈출하지 못하거나, 죽어가는 자식을 싣고 병원을 찾아 달리는 숨가쁜 공간이다. 오래된 연인이 기분전환을 하려고 소풍을 떠나는데 안개가 자욱하다. 남자는 날씨가 좋아질 징조라며 반기지만, 그녀는 고속도로에 들어선 뒤로 멀미에 시달린다. 즐거운 소풍은 야간의 도로를 달리던 차가 무언가를 친 뒤 순식간에 끔찍한 악몽으로 돌변한다.

‘사육장 쪽으로’의 주인공 남자는 멋진 전원주택에 살며 대도시로 출퇴근한다. 언뜻 안정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집에 압류 경고장이 날아들었고 집 근처에는 맹견을 기르는 사육장이 있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개가 짖는 소리 때문에 개 사육장이 있다는 것을 알 뿐, 막상 그것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디선가 나타난 개에게 아들이 물리자 그는 차를 타고 병원을 찾아 나선다. 병원을 찾지 못하고 고속도로에 들어서 질주를 시작한다.

편혜영의 소설은 잘 읽히면서도 독자를 불안하게 한다. 문학평론가 김화영씨는 그 불안을 “직접적 접촉 없이 신호로만 기능하는 각종의 강박적 위협”이라고 말하고, 그녀의 소설이 “위협적 사건과 상황을 개인적 두려움에서 인간 보편의 조건으로 서서히 이끌어 올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평했다.

김태훈 기자(글) , scoop87@chosun.com 김정운 인턴기자(사진·한동대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