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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제 일으키는 족속, 남자… 왜?

淸潭 2007. 4. 28. 12:57

세상의 모든 문제 일으키는 족속, 남자… 왜?

 

 

 이 세상은 남자가 지배한다. 그렇게 믿었고, 그렇게 학습돼 왔다. 세계의 정치지도자와 경제리더 대부분이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자랑(!)스럽다. 그러나 그런 남자들은 전혀 딴판의 뒷모습을 갖고 있다. 폭력사건 범인의 90% 이상은 남자들이다. 연쇄살인범과 총기난사 사건 범인, 감옥에 수감된 죄수 중 90% 이상이 남자들이다. 스캔들과 부패 정치인, 전범(戰犯)과 테러리스트도 거의 모두 남자들이다. 학교에서 행동장애를 가진 어린이 중 90%가 남자 아이들이며, 학습장애를 가진 어린아이 중 80%가 남자아이들이다.

남자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미숙하다. 이혼하는 부부 5쌍 중 4쌍은 여자가 이혼을 요구한다. 남자는 늘 이혼당한다. 남자들끼리는 술(약물)의 도움 없이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 남자의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 중 70%는 남자들이다. 생존율과 행복지수 같은 통계에서도 남자의 현실은 우울하다. 남자는 여자보다 자살률이 4배나 높다. 12세에서 60세까지 남자의 사망원인 중 가장 큰 비율은 자살이 차지한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평균수명이 6년 정도 짧다.





남자! 이쯤 되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족속은 이 남자라는 동물 아닌가. 도대체 남자들은 왜 이 모양일까. 타개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25년간 가족문제를 연구한 호주의 심리학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브 비덜프(Steve Biddulph)는 제대로 된 남자가 되지 못하는 까닭은 남자가 되는 교육과 훈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남자들이 정신적으로 행복해지고 건강해지면 남자들의 폭력과 욕심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1994년 호주에서 초판이 간행된 이 책은 그해 25만부가 팔렸고, 지금까지 세계 15개국에서 번역됐다.

저자에 따르면 소년이 제대로 된 남자로 자라지 못하는 까닭은 아버지와 적절한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지론은 “남자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어떤 점에서는 그를 존경하는 마음을 품지 않고서는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현대를 ‘아버지 부재(不在)의 시대’로 진단한다. 농경시대에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삼촌들과 마을 어르신들이 아들들을 가르쳤다. 산업혁명 이후 세상은 달라졌다. 아버지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직장에 돈을 벌러 나간다. 아버지는 ‘걸어 다니는 지갑(walking wallet)’일 뿐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남자들은 자기 마을, 자기 농장에서 아내와 자녀들과 일하지 않고, 공장이나 광산에서 따로 떨어져 일하게 되었다.”

저자가 제시하는 통계에 따르면 남자들 중 30%는 아버지와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다. 30%는 아버지와 껄끄럽고 힘든 관계다. 나머지 30%는 잘 지내는 편이지만 가끔 전화하거나 가족모임에 참석하는 정도다.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내는 아들은 10명 중 1명도 채 되지 않는다.
 

저자는 “성숙한 남자라면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남자들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버지에 대해 존경심을 갖는 것은 자기 속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사랑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실천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지금 당장 아버지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다. 아버지와 간극을 메우고 싶은 한 젊은이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몇 년 사이 아버지에게 전화한 적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저예요.”

“어, 그래! 잘 있었냐? 엄마 바꿔주마….”

“아니, 엄마 바꾸지 마세요. 아버지하고 얘기하고 싶어요.”

“왜? 돈 필요하냐?”(혹은 “무슨 사고라도 쳤냐?”)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대학에 보내주고, 먹여 살리느라 힘이 드셨고, 자신이 이만큼 자라게 된 것은 아버지 덕분이라고 말했다.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말도 했다. 아들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아버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너, 술 마셨냐?”

물론 쉽지는 않다. 저자는 “아버지가 당연히 의심을 품겠지만 아버지를 이해하겠다는 것 외에는 다른 목표를 갖지 말고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라”고 권유한다. 먼저 자신이 어렸을 때 일어난 일, 자신을 기르면서 아버지가 참아야 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물으면서 대화를 나눠야 한다.

반대로 당신이 아들이 있는 아버지라면 참된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왕처럼 군림하는 아버지, 아들의 일을 심판하는 아버지, 자녀들의 곁에 있지 않는 아버지는 아들을 제대로 된 남자로 키울 수 없다. 저자는 땀 냄새 배인 몸으로 어린 아들을 안아주고, 아들과 레슬링을 하라고 말한다. 레슬링을 할 때는 아들을 때로는 이겨야 하지만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아들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또 아들이 아버지를 다치게 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아버지를 본보기로 삼아 아들은 자신의 힘을 자기 안에 담아두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요즘 시대 아버지가 아들의 교육에 열정을 불태우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저자는 학교에서 어른 남자들이 ‘멘토(mentor)’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초등학교에는 여자 교사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거의 모든 교육현장에서 우수한 남자 교사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명 비판에서 교육문제까지 저자가 다루는 범위는 광범위하다. 주로 호주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모습과도 그리 멀지는 않다. 좋은 아버지, 좋은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해법이 너무 순진하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 의지하며 배려하는 참된 남자들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지금 당장 무슨 일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는가.

더 읽을 만한 책
무쇠 한스 이야기: 남자의 책, 남자의 탄생, 남자의 미래 외

스티브 비덜프는 각 장마다 ‘Iron John’이라는 책을 인용하고 있다. 그만큼 이 책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다. ‘무쇠 한스 이야기: 남자의 책’(씨앗을뿌리는사람)으로 번역된 이 책은 동화 ‘무쇠 한스’ 이야기를 빌려 현대 남자들이 겪는 괴로움과 남자다움의 상실을 이야기한다.

정치학자이자 미술평론가인 고(故) 전인권 박사의 ‘남자의 탄생’(푸른숲)은 가족과 친구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한국 남자들의 인성형성 과정을 자신의 유년시절 경험을 풀어 쓴 책이다. 가족관계가 학교와 군대와 사회까지 연장되는 한국 특유의 사회문화를 날카로운 분석과 감성적인 문체로 묘사했다.

‘남자의 미래’(매리언 살츠먼 외 지음·김영사)는 힘·명예·인격처럼 최고의 남성적 특징을 가지면서도 애정 어린 자녀양육·소통성·협력 같은 여성의 긍정적인 특징까지 두루 갖춘 남성성을 ‘M-ness’로 규정한다. 이 책의 저자는 남자들이 “남성이 최고라는 고정관념과 맞설 때 미래가 있다”고 주장한다.

남자를 다룬 책은 의외로 많다.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 남자’(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들녘)는 남자를 ‘유치하고 불쌍한 동물’로 파악하며 여자들의 관용을 호소한다. 남자가 행복해지는 기술을 표방하는 ‘남자생활백서’(가야북스), 중년 남자의 고민과 노후에 대한 단상을 담은 ‘남자, 마흔 이후’(전경일 지음·21세기북스)도 있다.

[이한수 기자 hs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