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께 보내드린 곶감, 차마 못드시는 이유
몇일전, 두 딸내미들 데리고 마트에 갔습니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신김지가 조금 있어서 김치찌개나 끓여볼까 싶어 돼지고를 조금 샀습니다. 야채 몇가지 사고 모퉁이를 돌아 과일 코너를 지나는데 하얀 가루 잔뜩 묻어있는 곶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중국에 살면서 중국산 곶감을 보는건 당연한건데 우숩게도 그 순간 "어, 중국산이네." 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올뻔 했습니다. 어찌되었건 먹고싶은 마음에 다섯개 포장된걸 하나 샀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먹고싶던 곶감을 한입 베어 물었습니다. 꽤 맛있어서 계속 먹다보니 곶감귀신 소릴 듣는 첫째 동생이 떠올랐습니다. 한보따리 싸서 한국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구요. 그러다 찬찬히 찬찬히 생각해 보니 중국서 보내는 비용이면 한국서 사먹는비용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인터넷 주문이었지요.
생각난 김에 인터넷쇼핑몰을 들여다 봤습니다. 여기 저기 둘러보다 상품평이 비교적 좋은 제품을 찾았습니다. 그제품으로 주문을 하고 결재까지 마친후 상품 사진을 한번 더 쭈욱 훑어 보는데, 물렁물렁하니 어른들 드시기 딱 좋게 생긴 것이 팔순의 외할머니부터 시어머니, 친정엄마 까지 다 떠오르게 했습니다. 두말할것도 없이 마음가는대로 다 주문했습니다.
주문한 다음날, 미니홈피에 너무 맛있다며 고맙다는 동생의 메세지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할땐 항상 모험을 하는 마음으로 물건을 사게 됩니다. 특히 먹는건 말이지요. 그런데 다행히도 먼저 받은 동생의 글을 보니 어른들도 좋아하실것 같아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메세지 보고나서 친정집에 전화해 보니 벌써 받으셨다 하시고는 뭘 이런것까지 신경쓰냐면서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댁에 전화를 했습니다. 아직 못받으셨다는 시어머님께서도 받으신것 마냥 좋아하셨습니다.
이틀후, 곶감 받으시고 맛은 보셨는지 궁금해서 시어머님께 또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니, 저예요.”
“응, 아참 곶감 받았다. 아이 고거 참 맛있더라. 달기도 허고…”
“그러셨어요? 다행이에요. 반건시니까 오래 두지 마시고 바로 드세요.”
“아야, 근디 고거 냉장고에 넣어노믄 안된다냐?”
“그래도 되는데 왜요?”
“응 그것이, 아 너그 아부지가 살아기실 때 감을 그리 좋아혔잖냐. 니가 보내준 것이 하도 맛있어서 아부지 제사날 상에 올릴라고 시방 한 개 맛보고 냉동에 넣놨는디…”
“…”
"어머니, 제사 돌아오려면 아직도 두달은 더 있어야 되잖아요. 그러지 마시고 어머니 드세요. 제사때 맞춰서 제가 또 보내드릴께요.”
“아이고 내가 괜한 소리 혔는갑다.”
“아니에요, 동네 할머니들 오시면 같이 나눠드시고 그러세요. 아셨죠? 건강 조심하시구요. 또 전화드릴께요. 꼭 다 드세요”
꼭 드시라며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한개만 드시고 고이고이 싸서 냉장고에 넣으시는 어머님 모습이 떠오르면서 자꾸만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아버님 살아계실 때 어머님께 그다지 좋은 그늘이 아니셨다 들었습니다. 늘 생활고에 힘드셨다는 어머님은 번데기에 아이스크림에 닥치는 대로 노점일을 하셨고 병원 청소일을 하시다 미끄러져 허리도 다치셨다고 했습니다. 거기다가 제가 시집오기 훨씬 전에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님을 어머님은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발하시느라 자신의 건강은 돌아볼 틈도 없으셨답니다.
제가 첫딸을 출산하고 한국에 있을때만 해도 아버님은 종종 앉으셔서 손녀딸 안아보실 만큼 기력이 있으셨는데 이듬해 둘째를 출산했을때는 갓난아기 안을 힘도 없으셨고 마냥 누워만 계셨습니다.
그런 아버님을 어머님은 더 살뜰히 보살피셨습니다. 아버님 옷한번 갈아입히는게 저도 거들어 봤지만 보통 힘든게 아닌데도 아플수록 깨끗해야 한다며 이삼일에 한번씩 갈아입히셨고 맛있는 음식은 꼭 아버님 먼저 드시게 하셨습니다.
몇일에 한번씩 목침에 머리를 가누게 한후 앙상한 얼굴에 조심스레 면도도 해주시고 세수도 시키시고…, 그러면서 대답 한마디 못하시는 아버님 얼굴을 마주보며 말씀도 참 많이 하셨습니다.
언젠가 고단함이 밀려오는 저녁에 잠드신 아버님 곁으로 나란히 앉은 제게 어머님은 "아픈 사람이 집안에 누워있으니 웃을일도 없는디 우리 소연이 은혜땜시 웃기도 헌다." 하시며 지친 마음을 슬며시 보이셨습니다. 그리고는 슬며시 달력으로 눈을 돌리시는데 그모습엔 곧 중국으로 돌아갈 손녀딸들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났습니다.
출국 할 날을 한달 보름정도 앞둔 제작년 4월, 아버님은 앉기도 하시고 죽도 잘 드시며 많이 좋아진 모습이셨습니다. 이때다 싶어 저는 녹두죽을 끓여 직접 수저로 조금씩 입안에 넣어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아버님 희미한 목소리로 고맙다시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런 모습에 괜히 제가 기운이 났고 조금이나마 좋아진 아버님 모습을 보고 출국을 할수 있을것 같아 마음이 아주 가벼웠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기력이 다하셨는지 자꾸만 어머님을 ‘엄마’라 부르시며 아이처럼 변해갔습니다. 한쪽 엉치뼈에 생긴 욕창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자꾸 번져갔습니다. 그 상처를 보자니 아버님은 조금씩 삶을 등지고 계신듯 했습니다.
아버님 모습이 애처롭고 안타까우셨던 어머님은 조석으로 손바닥 닳도록 비비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곁에 조금만 더 계셔주시길 간절히 바라시면서요. 조바심이 난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있던 남편에게 조만간 들어와야 될것 같다고 알렸습니다. 남편은 회사일정과 짜맞추어 나올 날짜를 정해두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우리 아버님, 어머님의 기도에도 아랑곳없이 제작년 5월, 막내 아들 중국서 올날 몇일 앞두고 눈도 못감으신채 그렇게 멀리 가시고 말았습니다.
아버님 장례를 치룬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나고 두번째 제사가 다가옵니다. 우리 어머님, 맛있는 곶감을 보시고는 여전히 아버님을 먼저 챙기십니다. 어머님 마음속엔 아직 우리 아버님 그대로 계신가 봅니다.
아버님 멀리 가시고 얼마 되지않았을때 어머님께선 넋두리처럼 그러셨습니다. “몸은 힘들었을 지언정 아부지 살아 있을때가 더 좋았지 싶다. 얼매나 좋은데 갔는지 한번 보고잡은디 어찌 그리 매정허게 꿈에도 안찾아온다.” 라구요. 그렇게 그리움 반, 야속함 반 인 마음을 살짝 내비치셨지요.
아버님 병수발 하시며 10여년을 하루같이 긴장속에 사시던 어머님, 아버님 멀리 보내시고 긴장이 풀리신 탓인지 자꾸만 여기저기 많이 아프신듯합니다. 어머님께서 이젠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 마음 한곳에 고이 접어두시고 몸도 마음도 그저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동네 아파트 할머니들과 자주 어울려 마실도 다니시고 거나하게 막걸리도 한잔 하시며 이제 부터라도 그렇게 즐거움만 차고 넘치는 날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소연이 은혜 데리고 찾아뵐때까지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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