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피디의 황우석 9차공판 취재후기] 증인 문신용의 책임과 특권 | ||||
대한민국 특권위에 있었던 문신용, 그에게서 실종된 책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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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 없이 증언할 것을 선서합니다.”
2007년 3월20일(화)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형사 417호 대법정.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에 대한 9차 공판에 서울대 의대 문신용 교수가 증인으로 나왔다. 한 때 황우석 박사, 노성일 이사장과 함께 사이언스 논문 연구를 이끈 ‘도원결의 3형제’중 맏형으로 불릴 만큼 비중있는 문신용 교수. 검찰 측 질문이 시작됐다.
논문 뜰 때는 연구실적, 논문 조작 밝혀지자 “내 이름이 왜 거기 있나?”
검찰 : 황우석 박사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서 대부분의 실용결과를 조작했습니다. 증인은 공동연구자로서 이 사실을 전혀 몰랐나요?
문신용 : 몰랐습니다. 2005년 논문이 저도 모르게 런던에서 발표됐어요. 이후 황 박사가 귀국해서 서울에서 전화를 저에게 걸어 “저자모임을 하겠다.“라고 알려왔으나 저는 모임에 가지 않았습니다. 모르게 발표된 논문...제가 왜 갈 이유가 없다고 분명히 말을...(중략) 저는 2005년 논문에 관여한 사실도 없고, 기획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참여한 바가 없음을 주장하는 노(老)교수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완고했다. 그러나 잠시 후 황 박사 측 변호인단의 심문이 시작되자 완고하던 그의 목소리엔 ‘당황스러움’과 ‘떨림’이 섞여 들어갔다. 바로 이 장면이다.
변호사 : 증인께선 검사님 앞에서 “어떻게 내가 2005년 공동저자가 됐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셨죠?
문신용 : 맞습니다.
변호사 : (준비된 슬라이드 화면을 보여주며) 그러면 잠시 여길 봐주시죠. 증인께서 단장으로 계셨던 과학기술부 지원 ‘세포응용연구사업단’의
* 위 이미지는 세포응용연구사업단 소식지 제7호 14쪽 ‘사업단 연구 성과’ (2005.8)로, 당시 법정에서 사용된 슬라이드 사진과는 다를 수 있으며 다만 맥락은 일치한다는 점을 밝힙니다. 변호사 : 2005년 논문에 전혀 참여하신 바가 없다면 그 논문이
문신용 : .....그렇진 않습니다.
변호사 : 그렇지 않다니요? 표의 맨 오른쪽의 IF(Impact Factor, 논문인용도)를 보세요. 다른 논문은 IF점수가 3점, 5점인데 사이언스 논문은 무려 29점입니다. 이거 하나가 다른 논문 다 합친 것보다 클 만큼 대단한 실적으로 보고까지 해놓으셨는데...이제 와서 논문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기여한 바도 없다면 당시 보고가 사실과 다르다는...
문신용 : 사실과 다른게 아니죠....당시 저희도 황 박사를 많이 도와드렸습니다.
변호사 : 아니 증인께선 황 박사 연구실에 가지도 않았다. 평소 연락도 안했다 라고 증언하시고선 많이 도와드렸다니요?
문신용 : 그게 아니라...
2004년에는 공동연구자, 2007년에는 “그저 도와주려고 했을 뿐...”
문신용 교수는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교신저자였다. 학계에서 ‘교신저자’라면 ‘제1저자’와 맞먹을 정도의 기여를 한, 논문의 방향을 이끄는 리더 학자로 꼽힌다.
실제로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이 발표되고 대박이 터졌을 때, 문 교수는 단순히 황우석 박사를 도와주는 ‘조력자’로서가 아니라 명백한 ‘공동연구자’로 알려졌다. 자신이 단장으로 있던 ‘세포응용연구사업단’의 주요성과로 기재됐을 뿐 아니라 당시 모든 언론에도 문 교수의 이름과 얼굴은 황 박사와 대등한 위치의 ‘공동연구자’로 소개됐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위의 이미지는 세포응용연구사업단 연구소식지 제3호(2004.4)에서 따왔음.
하지만 상황이 급변해서 2004년 논문의 실체인 1번 줄기세포마저 ‘처녀생식’ 논란에 휩싸이게 된 지금, 문 교수는 이날 법정에서 다음과 같은 증언을 했다.
변호사 : 당시 공동연구의 업무분담을 보면 황우석은 체세포 핵이식과 배반포 형성,
문신용 : 그렇게 A,B,C를 나누듯 명쾌하게 역할분담을 한 게 아니라...
변호사 : 증인, 말씀 바로 하셔야 합니다.
문신용 : 당시에는 황 박사를 무조건 도와주자고 했지 누가 어떻게 누가 어떻게 이러지 않았다는거죠... (중략) 변호사 : 증인, 지난 공판 때 노성일 이사장도 나와서 증언했습니다.
문신용 : 그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황 박사를 도우려고 했을 뿐...
논문이 뜰 때는 “공동저자”로 황 박사와 얼굴을 나란히 했던 분이었지만, 막상 그 논문이 문제되자 “총괄 책임자는 황우석...나는 그저 도우려했을 뿐...”이라고 하시는 그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다.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사회라면...
법정을 나서며 필자의 머릿속에는 친구가 들려준 직장 경험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자신의 고유 업무가 아닌데도 아이디어를 내고 일을 떠맡았다. 전례가 없었기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묵묵하게 뚫고 나가 결국은 회사 이미지 개선에 좋은 효과를 가져 오는 성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문제는 몇 달 뒤, 하필이면 전 직원이 다 바쁠 때 그 업무에 대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 때 윗 분들과 동료들이 하는 말... “사실 제가 한 일이 아니라서...” “저는 그 사업 전혀 몰라요” “아...그거는 아무개씨가 처음부터 죽 해왔던 일이죠.”
그렇게 해서 그 친구는 마무리 작업까지 떠맡아야 했다.
풍성한 과실을 맺을 때는 서로들 나눠가지면서 태풍이 불어 누군가 비바람을 맞고 일을 해야 할 때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이다. 과연 그 친구가 그런 분위기에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을까? 다음에도 아이디어를 내고 업무를 추진할까? 자기 업무도 아닌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요즘 때아닌 진보논쟁이 한창이다. 나 자신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조차 한참을 헷갈리는 필자로서는 뭐가 사회의 진보인지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바람직한 사회가 있다면 “권한을 가지는 만큼 책임을 지고, 책임지는 만큼 목소리도 높아지는 사회” 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가 “권한만 갖고 책임은 전혀 지지 않고,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목소리만 높이는” 무책임한 모습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동저자로서의 권한만 가지려 하고 책임은 떠넘기는 연구자들의 슬픈 자화상. 논문조작에 대한 비판 자성과 함께 우리 사회가 한번쯤 생각하고 넘어가야할 '황우석 사태'의 또 다른 교훈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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