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명법문 명강의

폭설에 갇힌 순간! 냉차 한잔에 죽음 떨치고 화두 드니 성성적적

淸潭 2007. 3. 4. 18:54
폭설에 갇힌 순간! 냉차 한잔에 죽음 떨치고 화두 드니 성성적적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 국 스님
 
 
우리 조계산맥에서는 몇 안거를 성만했느냐로 스님들의 나이를 삼습니다. 혜국 스님이 25안거를 살았으면 25살이오, 50안거를 살았으면 50살입니다. 전국의 납자들이 일시에 안거에 들어가 하루 12시간 동안 꼼짝 안하고 날마다 참선을 하는 이런 제도가 법적으로 내려오는 나라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오는 엄청난 법음

3년 전, 선원장 스님들이 달라이라마 스님을 만나러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선물로 죽비를 가져가 한국 스님들이 참선 할 때 쓰는 법구라고 했더니 달라이라마 스님이 “그래 어떻게 합니까?”하고 물어요. 그래 “스님도 한번 같이 앉아 보시겠습니까?” 하고는 죽비를 쳤습니다. “이 상태에서 화두를 드는데 한 시간동안 꼼짝 안하고 정진하다가 10분정도 쉬고 다시 화두를 들며 매일 12시간씩 합니다.”하니 달라이 라마 스님이 깜짝 놀라며 “정말 그러냐?”고 세 번을 묻더군요. 그리고는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선방을 꼭 둘러볼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며 “몇 군데나 됩니까?”하고 묻기에 “수십군데가 넘고 비구뿐 아니라 비구니 스님들도 정진합니다.”하니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한번 선방을 돌아보도록 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돈오(頓悟)라는 말은 세계 종교사에서 불교, 그것도 선불교에만 있는 말입니다. 하루하루 닦아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부처라는 것’입니다.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완성된 상태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닦는 게 아니라 내가 부처라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우주 대자연의 진리를 확연히 깨달으시고는 제일 먼저 고집멸도, 사제법을 설했지만 그것은 팔정도를 말씀하시기 위한 서론이지 사제법이 본론은 아닙니다. 그럼 사제법이 팔정도를 말하기 위한 서론이라면 본론은 팔정도인데 팔정도에서도 바로보라 하는 이것이 돈오의 차원인데 무엇을 바로 보라고 한 것입니까?

“사람 사람마다 부처 아닌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눈을 뜨지 않아서 그렇지 눈만 뜨면 우주허공은 꽉 찼고 청산첩첩은 부처님 도량이오, 대자연의 소리 역시 부처님의 무정설법이건만, 눈 감은 채 허공을 찾으려 하니 그 허공은 백천만겁이 지나가도 볼 수 없습니다. 허공은 새로 만들어서 보는 것도 아니고, 허공을 새로 닦아 보는 것도 아닙니다. 내 눈이 감겨 있는 동안에도 허공은 우리 주위에 꽉 차 있어서 오히려 내가 허공을 떠나려 해도 떠날 수 없습니다. 허공이 나를 버린 바 없고, 내가 허공을 버린 바가 없습니다.

탐심이라고 하는 구름, 욕심이라고 하는 구름, 성내는 구름, 팔만사천 번뇌망상이라고 하는 구름이 눈을 가려 장님이 된 것입니다.
저는 태백산 도솔암에서 2년 7개월 동안, 솔잎을 따먹고, 생쌀과 콩을 씹으며 수행했는데 사실 그 때 밥 안 먹고 장좌불와하면 공부가 저절로 되는 줄 알았지요. ‘돈오’하고자 하는 생각은 하늘을 찌를 것 같고 뜻은 높았지만 행동은 그만큼 따라 주지 못했습니다. 앉아 있으면 어머니생각, 김치 먹었던 생각, 국수 먹었던 생각, 학교 다닐 때 만났던 아가씨 생각은 왜 그리 또렷또렷하게 자주 나는지요. 한 시간 정진해도 화두 든 시간은 5분이 안됩니다. 특히 이놈의 잠은 왜 그리 쏟아지는지요. 여러분, 잠 무서운 줄 알아야 수행도 제대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수마를 항복시키지 않고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 끝에 성철 스님께로 달려갔습니다.

잠 무서운 줄 알아야 증득

성철 스님이 10년 동안 장좌불와 했다는데 정말 그 때 잠을 안 잤을까? 성철 스님이 잠을 안 잤다면 나는 이미 틀렸구나, 학자의 길을 가면 갔지 ‘돈오’하기는 틀렸다. 정말 성철 스님은 잠을 자지 않으셨을까? 여러분, 지금 웃지요? 안 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그 간절한 마음을 모릅니다. 해인사에 가니 성철 스님이 희랑대 주변을 포행하고 계시기에 바로 달려가 발 아래서 삼배 올리고 물었습니다.

“스님, 장좌불와 하실 때 정말 잠을 자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방편으로 말씀하시거나 거짓으로 말씀하신다면 제가 세세생생 스님하고 원결이 될 것입니다.”
“이놈아! 내가 목석이냐?”

그랬구나! 성철 스님도 조셨구나. 그럼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제 가슴이 뻥 뚫리는 겁니다.
태백산에 다시 와 정진을 계속했습니다. 태백산에 눈이 오면 얼마나 쌓이는지, 그 외로움이 얼마나 큰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제가 독초를 먹고 쓰러졌을 때 구해주셨던 거사님이 한겨울에 선방으로 올라오셨습니다. 저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앉았지요. 밖에서 “스님, 스님” 하고 부르는데 그냥 묵묵부답 앉아만 있었습니다. “스님 눈 많이 내리면 길이 없어지고 물 길어 마시기도 힘듭니다. 밧줄이라도 매달아 놓아야 합니다.” 그래도 앉아만 있었지요. 한 참 후, 밖이 조용해 나가 봤더니 거사님은 없고 밧줄 하나가 문기둥에 매어져 있고 그 밧줄은 우물까지 이어져 있더군요. 수행 좀 잘 한다고 소문났으니 내려가고 싶어도 내려가지 못하고, 사람이 그리우면서도 수행하는 척 하고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아만(我慢)만 커진 거지요.

도솔암서 죽더라도 정진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수행을 계속 하는데 갑자기 방안이 깜깜한 거예요. 수행정진하는 산승은 새소리만 들어도 몇 월인지, 밖에서 밀려오는 빛만 느껴도 몇 시인지 다 알아요. 그런데 그 때는 전혀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깜깜해요! 두려움이 덥썩 밀려오더군요. 문을 열어보니 눈이 쌓여 앞이 꽉 막힌겁니다. 나갈 길도 없고, 천장이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고 ‘이제 죽었구나’ 하는 그 순간, 거사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문기둥에 매달린 밧줄을 빙빙 돌렸더니 조금씩 눈더미 사이로 길이 나더군요. 계속 밧줄을 돌리고 파헤쳐서 우물 물을 길어 방으로 돌아왔지요. 그리고는 찻잔에 물을 따라 작설잎을 띄운 뒤 차가운 차 한잔을 마셨습니다. 선다일미(禪茶一味)! 봄기운의 작설이 내 몸으로 들어가니 힘이 나고 두려움도 어느새 없어지더군요. 그래 옳다. 여기서 죽더라도 정진하자. 그 때부터 공부를 지어가는데 얼마나 성성하게 잘 되던지요. 옛 조사님들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구나. ‘화두는 목숨을 걸고 간절하게 들라’는 그 한마디가 절실히 와 닿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결제 기간 동안 ‘돈오’ 하나만 믿어도 큰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이왕 시작했으면 화장실 갈 때만이라도 들어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머리 위부터 발끝까지 화두가 가득 차면 터지지 말라고 해도 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네가 부처라는 사실을 바로 보라.”는 이 한마디를 보여주신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굳이 저의 수행담을 여러분께 들려드린 연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루 5분이라도 간절하게 화두에 드시기 바랍니다. 초발심시 변성정각(初發心時 便成正覺)이라 했습니다.”

이 법문은 지난 11월 23일 봉은사 법왕루에서 ‘재가불자 동안거 수행논강’ 첫날 입제식 법문을 요약한 게재한 것이다.
정리=안문옥 기자 moonok@beopbo.com


혜국 스님은

‘어디를 가든지 주인이 되라’는 ‘입처개진 수처작주’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스님은 현재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이다. 1961년 세납 14살 때 일타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서 득도했다.

태백산 도솔암에서 2년여 동안의 수행정진한 스님은 성철, 구산 스님 등 당대 선지식을 찾아 가르침을 받았으며 대승사, 봉암사 등의 전국 선원에서 정진했다.

1994년 수행 청정도량 제주도 남국선원을 개원하며 무문관을 마련, 납자들을 제접하기도 했다.

혜국 스님은 재가불자들을 향해 “뜨거운 눈물로 무릎을 세 번 적실 때까지 화두를 들어라”고 일갈해 왔다. ‘돈오’할 수 있다는 믿음을 확고히 해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야 소식이 있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스님은 금봉선원 뿐 아니라 전국 유수 사찰에서도 법문을 통해 ‘선지’를 심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