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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 그 사람/지강유철 지음/576쪽·2만 원·홍성사
북한의 박사 공동 1호(1948년), 이후 월남해 부산복음병원장(1951년), 한국 최초의 간 대량절제술 시술(1959년), 청십자의료보험 도입(1968년) 등 한국 의료사에서 명성을 날린 장기려(1911∼1995) 박사의 이력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행로에 ‘멋진 동기’는 없었다. 신의주고보를 원했으나 사촌형이 다닌다는 이유로 송도고보를 택했고 교사나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사범학교나 공대를 가고자 했으나 학비 문제로 경성의전(현 서울대 의대)으로 갔다.
날씬한 최이순과 결혼하고 싶었으나 자신이 없어 ‘그저 그렇던’ 김봉숙을 어정쩡하게 아내로 맞이했고 전공도 안과와 내과를 기웃거리다가 장인의 권유로 외과를 택했다. 그렇지만 그는 한국 의료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별명과 함께….
고향(평안북도 용천)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싶다며 출세가 보장된 경성의전 교수 자리와 충남도립병원 외과과장을 거부했고 평양 기홀병원 시절 수술비가 없는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월급으로 피를 사서 수술대에 오르게 하고, 부산 복음병원 시절 자기 월급으로 환자의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자 환자를 야밤에 탈출시키기도 했던 일이 알려지자 그에게는 ‘돈 없는’ 환자가 모여들었다.
그는 평생 집 한 채 갖지 못하고 병원 옥상의 사택에서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사재를 털어 무의촌 진료를 다녔고 한국 최초의 의료보험제도인 청십자의료보험을 도입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병원 문을 낮춰 주기 위해 노력했다.
저자는 장기려에 대해 ‘이면과 표면의 경계를 허문 사람’이라고 평한다. 보수 기독교단인 고려신학교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무교회 신앙을 주도한 함석헌 김교신과 함께 성경 공부를 했고, 집에 구걸 온 거지와 겸상을 했으며, ‘전문가가 아닌 의사’라며 전문의 자격증을 거부하고 외과학회 명예회원을 고집한 것도 이런 일면을 보여 주는 사례다.
저자는 장기려의 글과 연설, 주변의 증언을 통해 인간 장기려를 ‘있는 그대로’ 조명했고 이전의 연구나 전기에서 ‘교단에 대한 정치적 고려’ 때문에 빠져 있거나 에둘러 갔던 문제들, 이를테면 고신 측 교단이 복음병원을 장악하기 위해 선생을 조기 은퇴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의사들의 폭력 사태, 고신대 의대생들의 대규모 유급과 교단에 저항했던 교수들의 재임용 탈락을 불러 온 학내 분규, 장기려가 제도권 교회를 떠나 말년에 의탁했던 ‘종들의 모임’과 재세례, 함석헌과의 관계, 평양 산정현교회의 분열과 신사참배에서 나타난 기독교의 굴복 등이 깊이 있게 다뤄져 있다.
이광수 소설 ‘사랑’의 주인공 안빈의 모델로 그려진 일, 북에 두고 온 아내의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50여 년간 독신으로 살아간 일, 제자의 결혼 주례 때문에 전두환의 식사 초청을 거절한 일 같은 일화들도 흥미롭게 소개되어 있다.
경성의전을 2등으로 졸업하고도 “(의학공부만 하고) 사회과학이나 문학서적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종합적인 인간으로서의 실력이 부족하다”며 경성의전 시절을 후회했다는 장기려의 회고에서 인술(仁術)의 길을 걸었던 참 의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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