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책 속의 향기

'동자승 말씀이 기가 막혀'

淸潭 2007. 2. 10. 15:31

[문학]문형렬 우화집 '동자승 말씀이 기가 막혀'

 

메마른 가슴에 꽃불 하나 밝히시지요…
 
소설가 문형렬(52)씨가 만남과 그리움, 지혜를 주제로 짧은 이야기 모음집 ‘동자승 말씀이 기가 막혀’(도솔)를 펴냈다. 각박한 일상에 매몰된 현대인에게 따뜻한 공감과 깨우침을 주는 ‘가슴에 꽃불 하나 켜는 이야기’ 서른 편이 수록됐다.

까까머리 열일곱살에 출가한 행자는 밤이면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펼치며 두고 온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흘리곤 했다.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끈인 그 시집이 어느날 사라져버리자 애통해하던 그는 “이레만 기도하면 부처님이 그 시집을 돌려줄 것”이라는 큰스님의 말을 듣고 그리했지만 부처님 손바닥은 텅 비어 있었다. 화가 난 행자승, 벌떡 일어나 부처님 왼쪽 귀를 잡고 오른쪽 뺨을 때린 뒤 밖으로 뛰쳐나오는데 밤하늘 가득한 별들이 가슴속으로 와르르 쏟아져들어왔다. 40년 지난 지금도 그의 가슴 속에는 그때 별로 만든 시집이 고스란히 남아 있단다.

또 다른 행자승 하나는 절에 기도하러온 처자의 고운 모습에 반해 애를 끓였는데, 그 마음을 알아본 스님이 그를 데리고 처녀 집에 탁발을 갔다. 좋아라 어쩔 줄 모르던 행자승, 가슴 속에 그리움 가득 채워 절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호랑이를 만났다. 훌쩍 뛰어 건너편 계곡으로 피신한 스님이 겁에 질린 행자에게 하는 말. “이놈아! 네 마음 속의 처녀를 내려놓아라. 아니면 몸이 무거워서 뛸 수가 있나! 살고 싶으면 빨리 내려놓아라!”

동자승 이야기 하나 더. 객승이 혜월 스님을 찾아 절에 갔더니, 산문에서 명성이 드높은 그 큰스님이 동자승에게 존댓말을 하며 받들고 있었고 동자승은 큰스님에게 반말을 하며 방자하게 굴었다. 큰스님이 저자거리에 내려간 사이 객승은 동자승 멱살을 잡고 혼쭐내어 버릇을 고쳐놓았는데, 울면서 예를 갖추는 동자승을 보고 어두워진 얼굴로 혜월 스님이 객승에게 하는 말. “예법은 스스로 이르는 것이거늘, 내가 예법을 몰라 저 아이에게 가르치지 않았겠소? 천진한 저 모습이 하도 좋아 때묻지 않게 정성껏 받들고 있었는데 스님이 그만 깨뜨리고 말았소. 이제 나하고 인연이 다하였으니 지금 당장 객스님이 데리고 가시오.”

이처럼 짧지만 죽비로 내려치는 듯한 깨달음을 주는 글들을 모아놓은 이 책에는 절집 이야기뿐 아니라 작가가 일상에서 겪은 가슴 따뜻한 일화들도 함께 실려 있다. 문형렬씨는 “경전에 전해오는 이야기며, 제가 듣고 보고 생각했던 기억들과 화두를 문득 엷은 화장처럼, 때론 짙은 화장처럼, 가슴에 켜지는 꽃불처럼 한 권의 책에 담았다”고 서문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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