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충무공 귀선가〔李忠武公龜船歌〕
천구가 달을 먹으니 큰 바다가 말라붙고 / 天狗蝕月滄溟竭
만리 멀리 거센 바람에 부상이 꺾이었네 / 罡風萬里扶桑折
문경 새재 주흘산 웅장한 관문이 무너지자 / 主屹雄關已倒地
왜병 십만의 수군이 마구 쳐들어올 제 / 舟師十萬仍豕突
원씨 집 노장은 한낱 고기 자루에 불과하여 / 元家老將一肉袋
외로이 섬에 숨으니 개미 구원도 끊어졌네 / 孤甲棲島蚍蜉絶
국토방위의 중대한 위임 너 나 할 것 없거니 / 封疆重寄無爾我
거룻배를 어찌 진이 월 보듯 할 수 있으랴 / 葦杭詎可秦視越
전라 좌수영 남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 左水營南門大開
둥둥둥 북 울리며 거북선을 발진시키니 / 淵淵伐鼓龜船出
거북 같으나 거북 아니요 배 같으나 배도 아니요 / 似龜非龜船非船
판옥은 푹 솟은 데다 큰 물결을 소용돌이쳐대네 / 板屋穹然碾鯨沫
네 발은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돌게 하고 / 四足環轉爲車輪
양쪽 옆구리엔 비늘을 펼쳐 창 구멍을 만들고 / 兩肋鱗張作槍穴
스물네 개의 노를 물속에서 춤추듯 저어라 / 二十四棹波底舞
노 젓는 수군은 수면 아래서 앉고 눕고 하였네 / 棹夫坐臥陽侯窟
코로는 검은 연기 내뿜고 눈은 붉게 칠하여 / 鼻射黑烟眼抹丹
펴면 헤엄치는 용 같고 움츠리면 거북 같은데 / 伸如遊龍縮如鼈
왜놈들 하늘만 쳐다보며 통곡하고 애태워라 / 蠻子喁喁哭且愁
노량 한산 대첩에서 붉은 피가 넘쳐흘렀지 / 露梁閒山漲紅血
적벽의 소년은 때를 만난 게 요행이었고 / 赤壁少年逢時幸
채석의 서생은 담대한 결단을 과시했지만 / 采石書生誇膽決
누가 바다를 횡행하며 백전을 치르면서 / 孰能橫海經百戰
고래 악어를 베고도 칼날이 여전할 수 있으랴 / 截鯨斬鰐鋩不缺
그로부터 이백 년 이후 지구가 터지고 찢겨 / 二百年來地毬綻
화륜선이 동으로 와서 화염이 태양을 가려라 / 輪舶東行焰韜日
범 같은 놈들이 양 같은 동토를 압박 침략해 / 熨平震土虎入羊
화기가 천지를 뒤흔들며 살기를 발하누나 / 火器掀天殺機發
돌아간 충무공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 九原可作忠武公
주머니 속에 응당 신묘한 전술이 있을 테니 / 囊底恢奇應有術
새로운 지혜로 거북선 만들어 승리하듯 한다면 / 創智制勝如龜船
왜놈들은 목숨 빌고 양놈들은 사라지련만 / 倭人乞死洋人滅
매천집 제1권 / 시(詩)○갑신고(甲申稿) / 황현(黃玹)
[주-C001] 갑신고(甲申稿) :
1884년(고종21), 매천의 나이 30세 때 지은 시이다.
[주-D001] 이 충무공 귀선가(李忠武公龜船歌) :
조선 선조(宣祖) 때의 명장(名將)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이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제작한 거북선을 두고 노래한다는 뜻인데, 가(歌)는 시체(詩體)의 하나이기도 하다.
[주-D002] 천구(天狗)가 …… 말라붙고 :
천구는 살별의 일종인데, 달을 먹었다는 것은 매우 큰 재변(災變)이거니와 달은 태음(太陰), 즉 물〔水〕의 정기(精氣)인바, 천구가 달을 먹어서 바다가 마르게 되는 재변이 따른 것이다. 전하여 여기서는 단지 왜란(倭亂)의 큰 변고를 의미한다.
[주-D003] 부상(扶桑)이 꺾이었네 :
부상은 동해(東海)의 해 돋는 곳에 있다는 신목(神木) 이름으로, 전하여 일본을 가리키기도 한다. 부상이 꺾이었다는 것은 왜변(倭變)을 의미한다.
[주-D004] 원씨(元氏) …… 불과하여 :
원씨 집 노장(老將)은 바로 원균(元均)을 가리킨다. 그는 무장(武將)으로서 임진왜란 때에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이순신의 휘하에 있었다. 나이가 이순신보다 많은데도 그 휘하에 있게 됨을 불쾌하게 여겨 이순신을 늘 모함하였고,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는 마침내 이순신을 무고하여 투옥시키고 자신이 대신 통제사가 되었으나, 왜병(倭兵)의 전술에 빠져 칠천도(漆川島)에서 크게 패하고 이어 거제도(巨濟島)에 상륙하여 도주하다가 끝내 왜병에게 붙잡혀 죽었다. 고기 자루라는 것은 곧 아주 무능한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다.
[주-D005] 개미 구원 :
아주 적은 원군(援軍)을 비유한 말이다. 한유(韓愈)의 〈장중승전후서(張中丞傳後序)〉에 의하면 “성을 지키고 있을 때 밖으로는 크고 작은 개미만 한 원군도 없었지만, 충성을 바치고 싶은 곳은 국가와 임금뿐이었다.〔當其圍守時 外無蚍蜉蟻子之援 所欲忠者 國與主耳〕”라고 하였다. 《東雅堂昌黎集註 卷13》
[주-D006] 거룻배를 …… 있으랴 :
진(秦)이 월(越) 보듯 한다는 것은 곧 서로 무관심한 데에 비유한 말로, 한유(韓愈)의 〈쟁신론(爭臣論)〉에 “정치의 득실을 보기를 마치 월나라 사람이 진나라 사람의 살찌고 파리함을 보듯이 하여 조금도 마음에 기쁨과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視政之得失 若越人視秦人之肥瘠 忽焉不加喜戚於其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東雅堂昌黎集註 卷14》 여기서는 이순신이 당시 조선 수군(水軍)의 약세(弱勢)를 크게 염려한 나머지, 이를 보강하기 위해 거북선을 제작하게 된 동기를 의미한다.
[주-D007] 적벽(赤壁)의 …… 요행이었고 :
적벽의 소년은 삼국(三國) 시대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장수였던 주유(周瑜)를 가리킨다. 조조(曹操)가 일찍이 남으로 형주(荊州)의 유표(劉表)를 치고, 이어 강릉(江陵)으로부터 장강(長江)을 따라 동으로 내려갈 때, 촉(蜀)과 오가 군대를 연합하여 항거하였다. 이때 주유가 조조의 대군(大軍)과 적벽에서 대전(大戰)을 벌이게 되어, 조조는 북쪽 언덕에 진을 치고, 주유는 남쪽 언덕에 진을 쳤는데, 주유의 막하장(幕下將) 황개(黃蓋)의 책략에 따라 배에 가득 섶〔薪〕을 싣고 가서 조조의 전함에 화공을 쓴 결과, 때마침 동남풍이 거세게 불어와서 조조의 전함들을 모두 불태움으로써 끝내 조조의 대군을 크게 격파했던 데서 온 말이다. 그때 주유는 겨우 30여 세였다. 《三國志 卷54 吳書 周瑜傳》
[주-D008] 채석(采石)의 …… 과시했지만 :
남송(南宋) 연간에 문신(文臣) 우윤문(虞允文)이 일찍이 예부 낭관(禮部郎官) 등을 역임하고, 금(金)나라에 사신을 다녀와서 무비(武備)의 확충을 건의한 바 있었는데, 뒤에 과연 금주(金主)가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쳐들어와서 채석산(采石山) 아래 진을 치고 있을 때, 우윤문이 소수의 패잔병(敗殘兵)을 수습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독전(督戰)을 강행하여 마침내 채석의 대첩(大捷)을 거두었던 데서 온 말이다. 그로부터 그는 20여 년 동안 출장입상(出將入相)하면서 벼슬이 참지정사(參知政事), 좌승상 겸 추밀사(左丞相兼樞密使)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宋史 卷383 虞允文列傳》
[주-D009] 주머니 …… 테니 :
노년(老年)의 지혜(智慧) 또는 노련한 지혜의 뜻으로 쓰인 말이다. 후연(後燕) 성무제(成武帝) 모용수(慕容垂)가 일찍이 거사(擧事)를 하려면서 말하기를 “나의 계략은 이미 결정되었다. 또 나는 늘그막에 이르렀는지라, 내 주머니 속의 지혜를 짜내면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 다시 역적을 남겨 두어 자손에게 누가 되지 않게 할 것이다.〔吾計決矣 且吾投老 扣囊底智 足以克之 不復留逆賊以累子孫也〕” 한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123 載記 慕容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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