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淸潭 2024. 1. 15. 12:03

주인 잃은 화초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떠난 주인을 따르듯 비명도 없는 고독한 죽음이었다.
집 안은 적막했다.

의뢰인은 아들이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베란다였다.
넝쿨식물이 매달려 있었다.
이름이 ‘호야’라고 했던가.

열려 있는 베란다 문 사이로 축 늘어진 채 죽어가는 식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몇 개는 살리려고 했는지 식물 영양제가 꽂혀 있었다.

임대아파트에선 고독사가 참 많이도 발생한다.
똑같은 구조라서 그런지 처음 오는 동네인데도 마치 왔던 곳같이 느껴지곤 한다.

어쩜 늘 그 자리엔 냉장고가 있다.
좁은 공간에서 각자 머리를 짜냈겠지만, 결국은 같은 공간에 비슷한 물건들이 놓인다.
안 좋게 끝난 그들의 삶처럼 살림살이들도 판박이였다.
무서운 데칼코마니 같았다.

내가 일하는 동안 고인의 아들은 집 안에서 쉼 없이 흐느꼈다.
비워지는 유품들의 무게만큼 슬픔이 그의 마음으로 옮겨져 무겁게 짓누르는 듯했다.

고인이 끝까지 애써 살려 보려 했던 화초들은 마지막까지 들어낼 수 없었다.
나도 멍하니 아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죽은 자가 마지막까지 살리려 했던 식물의 죽음.
그냥 ‘물건’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들에게 눈빛을 보냈다.

“아버지는 30대 후반에 신부전증 진단을 받고 쭉 신장투석을 하셨어요.”
“40대 후반에 혼자가 되셨어요.”
“얼마 전에 제가 결혼을 했어요.”
“지난번에 전화 드릴 때도 다른 점이 없었어요. 그냥 괜찮다고 하시니까….”

내가 눈빛으로 물은 것을 잘못 넘겨짚었는지 아들은 두서없이 말을 쏟아냈다.
이런 상황에 나도 달리 대꾸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의 후회를 다독여 주기도 뭣했고, 아직 젊은 그의 앞날에 대한 응원도 지금은 부적절했다.
그도 그저 아무에게도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모르는 내게라도…,
아니 모르는 남이니까 오히려 내게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죄책감, 후회, 미련, 슬픔 같은 것들 말이다.
유가족들이 내게 말하는 것은 항상 그런 것들이었다.
나는 그저 말을 들어줄 뿐이다.
말하고 나서 그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진다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60대 남성이 혼자 살았던 흔적은 참 적기도 했다.
집 안은 금세 빈집으로 바뀌었다.

널부러져 있는 서류뭉치를 집어들어 대충 훑어보았다.
중요한 서류는 대부분 꽁꽁 숨겨 놓기 마련이다.
언뜻 스치며 보는데 멈칫했다.

진단서였다.
날짜가 얼마 되지 않았다.
‘췌장암 말기’.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소견이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이제야 발견했다.

아주 잠깐 시간이 멈춘 건지, 생각이 멈춘 건지.
찰나의 시간 동안 갈등이 생겼다.
하지만 선택은 유품정리사의 몫이 아니다.

“진단서가 있네요.”
아들에게 돌아가신 부친의 진단서를 건네줬다.
그가 서류의 내용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겐 미뤄뒀던 베란다의 짐을 정리할 시간이었다.
죽어가지만 아직은 살아 있는 식물들 말이다.

 

말기암을 진단받은 고인은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식물이 허투루 죽는 것이 싫었나 보다.
아등바등 살려 보려 한 흔적들이 더 슬퍼 보였다.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은 미리 아는 죽음이라고 했다.
그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사실 고인의 사인은 동맥 손상으로 인한 과다출혈이었다.
몸에서 피와 생명이 빠져나가기까지 꽤 오랜 시간 고통을 느껴야 했을 게다.
정해진 죽음을 기다리는 고통의 시간을 멈추기 위한 가장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

죽은 것, 산 것.
내가 베란다에서 화분을 나눠놓고 있는 동안 한층 커진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구슬펐다.

비극이었다.
“유서 한 장 없이 어떻게 이렇게?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