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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한 채의 사랑

淸潭 2019. 6. 1. 10:30

 
이불 한 채의 사랑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12년 만에
변두리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했습니다.
성공한 친구들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둥지였지만
우리에게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마누라는 매일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살림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당신, … 집 장만한 게 그렇게도 좋아?” 라고 묻자
아내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좋지 그럼, 얼마나 꿈에 그리던 일인데.”

이렇게 집을 정리하면서 힘든 줄 모르게 하루가 갔습니다.
겨우 짐 정리를 마치고 누웠는데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남의 집 문간방살이를 전전하던 시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여보 그 집 생각나?
옛날에 결혼하자마자 첫 살림을 살던 그 문간방.”

지금 생각하면 찬바람이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고,
수도관이 터져 밥도 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추운 겨울을 보냈지만,
그래도 우리는 거기에서 사랑을 나누었고
미래를 설계하며, 꿈과 희망을 가졌던 안식처였습니다.

“여보 우리 거기 한번 가 볼까?”
숟가락몽둥이 하나 들고 신혼 단꿈을 꾸던
그 가난한 날의 단칸방이었지만
그곳은 아내의 기억 속에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다음 날 시장에 가서 얇고 따뜻한
이불 한 채를 사 들고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달동네 문간방을 찾아갔습니다.

계단을 오르며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던 집이 이렇게 높았었나?”
나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래, 그땐 이렇게 높은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우리가 그 옛집에 당도했을 때
손바닥 둘을 포갠 것 만한 쪽방에선
오렌지색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기저귀가 펄럭이고 아이가 까르륵대는 집,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만 같은
상념에 잠겨서 우리 부부는 멍한 상태에서
옛일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때 돈은 없었지만 둘만 있으면
아무 것도 먹지 않고도 배가 불렀었고,
아이들의 얼굴만 쳐다보아도
이 세상에 우리 부부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둘이 함께 있으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난방이 필요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준비해 간 이불을 문간방 툇마루에
슬며시 놓아두고 돌아섰습니다.
그날 문간방 젊은 새댁이 발견하게 될
이불 보따리 속에는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희는 10년 전 이 방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무리 추워도 집에 돌아와 이불을 덮으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따뜻했었지요. 행복하게 사세요.”
달동네 계단을 내려오면서
우리 부부는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신혼살림을 시작한 허름한 변두리의
작은 집에 찾아와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이불 한 채를 선물하고 내려가면서
우리 부부는 새삼 깨달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이불은 문간방 식구들의 시린 발보다
부부의 마음을 더 포근히 감싸 덮는 이불로
평생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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