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꽃 설화> / 박규리 詩,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 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는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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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랐다가 근처 절집을 찾았습니다.
한껏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자목련이 툭툭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말없이 이를 쓸고 있는 젊은 승려를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시 한 편이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산중 깊은 암자일수록 속세와의 연이 더욱 질기게 이어져 있습니다.
세간에서 받은 상처가 깊을수록 더 깊은 산중으로 찾아들지만,
암자로 이어진 아주 작은 오솔길은 제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눈물의 길’이지요.
절집의 부엌(공양간)에서 스님들의 공양, 즉 먹을 음식을 만드는 보살을 공양주라고 합니다.
이 시를 쓴 시인은 전북 고창의 한 사찰에서 일했던 공양주입니다.
그저 지켜 본 모습을 군더더기 없이 기록하였는데, 그만 감동을 주는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哀而不悲(애이불비),
슬프기는 하지만 겉으로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몸은 절집에 있되 마음은 세상 현실의 상처와 어둠 속을 떠돌고 있는 마음 속 정서가 느껴지면서,
시를 소리 내어 읽노라니 그 아픔에 내 자신도 한없이 가슴 속이 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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