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동 선화랑서 5월2일부터 4년만의 개인전 '초록의 꽉찬 야생화' 작업서 공간+색감 변화 행복·소망·사랑 담은 '문자 판타지아' 첫 발표 ◇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불계공졸(不計工拙)'의 미학이다. 잘되고 못되고를 가리지 않는, 이 꽃 저 꽃모두 다 '판타지아'를 그려내는 정우범(72)화백의 개인전이 열린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4년만에 여는 이번 전시는 이전과 달리 느슨한 맛이 있다. △ 사진: 30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정우범 화백이 판타지아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초록의 꽃들이 한창인 가운데 이번 작품에는 하얀색으로 칠하고 먹으로 그린 직접 만들어 끼운 액자가 눈길을 끈다. ○··· 지난 2014년 선보인 '판타지아'(FANTASIA)가 화려하고 도발적이었다면, 한층 가라앉은 분위기다. 30일 선화랑 전시장에서 만난 정 화백은 그동안 '색로움'에 몰두했다고 했다. 그러다 제작년부터 문자를 넣기 시작하면서 작품이 달라졌다. 그는 "행복, 소망, 사랑을 먹물로 모필붓으로 써넣자 색감이 달라지더라"며 "치밀했던 녹색에서 중간톤인 회색조로 화면이 변했다"고 설명했다 . 8~9년간 선보인 '판타지아'가 일명 '문자 판타지아'로 한걸음 나아간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 첫 발표한다. "작품은 어느날 갑지가 바뀌어지지 않아요. 주기적으로 10년정도 되면 변환점이 됩니다. 새로운 맛이 나는 이번 작품은 제 마음에 듭니다." ◇ 꽃과 풀로 빡빡하게 차있던 화면은 헐렁해졌다. 문자가 들어오자 여백이 생기면서 한결 여유로움을 선사해준다. 문자는 한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 읽힐듯 말듯 보일듯 말듯 숨은그림찾기 처럼 새겨져 찾아보는 재미와 함께 희망의 메시시를 전한다. △ 사진: Fantasia 190x100cm 아쿠아 아크릴 2017 ○··· 정 화백은 "작품은 안복을 느끼게 해야 하는데 그동안 지루하다는 감이 있었다"며 "문자가 들어가면서 직접적인 전달효과까지 있고, 또 내 마음이 정화되고 행복하다"고 했다. 나이탓도 있다. 환갑을 넘고 고희를 넘으면서 "어떤 것에 국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채화 대가'로 불리던 젊은 시절 "수채화로 세상을 제패해야겠다"는 다짐도, 수채화만이라는 재료 고집도 털어버렸다. "그림은 내(화가)가 그대로 나타난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듯이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다. 나는 아직 건강하다. 아침에 작업실로 출근해 오후까지 그리고 퇴근한다. 9남매중 막내여서 어려서부터 사생결단식으로 살아오지 않았다. 느긋하게 살아왔다. 그래서 작품은 갈수록 편안한 쪽으로 갈 것 같다." 이번 작품은 수채화와 아크릴의 혼합과 풍경과 꽃밭이 어우러져 상생과 융합의 잔치다. 수채화의 번짐의 묘한 효과와 아크릴의 선명한 색감이 두드러진다. 그림은 야생화처럼 나온다. 스케치없이 물감만 찍으면 툭툭툭 꽃들이 풀들이 살아난다. 원색의 꽃들로 가득 채워진 단순한 구성이지만'Stroke'(빠른 붓 놀림으로 문지르기) 기법이 숨겨져있다. 수제로 만든 고급수채화용 종이(Arches)를 물에 적시고, 예리하고 탄력이 있는 갈필붓(작가가 거칠거칠한 유화 붓을 짧게 잘라 만든 것) 끝에 안료를 발라 툭툭 치면서 표현하는 방식이다. 색은 벌어진 종이의 흠으로 스며들고, 종이가 마를 때 틈새가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착색되어 굳어진다. 작가는 이것을 “색을 종이의 모세혈관까지 침투시키는 방법”이라고 했다. ◇ 늦깍이에 화가가 됐다. 40대 초반 광주교대부속 초등학교 선생직을 그만두고 "그림만 그리고 살겠다"고 선언했다. 미술대학 출신도 아니었다.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자신과 시간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 사진: 정우범, Fantasia 100×100cm 아쿠아 아크릴 2018 ○··· 늘 사생을 다니며 소묘하며 하루 10~15시간 그림을 그리며 와신상담했다. 빛을 본건, 90년대 후반부터다. 화가로 데뷔하고 '수채화 작가'로 명성을 날렸다. 국내외 화랑들의 러브콜도 잇따랐다. 선화랑과의 인연도 1997년에 시작됐다. 고 김창실 사장이 직접 광주 작업실로 내려와 작품을 선정해 그해 곧바로 전시가 열렸고 이후 일곱번의 개인전이 이어지고 있다. 화가가 된 후 30년간 끊이지 않고 작업은 변해왔다. 운주사 돌탑 시리즈, 러시아 설국시리즈, 목화밭 시리즈, 장날시리즈에 이어 2007년 터키 여행이후 '판타지아'시리즈로 변신했다. 마치 시골에서 뉴욕으로 건너온 느낌이다. "그 경험이, 축적된 노하우가 엉뚱한 것을 만들어냈다"는 정화백은 "풍부한 경험이 없이는 새로운 것이 안나온다. 나도 이런 생각 못했다. 거의 혁명이다"라고 했다. ◇ 정 화백이 직접 제작했다는 액자는 흰색을 칠해 먹물로 리드미컬한 선으로 장식해 멀리서 보면 얼룩말 무늬를 연상시킨다. 새로움은 낯설다. △ 사진: 한결 여유로워진 이번 신작은 색감과 공간의 변화와 함께 액자도 눈길을 끈다. ○··· 현란한 꽃밭을 틀에 가뒀다는 반응이 있지만, 정 화백은 "작가가 직접 액자를 제작했다는 것때문인지 지난 중국 전시에서 반응이 좋았다"면서 "일반 액자틀로 감싸기 보다, 꽉찬 화면을 좀 더 여유있게 보이고자 하는 의도"라고 소개했다. 활짝 핀 꽃과 싱싱한 풀들이 담긴 화면은 현란하지만 생생한 에너지가 넘친다. 고희를 넘겼지만 활력을 자랑하는 정 화백은 활짝 잎을 벌린 꽃처럼 말했다. "오늘,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 뿐이다. 살아있는 오늘이 최고의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 그래서 판타지입니다." 전시는 5월 19일까지. hyun@newsis.com ☞ 원본글: 뉴시스| Click ○←닷컴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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