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도와 하이란 부부
여수의 상징인 오동도는 멀리서 바라보면 그 생김새가 마치 오동잎처럼 보인다고 해서 오동도라 한다. 한때 이순신 장군이 이 섬에 대나무를 심게 한 후 대나무가 무성하자 대섬이라고도 부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옛날에는 오동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하여 오동도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관광객들이 많아 다양한 위락시설이 들어선 오동도
오동나무가 무성하였던 아주 먼 옛날, 봉황으로 변하여 옥황상제의 심부름을 나온 사신 아홉 명이 남해 용왕을 만나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동도 위를 지나다 오동나무 열매를 보고는 모두 다 그 열매를 따먹으려고 내려앉았다.
오랜만에 맛보는 오동나무 열매인지라 한참을 정신없이 따먹다 보니 아뿔싸 그만 돌아갈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서둘러 하늘에 오르던 아홉 사신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그만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그래서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져 아홉 봉우리의 산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여수의 명산인 높이 388m의 구봉산이다.
이처럼 전설에 따르면 오동나무가 무성한 오동도에 봉황이 자주 찾아들곤 하였다. 하늘나라 봉황이 오동나무 열매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려 말에 이르러 신돈에 의해 오동나무가 모조리 벌목당한 후로는 봉황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다.
구봉산 정상에는 각종 통신시설들이 들어서서 옛 정취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사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왕의 사부가 되었고 진평후에 봉해진 신돈은 한때 공민왕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풍수설에 능했던 신돈이 고려의 국운을 걱정하며 남도 땅을 돌다 우연히 전라도 여수의 오동도에 들르게 되었다. 그런데 신돈 일행이 오동도 가까이 들어설 즈음에 홀연 한 줄기 빛이 오동도를 빠져나갔다.
“아-”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빛이 빠져나갔는지조차 알기 힘들 정도인데 갑자기 신돈이 낮은 소리로 장탄식을 하였다. 그러더니 서둘러 개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개경으로 돌아온 신돈이 곧장 공민왕을 찾았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여수 오동도에 있는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라고 주청을 드렸다.
“폐하, 전라도 여수 땅에 오동도라는 섬이 있사옵니다. 그곳에 오동나무가 무성한데 속히 그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라 명을 내리시옵소서!”
영문을 알 수 없는 공민왕이 반문하였다.
“아니, 느닷없이 오동나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단도직입적인 말을 했는지라 신돈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고려의 국운이 쇠하고 있다는 말이 있어 소신이 풍수를 살피러 남도 땅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전라도 여수에 있는 오동도에 이르러 놀라운 일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러자 답답하다는 듯 공민왕이 재촉하였다.
“아니, 무슨 놀라운 일이란 말이오. 빨리 말해보시오!”
“소신이 오동도에 도착하기 직전 한 줄기 빛이 오동도를 빠져나갔사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것이 놀랍게도 봉황이었사옵니다.”
봉황이라는 말에 놀라던 공민왕이 다시 정색을 하고 물었다.
“봉황이 나타난 것이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 않소?”
“아니옵니다. 폐하. 전라도(全羅道)의 전(全)자가 사람 인(人) 밑에 임금 왕(王)자를 쓰고 있는데다, 하필이면 그 땅의 남쪽 끝 오동도에 서조인 봉황새가 드나드는 것은 매우 불길한 징조이옵니다.”
신돈의 말로는 필경 기울어가는 고려 왕조를 이을 인물이 전라도에서 나올 징조로 보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경이 풍수에 능하니 뭔가 해결책도 있을 게 아니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신돈이 해법을 제시하였다.
“우선 전라도의 전(全)자를 사람 인(人)자 밑에 임금 왕(王)자를 쓰지 말고, 들 입(入)자 밑에 임금 왕(王)자를 쓰도록 하십시오. 또한 봉황의 출입을 막기 위해 오동도에 있는 오동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리도록 하십시오.”
결국 공민왕의 명에 의해 그 후 전라도의 전(全)자는 들 입(入)자 밑에 임금 왕(王)자를 쓰게 되었고, 오동도에 있던 오동나무는 모두 베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오동나무 열매를 탐하던 봉황의 출입 역시 끊기고 말았다.
하지만 신돈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려는 전라도 전주 이씨인 이성계에 의해 망하고 말았다.
오동나무가 모두 베어지고 얼마 후, 그러니까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기 직전인 1387년경 개경에서 오동도로 한 쌍의 부부가 귀양을 왔다. 남편의 이름은 이길환, 아내의 이름은 하이란이었다.
이성계의 측근으로 몰려 비록 귀양을 왔지만 두 사람은 개경의 혼탁했던 삶을 돌아보고는 차라리 오동도에서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의지할 곳 하나 없었지만 두 사람은 땅을 개간하고 고기잡이를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간 틈에 도둑이 들었다. 혼자 일을 하던 하이란은 빠져나가기가 여의치 않다고 생각하고 도둑들에게 하소연 하였다.
“제발 살려주세요. 뭐든지 다 드릴 테니,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연신 눈물을 흘리며 하이란은 집에 있는 것을 모두 내놓았다. 누가 보아도 탐을 낼 만한 물건들인데도 도둑들은 물건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개경에서도 누구나 돌아볼 정도로 미색이 출중하였던 하이란인지라 오동도로 귀양 오자마자 그 소문이 일대에 파다하게 퍼졌다. 그래서인지 도둑들은 귀중한 물건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하이란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서던 도둑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이상으로 빼어난 미모를 지닌 하이란을 보고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도둑이 아니라 자신을 범하려 한다는 판단이 선 하이란은 치한들이 멈칫하는 틈을 타 맨발로 뛰쳐나가 곧장 동남쪽을 향해 달렸다. 동남쪽은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나 당황해서인지 하이란이 달려간 곳은 남편이 돌아오는 길이 아니라 막다른 낭떠러지였다. 뒤를 돌아보니 치한들이 거의 다 쫓아온 것이 아닌가. 앞뒤를 번갈아 돌아보던 하이란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러더니 결국 하이란은 그렇게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날이 저물 무렵 만선의 기쁨을 뒤로 한 채 하이란을 만날 설렘을 안고 돌아오던 이길환은 불러도 대답 없는 집 앞에 한 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아내가 없다. 밤새 섬 구석구석을 샅샅이 찾았지만 하이란은 보이지 않았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샌 이길환은 다음날 아침 낭떠러지 밑에서 아내의 시체를 발견했다. 몇날 며칠을 눈물로 지샌 이길환은 마른 눈물을 닦으며 사랑하는 아내를 오동도 정상에 묻었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에 성공하고 정권을 잡은 직후 이길환은 귀양에서 풀려 개경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마다하고 오동도에 남아 아내 무덤을 지키며 여생을 보냈다.
이길환마저 세상을 떠난 후 오동도 정상에 있는 하이란의 묘 옆에는 남자와 여자의 절개를 나타내듯 신우대와 동백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세월이 흐르면서 오동도 전체를 동백나무가 뒤덮기 시작하였다. 눈보라 속에서도 핏빛 붉은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는 그래서 여심화(女心花)라고도 부른다. 또한 오동도에서 자란 신우대는 임진왜란 때 화살대로 많이 쓰였다 하니 그 의미가 더욱 크다 할 것이다.
하이란의 묘는 지금 등대가 들어선 자리에 있었고, 등대 근처에는 하이란이 몸을 던진 낙하암이 있었다고 하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다.
오동도의 상징인 동백나무와 등대, 그리고 신우대 군락.
(※ 이 내용은 여수문화원장을 지낸 故 문정인 선생님이 채록한 내용에서 기본 뼈대를 삼았음을 밝힙니다..)
[출처] 오동도와 하이란 부부|작성자 월간 설화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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