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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이 죽어가서

淸潭 2016. 12. 16. 15:21

이 몸이 죽어가서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은 죽어야 합니다. 어떻게 사느냐보다 열 배는 더 심각한 과제가 어떻게 죽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고종명(考終命)’이 인간의 5복(福)의 하나입니다.

엊그제 저녁 의 박종진 앵커가 진행하는 생방송에 나가서 성삼문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돌연 박 앵커의 부탁을 받고!

나는 평소 사육신(死六臣)의 한 분인 성삼문을 흠모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남긴 시조 한 수에 언제나 가슴이 뜁니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의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 매죽헌(梅竹軒)

성삼문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물리치고 왕위를 찬탈하는 꼴을 보고 가만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세조를 살해하고 단종의 복귀를 꾀하였으나 실패하여 거열(車裂)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한강변에 마련된 형장(刑場)으로 끌려가면서 읊은 사세가(辭世歌)를 암송하며 나의 눈시울도 뜨거웠습니다.

북소리 덩덩 울려 사람 목숨 재촉하네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는 누엿누엿 서산에 넘어가는데
황천길에는 여인숙 하나도 없다고 하니
이 밤을 뉘 집에 묵어갈건가

아, 이렇게 시 한 수를 남기고 태연히 죽음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38세의 젊은 선비 성삼문을 생각하며 오늘 새벽 90이 다 된 한국의 한 노인의 눈에 눈물이 흐릅니다. 나는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