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예우' 삼성 이승엽 향한 한화의 도열
[마이데일리 = 대구 장은상 기자] 적으로 만났지만 그들의 만남은 아름다웠다.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는 지난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서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정규시즌 마지막 맞대결을 펼쳤다. 가을야구를 향한 실낱같은 희망을 살리기 위해 두 팀은 혈전을 벌이며 거친 승부를 가져갔다.
서로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 상황에서 두 팀은 필사적이었다. 전날 경기서는 연장 12회말까지 가는 총력전을 펼쳤고, 이날 2연전 마지막 경기에서도 동점과 역전을 주고받는 모습을 수차례 반복했다.
물러설 수 없는 상황, 치열했던 승부는 한 타자의 대기록 앞에 잠시 그 열기를 가라앉혔다. 바로 삼성 이승엽의 한일 통산 600호 홈런 시상식에서다.
2회말 솔로홈런을 쏘아 올리며 대망의 600호 홈런 고지를 밟은 이승엽은 5회말이 끝난 후 구단이 준비한 시상식에 참석했다. 홈팬들의 기립박수와 구단 관계자들이 준비한 축하세례 속에 정신없는 클리닝 타임을 보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이승엽의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이 1루 덕아웃에서 연출됐다. 원정팀 한화 이글스 선수단이 1열로 도열해 그를 향해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5회말이 끝난 뒤 두 팀의 점수는 5-4. 삼성의 리드였다. 뒤지고 있는 한화로서는 썩 유쾌하지 않은 상황, 다음 이닝을 치열하게 준비할 만도 하지만 한화의 모든 선수들은 이승엽을 향해 예우를 표하며 대기록을 축하했다.
이 도열 속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열 가장 오른쪽에 자리 잡은 김성근 감독이었다.
좀처럼 감정 변화나 표현을 나타내지 않는 김 감독. 그러나 이날만큼은 달랐다. 자신의 과거 애제자였던 이승엽의 대기록 달성을 축하하며 조용히 한 쪽에서 박수를 보냈다.
김 감독과 이승엽의 인연은 12년 전인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승엽은 당시 아시아 신기록인 56홈런(2003)을 치고 난 후 일본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로 진출했다. 김 감독이 이승엽의 전담 코치로 지바롯데에 합류하면서 둘은 본격적인 사제지간을 맺게 됐다.
때로는 혹독하게 또 때로는 부드럽게 이승엽을 지도한 김 감독은 그 때의 향수를 아직도 잊지 못한 모습이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이승엽이 일본에 진출하고 첫 해 성적이 좋지 못했다. 하루에 1000개씩 배팅 훈련을 시켰다. 참 고단한 훈련이었는데 그걸 다 참고 견디더라. 그런 과정을 끝까지 참고 이겨냈기 때문에 지금의 이승엽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600홈런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기록으로만 봐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숫자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이런 김 감독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이승엽은 당일 스승이 보는 앞에서 대기록을 달성했다. 적으로 만났지만 자신을 위해 박수를 치고 있는 스승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한 여전히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는 한화 선수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서로가 서로를 예우하는 모습이었다. 한국 야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승엽과 그를 향해 예의를 표한 한화. 치열했던 두 팀의 명승부 만큼이나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이승엽 향해 기립박수를 보내는 한화 선수단(상), 한화 김성근 감독(하). 사진 = 대구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pres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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