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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의 고변자 김질

淸潭 2016. 8. 1. 15:48

사육신의 고변자 김질


안동 김씨 김질(安東金氏 金礩1422-78)은 사육신(死六臣)과 함께 단종(端宗) 복위 운동에 참여했으나
1456년 6월 2일의 거사계획이 미루어지자 실패를 예상하고
장인 정창손(鄭昌孫1402-87)을 통해 세조(世祖)에게 고변한 인물이다.
그 공로로 승진을 거듭하여 세조 사후에는 한명회(韓明澮)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원상(院相)세력을 형성하며 원상제(院相制)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1468년 세조 사망시와 69년 예종(睿宗) 사망시에는 재상으로 정무를 처결하였으며
그 뒤 자산군(者山君-成宗)을 지지하고, 성종 즉위 후에는 세종(世宗)의 손자 귀성군(龜城君)을 숙청하였다.
인조(仁祖) 때 희대의 간신 김자점(金自點1588-1652)의 5대 선조가 되기도 하지만
가문에서 백범(白凡) 같은 위인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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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근담(菜根譚)-
       

              
              - 남에게 구속(拘束)받지 말라 
              彼富我仁 披爵我義 君子固不爲君相所牢籠
              피부아인 피작아의 군자고불위군상소뇌롱
              人定勝天 志一動氣 君子亦不變造物之陶鑄
              인정승천 지일동기 군자역불변조물지도주
              상대가 부(富)로 대하면
              나는 인(仁)이라는 덕(德)으로 대할 것이며 ,
              상대가 벼슬로써 대하면
              나는 의(義)라는 절개로 대하면 된다.
              군자는 본디 임금이나 재상(宰相)이라고 해서
              그들에게 구속당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 정해지면 하늘을 이길 수 있고,
              뜻이 한결같으면 기(氣)를 움직일 수 있다.
              군자는 또 조물주(造物主)가 만든 틀에
              구애(拘?)받지 않는다.
              
              
              [해설]
              우리가 상대방에 대하여 패배의식,
              열등감 등을 가지는 것은
              그 상대방과 똑같은 잣대로 자기 자신을
              재기 때문이다.
              부자 앞에서 비열해지는 것은
              그 부자에겐 은택(恩澤)을 입어 볼까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며,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것은
              그의 힘을 업어 출세해 보겠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똑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맞선다면
              어차피 승산은 없는 것이니
              그들의 앞잡이가 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올바른 인생관과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구절이다.
              부자나 신분 높은 사람에게는
              어쩐지 꿀리게 마련이다.
              괜히 자신이 초라해져
              몸놀림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색하다.
              이런 때에 뱃짱을 부릴 수 있는 것이
              그 사람에게 없는 나의 인의(仁義)이다.
              그러면 임금이나 재상도
              나를 어쩌지 못한다.
              수양대군이 단종(端宗)을 폐위시키자
              사육신(死六臣)들이 복위 운동을 전개했다.
              이개(李塏)는 평소
              수양대군(首陽大君)과 친분이 두터웠고
              몸이 옷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허약했다.
              세조(世祖)는 어떻게든 옛 친구인
              이개만은 살려주고 싶었다.
              "네가 실로 거기에 참여했더라도 다 털어놓으면 용서하겠다."
              그러나 이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형을 받았다.
              그의 인의(仁義)는 임금의 위력으로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