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젊은이들이 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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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70년대, 구로공단이 우리나라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그 시절, 공단 가까이 근로자회관에 강연을 간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시골서 올라와서 공단 공장에서 일하는 여공들의 월급이 3만원이 안 되던 때의 일인데, 다달이 받는 그 액수에서 자기를 위해 쓰는 돈은 1만원이 채 안 되고 나머지는 몽땅 고향집에 보내서 그걸로 동생들 공부를 시킨다는 말을 듣고 내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나에게도 그런 누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나는 46년 여름부터 대학에 다녔는데 내 누님이 학기마다 등록금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장학금으로 충당한 적도 몇 번 있지만 그 누님의 그 희생이 없었으면 나는 대학을 중퇴했을 지도 모릅니다. 내 누님은 양장 한번 제대로 하고 다닌 적도 없고 어머님이 손질해 주시는 치마저고리만 입고 다녔고 얼굴에 분 한번 찍어 바르는 일도 없고, 반지나 목걸이도 없이 매우 소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때 그 여공들이 학비를 대주어 학업을 마친 남동생들이 조국 근대화의 일선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짙습니다. 누나들은 휴일이 되어도 놀러 나가지도 않고 구두 대신 운동화만 사 신고 열심히 일만 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다는 말을 관장이 내게 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오늘도 마음 깊이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조카 하나를 아침에 학교 문 앞에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 나의 취미인지라 등교시간, 출퇴근 시간에 서대문 네거리를 지나는 일이 많습니다. 그 시간에도 늘 씩씩하게 생긴 남녀가, 특히 씩씩한 젊은 여성들이, 직장을 찾아 활보하며 당당하게 갑니다. 1,500원짜리 주먹밥을 파는 청년도 거기 있는데 아마도 바빠서 아침을 못 먹고 출근하는 사람은 그걸 한 덩어리 사 먹으면 조반이 될 것입니다. lip-stick도 바르지 않은 입술에는 건강이 넘치고, 그들의 곧은 자세와 당당한 걸음걸이를 바라보는 내 눈에는 기쁨과 희망이 넘칩니다. 되도록 아껴 쓰며 동생들을 돌보고, 결혼 비용도 조금씩 적립하는 똑똑한 아가씨들도 있어 보입니다. 까닭 없이 내 가슴이 감격에 벅차오르고 나는 마음속으로 저를 위해 기도합니다. “뉘 집 딸인지는 모르나 회사에 출근해서 일 잘하고 윗분들에게 사랑 받고, 훌륭한 남성을 만나 결혼하여, 건강하고 총명한 아들‧딸 낳아 행복하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런 ‘훌륭한 젊은이들이 있기에’ 김 노인의 노년도 매우 즐겁습니다. 조국의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믿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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