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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어제 같은데

淸潭 2016. 4. 30. 13:14

모두가 어제 같은데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이날까지 살아왔습니다. 일제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오늘의 70대까지도 그것이 얼마나 기나긴 인고의 세월이었는지 짐작도 못할 겁니다. 우리가 일본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사람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할 근거는 더욱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일제가 우리를 열등한 국민으로 다루었으므로 우리의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슬픈 세월 이였습니다.

해방의 감격은 나의 일생에 있어 가장 큰 감격이었지만 뜻하지 않은 분단 그리고 그 분단의 고착화, 내가 살던 평양에 들어 온 소련군, 그들의 행패, 그리고 그들에게 말 한 마디 못하던 김일성을 비롯한 소련 앞잡이들의 비굴한 자세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도 친일파‧민족반역자로 몰려 무참하게 처형되던 그 살벌한 분위기!

“여기 눌러 살다가는 저놈들 손에 맞아 죽겠다”고 어머님이 판단하시고 38선을 넘어 월남할 기회를 노렸습니다. 우리는 친일파도 아니고 민족반역자도 아니고 가진 자도 아니었건만, 죄가 있었다면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는 그 죄밖에 없었는데, 김일성의 왕국에 살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붙잡혀 갈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우리가 다니던 장대현 교회의 김화식 목사는 (그의 아드님이 <가고파>를 작곡한 김동진이었는데) 이미 구속된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살 길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서울로 가는 길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어 어머님 모시고 평양역에서 기차를 타고 원산까지 가서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다시 철원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38선을 넘었습니다. 나의 어머님, 정확실과 그의 어머님 김영성 권사, 확실이 친구의 가족 등 일행이 ‘안내자’의 뒤를 따라 달빛도 없는 어두운 밤에, 모내기가 끝난 논에서 울려 퍼지는 ‘개골개골 개구리’의 요란한 합창소릴 들으며, 숨을 죽이고, 그 험한 38선을 함께 넘어 경기도 연천에 다달았을 때 아침 햇빛이 찬란하였습니다. 거기서 한국인 경찰과 미국 MP가 우리들의 온 몸에 DDT 분말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것이 1946년 6월의 어느 무더운 날이었습니다. 내 나이 열아홉, 서문고녀 교복을 입고 38선을 함께 넘은 정확실의 예쁜 얼굴이 70년이 지난 오늘 새벽에도 내 눈에 선합니다. 그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모든 일이 어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는데 벌써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믿어지지 않아요!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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