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이 식지 않는 거리/성진선
작년 겨울 남편이 퇴직하자 자식들 곁으로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단독주택 생활이 힘에 버겁기도 했고, 전부터 애들이 아버지 퇴직하시면 좀 더 가깝고 편한 집으로 옮기시라고 했거든요. 딸은 자기 집 바로 옆으로 오라고 성화였지만 매일 가서 일만 도와주게 된다면서 남편이 말렸어요.
뜻밖에 딸의 시어머니가 전화해서 이제 자식들 가까이 계실 나이라며 잘 생각하셨다, 작년 한 해 우리 며느리 도와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으니 이제부터는 본인이 돕겠다, 앞으로 아들 며느리 친손자 자주 보게 돼서 좋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 내외가 딸네 집 너무 가까이 이사 올까 봐 바짝 신경이 쓰여서 그러시는 모양이었습니다. 입맛이 썼지만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누군들 좋을까요. 내 아들 옆으로 장모가 이사 온다는데요. 딸 집에서는 뚝 떨어진 40~50분, 아들 집에서는 차로 10분인 집으로 결정하고 짐을 싸는데 이삿날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지금껏 서로 눈 흘길 일이 없었건만 며느리한테서 이사에 관한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들을 수가 없었다는 거죠. 딸은 저도 며느리지만 시부모가 가까이 온다는데 새언니도 속이 시끄러울 테니 이해하라고 하더군요.
딸을 야단쳤습니다. 부모가 무슨 전염병 환자냐, 근처에 오기만 해도 속이 시끄럽게. 결국, 이사 전날에야 며느리가 전화해서 내일 이사 잘하시라며 ‘그런데 거긴 고모 집 가기에 교통이 별로예요, 아가씨 곧 둘째 가지실 거잖아요.’ 그러더군요. 참 서글프고 저 자신이 한심합니다.
어쩌다 이렇게 사방에서 피하고 싶어 하는 존재가 되었는지…. 젖먹이가 딸려서 도움이 절실한 딸만 나를 불러댈 뿐, 누구 하나 반가운 눈으로 우리를 보는 사람이 없네요. 애초에 이사를 하는 게 아니었나 봅니다. 우리 늙은이들끼리 멀찍이서 간신히 숨만 쉬고 살아주는 것이 마지막 부모 노릇이었음을 이제야 알았네요. -프리미엄조선 별별다방 코너 사연
자녀와 가까운 곳에서 따로 살고파
얼마 전 조선닷컴의 온라인 상담코너 ‘별별 다방’에서 본 60대 부부의 사연이다. 실제는 이보다 5배는 길만큼 사돈에겐 눈엣가시요, 며느리에겐 불청객 취급을 당한 서러움이 절절했다. 노년의 주거에 대한 희망 사항과는 엇박자가 크게 나는 내용이었다.
근래 설문조사에 의하면 자녀와 함께 살고 싶다는 노년층은 20% 정도에 그쳤고, 실버타운 등 노인 전용공간에서 살겠다가 25%, 나머지인 반 이상의 숫자가 다들 자녀와 가까운 곳에서 따로 살고 싶어 했다. 독립적으로 살면서도 언제든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를 원하는 것이다. 이른바 ‘국이 식지 않는 거리’다.
부모가 자식에게든, 자식이 부모에게든 냄비가 아니라 대접으로 국을 날라도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을 정도의 거리를 원하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국이 오가는 양쪽이 다 같은 마음이 아닐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위의 사연에서처럼 딸과 며느리가 다르고, 아들과 사위가 다르고, 부모와 사돈이 다를 테니 말이다.
이런 다름을 바삐 살 때는 별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은퇴라도 하고 나면 여실히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은퇴와 함께 생활영역이 직장과 같은 공적 관계에서 가족이며 친구 등 사적 관계로 옮겨지는 까닭이다. 더구나 늙어갈수록 가족은 절대적인 관계가 된다. 가장 가깝고, 가장 오랜 기간 함께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내나 남편, 자식이 아니면 누가 나 아플 때 옆에서 이마라도 짚어줄까, 임종이라도 지켜줄까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한쪽은 ‘국이 식지 않는 거리’를 원하는데 다른 한쪽은 ‘국이 오가지 않는 거리’를 바란다면 이 차이를 어떻게 하랴. 서양과는 달리 혈연관계에 대한 집착이 강한 우리에겐, 특히 노년에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앞서 사연에 달린 댓글들 가운데 그 해답이 들어있었다.
힘과 짐의 조화
누군가 그러더군요. 우리가 ‘낀 세대’라고. 부모에겐 열심히 봉양하고 자식들에겐 귀찮은 존재로 생각되고…. 그러나 1백세 시대라 하니 두 분이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시고 마음 다 내려놓으세요. 기대하니 서운하고 서운하니 괘씸했을 겁니다.
어쩌겠어요. 내려놓으니 편하더이다. 전화도 먼저 안 하니 며느리가 먼저 전화해 오는 일도 있습디다. 며느리가 딸이 될 수 없음도 경험했고, 며느리의 남편을 아들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현실입니다. 두 분이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세요.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그동안 자식을 위해 살아오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생 자식들 키우면서 고생하셨을 텐데 이제 그만 자식에 대한 마음의 짐이나 아쉬움을 모두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변한 걸 인정하시고 그에 맞게 자신도 변화해야만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 자식에 연연하다 보면 상황은 개선이 안 되면서 마음의 상처만 늘어갈 수밖에요. 이제부터는 자식이 중심이 아닌 스스로가 중심이 되는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도 이제 그만하시고 오로지 두 분이 우선인 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럴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프리미엄조선 별별다방 코너 홍여사 답변
불교 경전 ‘법구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랑하는 이와 가까이하지 마라. 사랑하지 않는 이와도 가까이하지 마라. 사랑하는 이를 보지 못함이 괴로움이요, 사랑하지 않는 이를 보는 것 또한 괴로움이라.’ 결국, 외롭지만, 이 세상의 짐을 홀로 지고 가라는 얘기다.
도사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닐 듯하다. 사람은 사람 없이 못 살고, 사랑 없이도 못 사는 존재 아닌가. 그런 존재의 첫 번째이자 가장 소중한 관계가 가족이다. 나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요, 짐이기도 하다. 이 힘과 짐이 조화를 이룰 때 ‘국이 식지 않는 거리’와 ‘국이 오가지 않는 거리’의 차이도 좁혀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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