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어릴 때는
피죽 한 그릇도 고맙게 먹었다.
설탕이 귀했던 시절이라
사카린에 소다를 넣어 부풀린
시커먼 개떡도
달고 맛있었다.
허기진 배를
술지게미(酒粕-주박)로 채우고는
얼굴이 벌게져서
하루종일 잠을 잔 적도 있다.
옆을 돌아볼 틈도 없이
자식 키우고 공부시키며 먹고 사느라
정신없이 여기까지 왔다.
어느날 허리 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니
머리 희끗희끗
반백을 지나 60줄을 넘어섰다.
남에게 뒤쳐질까봐
뛰고 달렸다.
반걸음이라도 앞서 가야했다.
그래서 입에서는 늘 빨리빨리.. 라는 말밖에
다른 말이 나올 틈이 없었다.
이제는 정신도 몸도 피곤하다.
여기저기 아픈 곳도 생겼다.
잠시 쉬고 싶어
자리에 않을라치면
세월아, 네월아 할 때도 있다.
그렇다 ,
때로는 쉬면서 보고 싶은 것 ,
가끔은 귀 기우려 듣고 싶은 것 ,
더러는 느끼면서 살고 싶다.
요즘은
느리게 느리게 하다보니
느린게 아름답다는
"느림의 미학(美學)"이라는 말도 생겼다.
그래그래 맞는 말이다.
인생의 여백(餘白)이라는 말도 있지..
삶의 빈터에서
조금은 여유를 두고 생각도 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사색도 하고 싶어지는 세대다.
이 겨울 햇살 밝은 창가에 앉아
조용히 바깥을 내다본다.
산과 들이 모두
여백으로 가득하다.
들풀도 잎진 나목(裸木)들도
황량한 들판에서
쓸쓸한 모습으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빈들이지만
풍요롭게 보인다.
동지섣달 북풍한설이 지나면
꽃 피고 새가 우는 봄이 온다는
그 기다림으로 해서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듣고 보자.
이제는 쉬엄쉬엄 갔으면 한다.
어제 오후에
눈 내리는 강변을 걷다가
해오라기가
차가운 물 속에 외발을 담그고서
조용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록
오직 한마리의
물고기를 건져올리기 위해서다.
이 추운 엄동설한에
발이 발갛게 얼어 보였다.
이제는 텃새가 된
철새 해오라기를 본다.
그 곁에 오리들도
10여 마리나 웅크리고 있다.
오늘이
음력 섣달 스무여드렛날
한 해의 끝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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