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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냐고 묻거든

淸潭 2016. 1. 19. 11:38

왜 사냐고 묻거든- (2819)

 

왜 사느냐고 누가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질문을 받는 사람도 모르지만 질문을 하는 사람도 모릅니다. 어떻게(How) 사느냐고 묻는다면 한 두 마디 대답할 말이 있는 것도 같지만 왜(Why) 사냐고 물으면 정말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그러나 생각은 해 봐야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 수는 없는 일이고, ‘왜’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던지면서 살아야 취생몽사(醉生夢死)는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밥은 왜 먹는 가부터 생각해 봅시다. 물론 배가 고프니까 먹지요. 안 먹으면 굶어 죽으니까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밥을 먹고 집에서 빈둥빈둥하면서 아무 일도 안 하고 하루해를 다 보내는 일은 용서할 수 없는 낭비요 일종의 죄악입니다. 해방 후에 유명한 복음 전도자이던 Stanley Jones 박사가 당시의 성결교신학교 교정에 와서 집회를 했는데 그 때 그는 소련의 헌법에는 성서에서의 인용이 꼭 한 군데 있는데 그것이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로니가 후서 3장 10절)는 그 한 구절이었답니다.

살기 위해서 먹는 사람이 돼야지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돼서야 되겠습니까? 물론 그 다음 질문이 따릅니다. “그럼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확실한 대답을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데 80년의 세월이 소요되었습니다. 이제는 분명하게 압니다. 사람은 사랑을 위해 살고, 사랑 때문에 사는 지구상의 유일한 동물입니다. 따라서 사랑이 없으면 인간의 생존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지 않고는 인생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형제나 친구의 사랑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사람은 어느 나이가 되면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찾고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찾습니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남녀의 사랑이야말로 절대자가 주시는 질서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당나라 현종(玄宗)은 며느리로 들어온 미녀 양귀비(楊貴妃)를 왕비로 삼는 불륜을 범하여 안록산(安祿山)의 난(亂)이 불가피했습니다. Abelard(1079-1142)와 Heloise(1101-1164)는 중세의 뛰어난 지성들이지만 사제지간임에도 불구하고 불륜의 사랑에 빠져 두 사람 다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삽니다. 건강한 사랑을 위해서 삽니다. 누가 “왜 사냐?”고 물으면 “사랑 때문에”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그것이 정답이고, 정답은 하나뿐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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