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제6권 제5호 1934년 05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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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千里人生案內
美術校長과 羅蕙錫氏
꼿의 巴里에 畵家修業을 갓다가 도라온 女流畵伯 羅蕙錫女史는 엇든 꿈을 꾸길래 도모지 사회의 표면에는 이러타 저러타하는 소식이 업는가 하고 世人의 질문이 만키에 一括하여 대답함니다. 羅女史는 방금 財産難으로 困境에 잇는 市內 某女子美術學校를 引繼 經營할 생각도 가지고 그래서 새로 女子美術學校 하나를 新設할 굉장한 포부도 가지고 돈을 준비코저 활약중인데 아무튼 1934년대에는 冠을 쓴 女校長 한 분이 나설는지 모른다고 하옵니다.
精力主義의 宋鎭禹
春園이 朝鮮日報副社長으로 昇任하여 나간 뒤 編輯局長을 이른 東亞日報에서는 社長 宋鎭禹氏가 局長일을 兼처 보기로 되어 每朝 10시 定刻登廳 그 만흔 原稿를 일일히 檢讀 下午 4시 定刻退廳을 매일 한다고 이러케람이 째인때 氏의 胸中에는 應當 北米 張德秀氏의 歸來를 懇望하고 잇스련만.<102>
許憲氏와 金鑛
前 新幹會長 許憲氏는 최근 京鄕間을 분주히 來往하는데 무슨 天下大勢가 움지기는가 아러본즉 每事每事에 資本金難을 歎하든 氏는 退하야 漁網을 짜는 格으로 咸鏡道 어느 곳 金鑛區를 5, 6區 발견하야 크게 採堀 중이라는데 듯건대 그 金鑛은 옛날 李容翊氏가 上에 바치든 그 부근의 金鑛으로 數十年來 鑛脉이 뭇처잇든 것이 今也 許氏 손으로 再發堀됨 이라고 稀世의 보물이면 주인을 올케 차젓슴인가.
李鍾浩氏 未亡人
月松 李鍾浩氏는 이미 고인이 되섯다. 李容翊氏 장손으로 일즉 親露派로 몰니어서 다년 해외를 遊歷하다가 전년 드러와 조부의 對第一銀行 九十萬圓事件의 결과도 보지 못한 채 애석하게 作故한 분인데 死后 赤貧如洗한 가정을 직히고 잇든 未亡人 趙氏를 위하야 近來 尹益善, 崔麟 등 諸氏가 선두에 나서서 知友들에게 義捐을 募하고 잇다. 명문의 후예가 斗米에 주우려서야 이 땅을 사람 사는 땅이라 하랴 美談이다.
方應模氏의 자최
方應模, 高一淸, 李光洙의 3氏가 東京 大阪으로<103> 20일 간을 遊歷하고 도라온 일은 世人共知하는 事어니아 그 자츼의 후문을 듯건대 3氏일행이 東京서 大臣, 政黨, 財界, 言論界 등의 명사를 초대하고 一夜의 宴을 베풀엇는데 勿驚 그 宴會費用이 40여 원이엇다고 더욱 拓務大臣의 視辭까지 잇섯다고 전한다.
名優의 地方巡廻
名優 羅雲奎氏는 무슨 劇團인가 끄을고 이 꼿피는 三春佳節에 邊陋한 지방으로 巡業을 한다고 가튼 俳優면서 日本의 大河內傳次郞가튼 사람은 私財 50만원, 片岡千惠藏가튼 사람도 15만원울 俳優演技 하나로 버을고 잇다는데, 그만한 名聲과 그만한 技倆을 가지고 半島에 태어난 罪로 羅氏 한갓 地方巡業로서 免飢한다니 아하 누구의 罪인고.
漸快하는 金起田
肺病 제3기라는 놀나온 宣告를 밧고 그동안 海州 홀병원에 이르러 精養 中이든 前天道政靑 黨首 金起田氏는 원래 意志의 人이만치 병을 극복하기를 힘써 최근은 매우 經過 良好하야 새해 봄부터는 室內散策쯤은 될 듯하다 한다. 一代의 才人이 다시 再起함을 비는 이 엇지 天道敎 同志들 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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