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의 아들
옛날에 보부상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봇짐을 지고 산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서 불이 비치는 곳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깊은 산골짜기에 산적 떼들이 산채를 꾸며놓고 본거지를 이루고 사는데, 그날 저녁에는 마당에 장작불을 피우고 둘러 앉아 뭔가 의논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두목이 다음에 도둑질 할 계획을 한참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며칠날 아무 동네 아무것이 부잣집에 가서 양식을 빼앗고 또 보부상하는 아무것이 집에 가서는 비단을 빼앗아 오도록 하자. 우리가 산 속에서 겨울을 나려면 아무래도 양식하고 옷감을 넉넉하게 확보해야 되느니라.”
보부상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아무 동네가 바로 자기 마을이며 보부상하는 아무 것 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순순히 물건을 내놓지 않고 반항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 자리에서 처치해도 좋다. 하지만 순순히 물건을 내놓거든 절대로 사람을 해치지는 말아라. 우리가 필요한 것은 양식과 옷이지 사람 목숨은 아니란다.”
자칫 반항하다간 목숨까지 빼앗기게 생겼습니다. 보부상은 산적 떼들의 계획을 듣고 나니 겁이 나서 도저히 거기서 머물며 밤을 새울 수도 없고 장사 길을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걸어서 날이 샐 무렵에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밤새도록 산길을 걸어온 까닭에 얼굴은 나무에 긁혀 엉망이었고 옷도 여기저기 찢어진데다가 기운이 다 풀려서 마치 깡패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았습니다. 열 살 먹은 아들이 그러한 아버지의 낭패한 모습을 보고서, 걱정스레 안부를 묻습니다.
“아부지 이게 웬일이십니까. 무슨 일을 당해서 몸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까?”
“아무 일도 아니다. 니가 알 것 없다.”
“아부지 일을 아들이 모르면 누가 압니까? 저도 좀 알게 해주세요.”
“고마 니는 알 일이 아니다.”
“그럼 어무이만이라도 알으켜 주셔야죠. 무슨 수심이 있는지 부부간에는 서로 알아야지요.”
그러니 비로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보고 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게 아이라, 아무 날 산적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 아무개 집과 우리 집을 떨어가겠다는데, 내가 보부상 하는 것을 알고 우리 집에 와서는 비단을 모두 빼앗아 가겠다고 하더라구. 그러니 내가 수심이 될 수밖에는...”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이야기를 하니 아들도 자연히 그 사정을 듣게 마련입니다.
“에이! 아버지, 그만 일에 무슨 수심을 다 하십니까? 아무 걱정 마시고 소 저만 믿으이소.”
“이놈, 어린 것이 무슨 궁리가 있다고......?”
“작은 고추가 맵다고 제 말만 들으시고, 얼굴도 씻지 마시고 오늘은 그냥 주무시소.”
아들이 워낙 딱 부러지게 이야기를 하니까 아버지도 아들이 시키는 대로 따랐습니다. 다음날 봇짐 속에 든 비단과 상품들을 모두 방 안의 짚자리 밑에 골고루 펴서 깔아놓고 그 위에 다시 평소처럼 자리를 덮어 깔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밤이 되자, 방안을 이리 저리 어지럽혀 두고서 아버지 어머니를 방 한가운데 앉혀놓은 채 손과 발을 결박하고는 그 위에다가 비단을 쌌던 큰 보자기로 덮어씌워 놓았습니다. 산적 떼들이 마을에 들어올 무렵이 되어 마을이 왁자지껄해지자,
“아이고 아이고!”
하며, 아들이 통곡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도둑놈들이 비단을 떨어갈라만 우리 어무이 아부지는 그냥 두고 떨어갈 일이지, 사람을 두둘겨 패고 또 무엇이 모자라 이렇게 묶어놓고 갔노!”
산적들이 문간에서 가만 엿들어 보이 어린 아이가 울며 넉두리하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이상하게 여겨서 문을 박차고 들어가니, 마치 도둑떼들이 한 차례 집을 훑어간 모습이었습니다.
“야 이놈아, 뭔 일이 있어 그렇게 통곡을 하며 넉두리를 하느냐? 너희 아부지는 어디 갔느냐?”
“아저씨들 잘 왔습니다. 우리 아부지 어무이 좀 살려주이소. 조금 전에 도둑떼들이 와가주고 우리 아부지 봇짐장사하는 비단을 다 빼앗아 달아나면서, 우리 아부지 어무이를 저렇게 묶어놨습니다. 저 보자기를 좀 풀어헤쳐 보이소.”
산적들이 보자기를 휙 제켜보니, 남편은 도둑떼들한테 맞아서 피탈이 나있는 것 같은게 영락없이 강도를 당한 몰골이었습니다. 방안을 둘러봐도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비단은 없고 빈 보자기만 있었습니다. 벌써 웬 놈들이 선수를 친 것 같았습니다. 산적들이 재수 없다는 뜻이 침을 한 번 퇘! 뱉고는,
“고만 다른 데로 가세, 오늘은 헛걸음했네!”
하고 발길을 돌리는게 아닙니까.
“아저씨들, 그냥 가면 어쩝니까. 우리 아부지 어무이 좀 풀어주고 가셔야지요.”
“아, 그래?”
봇짐장사 아들이 엉엉 울며 매달리는 바람에 도둑들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결박한 줄을 모두 풀어주고 나서야 방을 나갔습니다. 두목 노릇을 하는 산적 녀석은 문간을 나서면서,
“헛 그 참! 뛰는 놈이 있으면 나는 놈도 있다더니, 우리 앞에 선수를 친 녀석이 있다니.....”
하고는 부하들을 데리고 마을을 떠나버렸습니다. 아들의 궁리 덕택에 아버지 어머니는 비단을 전혀 빼앗기지 않고 목숨도 무사했습니다. 아이들의 궁리라고 해서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은 아닙니다. 산적들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지만, 그 나는 놈이 자기들보다 선수를 친 또 다른 도둑이 아니라, 사실은 어린아이의 궁리였습니다.
산적으로부터 재산을 지키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산적을 힘으로 물리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훔쳐갈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산적을 물리치는 일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산적들보다 더 힘이 세어야 합니다. 예사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둘째 방법은 힘이 약하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쉽게 취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특히 비단을 파는 보부상으로서는 산적이 노리는 비단만 없으면 그만입니다. 비단이 그냥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비단을 모두 팔았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비단 판돈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비단이 없으려면 비단을 잃었거나 빼앗겨야 합니다. 그냥 도둑맞았다고 해서는 긴박감이 없으므로 어디 숨겨 놓고 거짓말을 한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입니다. 다른 산적 떼들에게 빼앗겼다고 하는 것이 더 그럴듯합니다. 누구에게 폭행당한 모습을 한 부모를 묶어놓고 아들이 통곡을 하며 넉두리를 한다면 그러한 상황을 여실하게 꾸며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아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택할 수 있는 두 번 째 방법을 택하여, 그들의 재산인 비단을 지켰던 것입니다.
출처: http://limjh.and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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