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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夏至]이야기

淸潭 2015. 6. 23. 14:00

 

하지 [夏至]이야기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5월 중기인 하지 기간 15일을 5일씩 끊어 3후(候)로 나누었는데, 초후(初候)에는 사슴이 뿔을 갈고, 차후(次候)에는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侯)에는 반하(半夏: 끼무릇·소천남성·법반하라고도 하며, 덩이뿌리로 밭에서 자라는 한약재)의 알이 생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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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와 가뭄 대비도 해야 하므로 이때는 일년 중 추수와 더불어 가장 바쁘다. 메밀 파종,
누에치기, 감자 수확, 고추밭매기, 마늘 수확 및 건조, 보리 수확 및 타작, 모내기, 그루갈이용 늦콩 심기, 대마 수확, 병충해 방재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남부지방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무렵이면 모두 끝나는데, 이때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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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구름만 지나가도 비가 온다는 뜻으로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라는 속담도 있다. 과거 보온용 비닐 못자리가 나오기 이전 이모작을 하는 남부 지역에서는 하지 ‘전삼일, 후삼일’이라 하여 모심기의 적기로 여겼다. 하지가 지나면 모심기가 늦어지기 때문에 서둘러 모내기를 해야 했다.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라는 속담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또한 이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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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는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데, 우리나라는 예부터 3~4년에 한 번씩 한재(旱災)를 당하였으므로 조정과 민간을 막론하고 기우제가 성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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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雨]에 대한 관심은 이미 단군신화에 나타나 있다. 환웅이 거느리고 하강했다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세신은 모두 비에 관한 신이니, 비에 대한 관심은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농작물은 물을 필요로 하며, 물은 곧 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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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농업의 주종을 이루는 벼농사의 원산지가 고온다습한 동남아시아 지역이고, 우리나라는 주로 장마철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므로 그 전후인 하지 무렵까지는 가뭄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수리시설이 부족한 때일수록 기우제가 성행하였다. 한 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비였으므로 기우제는 연중행사였으며, 가능한 모든 방법이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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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는 산이나 냇가에 제단을 만들고, 마을 전체의 공동행사로 제사를 지냈다. 제주(祭主)는 마을의 장이나 지방관청의 장이 맡고 돼지, 닭, 술, 과실, 떡, 밥, 포 등을 제물로 올린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당이 제를 관장하기도 한다. 또 민간에서는 신성한 지역에 제물로 바친 동물의 피를 뿌려 더럽혀 놓으면 그것을 씻기 위해 비를 내린다는 생각으로, 개나 소 등을 잡아 그 피를 바위나 산봉우리 등에 뿌려 놓는 풍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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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 일대에서는 하지 무렵 감자를 캐어 밥에다 하나라도 넣어 먹어야 감자가 잘 열린다고 한다. “하짓날은 감자 캐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하지가 지나면 보리가 마르고 알이 잘 배지 않는다고 한다. 또 하지가 지나면 감자 싹이 죽기 때문에 ‘감자 환갑’이라 한다. 이날 ‘감자천신한다’고 하여 감자를 캐어다가 전을 부쳐 먹었다.

 

 

 

 

깔딱 고개- 하지(夏至)

          - 사공선생님 글중에서 - 

 

달아나는 세월을 비끄러맬 수는 없어도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올해도 벌써 숨 가쁜

절반의 고갯마루에 서게 된다.

 

이번 6월22일은 24절기 중의 하나로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이다.

한해로는 절반의 가파른 깔딱 고개다.

 

24절기 이름 중에

‘지(至)’자가 붙는 것이 둘이 있는데,

여름 중에 가장 한여름을 하지(夏至),

겨울 중의 한가운데 절기를 동지(冬至)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절기에서만 쓰는 말일 뿐

기상학적으로는 하지부터를 여름으로 삼는다.

여기에서 지(至)는 ‘이르렀다’ ‘지극하다’는 뜻이므로

하지는 여름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와 동지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가장 긴 짝이 되기도 하고,

하지에 낮이 긴 것은 활동을 많이 하고,

동지에 밤이 긴 까닭은 휴식을 많이 취하라는

대자연의 천명(天命)이 숨어있음을 새겨 담자.

 

하지는 일 년의 한 중턱의 고갯마루이니

인생에 비춰보면 40~ 50대에 해당된다.

가장 밝고 따뜻한 때라

사람으로 치면 용기와 지혜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인 셈이다.

40에 불혹하고 50에 지천명 한다는 말은 아마도

이때쯤이면 최소한

똥과 된장을 구분할 줄은 알아야 한다는 말은 아닐까?

 

하지가 ‘여름에 이르렀다’는 말은 여름이 되었다는 말 말고도

“열매를 맺을 때”라는 의미도 품고 있음을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여름’이란 말 속에는 계절을 지칭하는 것 외에도

‘열음(열매)’이란 뜻도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찬란하던 꽃들은 지고

이제는 맛 좋고 영양 많은 열매를

잘 키워가야 할 때에 이르렀다는 것을 암시 하는 때가

바로 하지라는 것도 새겨두자.

 

아름답던 색깔도 진한 향기도

이제 열매 속으로 서려 담아

영양을 익혀가는 데 삶의 초점을 맞춰야 할 때임을 알아차리자.

겉을 중시하던 삶에서 속을 채우는 생활로 바꾸어야 할 때임을 깨달아

실천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튼실한 열매를 남길 수 없다면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가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일찍 핀 꽃이나 화려한 꽃들은 대개 열매가 부실하기 마련이다.

겉모양에만 치중하거나 말로만 번드르르 한 사람은

실속이 없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다.

학교 다닐 때 뒤졌었다고 기죽을 것이 아니며

친구들의 화려한 명성이나 출세에 주눅들 것도 없다.

인생의 진짜 승부는 이때부터다.

한해의 농사가 그렇고 인생의 승부가 또한 그러하다.

 

봄에는 온갖 새싹들이 돋아나고 꽃들이 피어나며

가지들은 자라나고 키도 다투어 커간다.

싱그러움을 뽐내고 화려함을 자랑하며

향기를 드높이고 크다고 거들먹거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나가는 친구들을 보고

좌절감까지도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크게, 그리고 넓게 한 번 바라보자.

한해를 결산하는 가을이란 저울에 달아보면

그 쑥쑥 잘 크던 놈은 잡풀이었고

화려함을 뽐내던 것은 잠깐 피었다 진 꽃잎이었으며

그토록 진하게 드높던 향기는

벌 나비를 유인하는 일회용 소모품이었지 않았던가!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고 했다.

초장에 잘나간다고 반드시 금메달을 따는 게 아니다.

인생의 성패는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고,

내가 내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얼마나 충실하게 해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벼도 열매요 수박도 열매다.

벼가 수박만큼 크겠다고 헐떡이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인생이 고달플 수밖에 없다.

수박은 안 먹어도 잘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호박꽃은 화려하지도 향기롭지 않아도

가장 큰 열매를 맺는다.

 

무엇이 소중하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더 알찬 삶일까를

하지고개를 넘으며 다시 한 번

다함께 곱씹어 보고 싶은 마음이 이는 아침이다.

 

                          <충북일보에 기고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