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머닌 처음부터 오로지 우리 형제를 위해 존재하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듯, 어머닌 처음부터 어린 시절이 존재하지 않은 분인 줄 알았습니다
꿈많은 소녀도,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도 어머니완 상관없는 것인 줄 알았
습니다
어머어머닌 연로하셨어도 밑도 끝도 탈도 많은 육 남매의 장래만이 진정한 어머
니의 바람인 줄 알았습니다. 어쩌다 어머님 외출 시 단장하신 곱디고운 한복
차림은 그냥 그러려니 시니컬한 무심함은 자식의 특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한 무심함을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신 속 깊음은 우린 단지 감성의
메마름이라 간주했을 뿐입니다. 자식들의 무심함을 나무람으로 내색하지,
표현하지 않으셨던 당신은 어느 날 보란 듯이 속절없이 우리 곁을 떠나셔
습니다
단 며칠의 고요함에 한평생 여한을 가쁜 한숨으로 몰아 쉰 피안의 언덕은
당신의 영원한 안식처였지만 우리에겐 살아, 살아감에 슬픔의 전주곡이 된
다는 사실을 비로소 감지했습니다
장롱 서랍 깊숙이 놓여있는 오방색 보자기 속 사주단자에 가지런히 배열된
어머님의 유년 시절이, 꿈과 설렘과 그리움에 부푼 곱디고운 처녀 시절이
정결하게 잠자고 있었음을 그때야 보았습니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생전에 단아한 어머님의 모습이 그곳에서 함께 떠날
그 날을 기다리고 있을 줄 우리는 정녕 몰랐습니다
'글,문학 > 수필등,기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을 보내고 .. (0) | 2015.05.30 |
---|---|
讀萬券書 行萬里路 (0) | 2015.05.23 |
'어부사시사' <춘사春詞> _ 고산 윤선도 (0) | 2015.05.09 |
늙은 아버지의 질문... 아들의 대답! (0) | 2015.05.08 |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 (0) | 2015.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