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적인 세계상
전 물리학적인 세계상은 "자연은 일정한 시스템 안의 정보전달이다."라고 하는 새로운 분자생물학의 세계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들은 지금 공업기계로부터 컴퓨터로, 조립에서 처리로, 공간적인 것에서 시각적인 것으로, 공업화 시대의 우주론에서 정보화 시대의 우주론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살고 있다. 오늘날 일체의 생물은 왓슨(Games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에 의해 발견된 DNA(일종의 유전자)라는 기초적 생물 단위로 분해할 수 있고, 그 DNA는 실험실에서 추출하여 인간이 재조립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우수한 생물로 전환시킬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간단하게 키보드에 프로그램을 입력함으로써 종속간의 벽을 초월하여 신종 생물의 모든 것을 프로그램화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들이 사는 세계는 인간 자신들이 만들어 낸 신종 생물들이 넘쳐흐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우리는 인간의 두뇌 구조를 살펴봄으로써 DNA 분자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인간의 뇌는 무게가 약 1,500g의 핑크색으로 된 젤리형의 덩어리면서, 그 속에 약 2백억 개의 신경세포를 함유하고 있다. 하나의 신경세포는 다수의 수지상돌기의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크기는 약 100분의 1mm의 세포체와 거기에서 길게 뻗은 하나의 신경섬유로 되어 있다. 이 하나의 신경세포는 최근의 미니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능력 이상의 기능을 갖고 있다. 여기서 신경섬유는 전선의 역할을, 세포체는 전기 신호의 발신 및 수신소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놀라운 것은 신경세포의 발신·수신의 작용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배후에 있는 구름과 같은 전기회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그 크기가 약 1억분의 1cm의 분자의 화학적 변화에서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현대의 분자생물학은 바로 이와 같은 교묘한 구조로 되어 있는 분자의 세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눈의 감각세포는 매초당 약 백만 개의 신호를 신경섬유를 통하여 대뇌로 보내고 있다. 하나의 DNA 분자는 그 폭이 약 백만분의 2mm 정도의 가늘고 긴 끈의 형상을 한 분자로서, 인간에게 있어서는 어떤 것은 1.5m가 될 만큼 긴 것으로서 코일 형상으로 감겨져 있다. DNA 분자의 구조는 4종류의 염기(아데닌 A, 구아닌 G, 시토닌 C, 티민 T)가 연쇄상으로 일렬로 연결된 것이 2개가 중첩되어 있고, 그 분자수는 무려 약 50억 개나 되며, 비유를 한다면 1천 권의 백과사전과 맞먹는 것이다. 모든 개체가 저마다 형상을 달리하고 있는 것을 바로 그 4개의 염기의 서열이 다르게 배열된 데 기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화엄경」에는 DNA 분자의 구조를 훨씬 능가하는 천문학적인 수량의 내용이 표시되어 있다. 「화엄경」은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불자(佛子)여,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만한 양의 대경권(大經卷)이 있고 게다가 그 대경권 속에는 삼천대천 세계가 전부 완전하게 씌어 있다. ‥‥‥이 대경권은 하나의 극미의 먼지알[粒子] 속에 삽입되어 있다. 그리고 1극미진(極微塵) 중에 그 대경권이 투입되어 있는 것과 같이 다른 일체의 극미진 등에 있어서도 그 양만큼의 대경권이 그 안에 투입되어 있다. ‥‥‥이와 같이 오오 불자여, 여래지(如來智)는 한없는 양(量)의 지혜요, 무애의 지혜로서 일체 중생의 몸에 전부 들어 있다. 여기서 여래지는 불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현대 분자생물학에 있어서의 정보와 비교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DNA 분자는 최초의 수정란과 모든 세포 속에 존재하여 생물을 만드는 설계도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총지휘자 겸 감독자의 역할을 하는 정보체이다. 이것은 불교의 불성(불성, 여래지)이나 유전자 속에는 무엇인가를 말하는 의식도 없고 듣는 의식도 없는 곳에 일종의 언어 범주가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서, 종교적·생물학적 정보의 신비성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이것은 마치 선불교의 이심전심이나 염화미소의 경지를 나타내는 듯하다. 「화엄경」에는 비로자나(毘盧遮那, 光明遍照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법신불이 있다. 이것은 우주 자연 전체에 편만되어 있으면서, 이 세계의 모든 현상들을 현현하는 그 응화(應化)의 당체로 작용한다. 이 비로자나 법신불은 인격적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수많은 개별적 존재들로 하여금 불가분리의 유기적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게 하는 연기의 주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불교 경전의 사상이 그러하듯이 마음[心]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원효(元曉)는 물론 그것을 일심(一心)이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비로자나 법신불은 물질성과 정신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분자생물학에 있어서, 분자나 유전인자가 물질성을 가지면서 그 자신 속에 유기적인 정보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불교의 '일체중생실유불성'의 사상은 유전자의 정보 교신의 경우와 유사성을 갖고 있다. 「보성론」의 일체중생유여래장품(一切衆生有如來藏品)에 보면 '일체중생유여래장(一切衆生有如來藏)'이라고 할 때의 여래장은 '소섭(所攝)의 의(義)'와 '은복(隱覆)의 의(義)' 그리고 '능섭(能攝)의 의(義)'등의 3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였다. 제1의는 "일체 중생은 모두 여래지안에 있으며, 그 속에 소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생이 여래장이다."라고 말하고, 제2의는 "여래가 스스로 숨어 나타나지 않고 있으므로 여래성은 범부에 있다 하더라도 번뇌에 은복되어 중생은 이것을 보지 못하므로 중생은 여래장이다."라고 말하고 있고, 제3의는 "능섭을 장하는 여래로서의 일체의 공덕을 중생이 섭지하고 여래로 되었을 때, 전부 나타난다는 점에서 중생은 여래장을 갖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승장엄경론」의 여래장과 진여, 2개의 관계를 보면, 산스끄리뜨어본[梵文] 9의 37송(頌)에, "진여(眞如)는 일체의 것에 무차별이고, 청정(淸淨)에 달하면 여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일체의 유신자(有身者, 衆生)의 태(胎)이다."라고 설하여 있다. 「승만경」 제14게(偈)에도, "세존이시여, 법신(法身)을 떠나지 않고 여래장(如來藏)이 있으며, 여래장을 떠나지 않고 법신이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열반이라는 것은 바로 여래 법신이다."라고 하여, 여래장과 법신이 동일자임을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경에는, "사리불이 말하기를, 제일의제(第一義諦)라는 것은 곧 중생계이고, 중생계라는 것은 곧 여래장이다. (그리고) 여래장이라는 것은 곧 법신(法身)이다." 라고 설하여 있다. 이것은 중생계와 여래장과 법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근본적으로 문제자 되는 것은 '법신과 진여의 의미가 어떻게 다르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여의 체(體)를 법신이라고 하는데, 인식론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법신은 능연(能緣)의 주체성을 나타내고 있고, 진여는 소연(所緣)의 대상성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동일한 제법 실상의 양면에 불과한 것으로서 진여는 물리학적으로는 역장(力場), 생물학적으로는 정보장, 심리학적으로는 정신장(精神場, 프사이場)과 대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여는 무기체와 유기체의 잠재적인 장으로서, 진여(眞如)가 현상화한 것이 삼라만상이요 그것의 자각점이 법신이라고 볼 수 있고, 그것의 기체(基體)를 불성 혹은 여래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