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불교관련

화엄경과 科學

淸潭 2015. 4. 17. 08:05
(1) 화엄경과 현대과학
화엄경과 科學  

 

생명의 컴퓨터 프로그램화가 발전되면 생물이 종(種)에서 이루어지고 종이 모여 자연계가 성립한다고 하는 종래의 생각은 과거의 유물이 되고 말 것이며 간단한 키보드에 프로그램을 입력함으로써 종(種)간의 벽을 초월하여 신종 생물들의 모든 것을 프로그램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하나의 DNA 분자 속에는 대백과사전 천권의 정보에 맞먹는 정보가 삽입되어 있으며 인간은 그와 유사한 바이오칩이라는 기억소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말하자면 손톱만한 상자속에 대백과사전 천권 혹의 그 이상의 책속에 들어 있는 전 단어를 삽입해 넣을 수 있는 기억장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교의 화엄사상에서 보았을 때는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되지 못한다. 이미 여러 곳에서 밝힌 바 있거니와 화엄경 속에는 이르는 곳마다 사물과 사물이 서로 상호관통하는 사사무애(事事無 )의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체의 국토가 일체의 국토에 들어가고 하나의 국토가 일체의 국토에 들어가며 일체의 세계가 하나의 터럭(毛孔)속에 들어가고 하나의 터럭이 일체의 세계에 들어가며 일체중생의 몸이 한 몸에 들어가고 한 몸이 일체 중생의 몸에 들어간다는 법문(法門)이 그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 티끌 속에 온 세계가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하나 하나의 티끌속이 다 그러하며 그 속에는 각각 무수한 부처님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시간상으로는 무량원겁의 영원 속에 들어가는 가 하면 일체의 부처님법이 한 법에 들어가며 일체의 음성이 한 음성에 들어가고 한 음성이 일체의 음성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곳에보면 삼천대천세계만한 큰 경전이 있고 그 책 속에는 그 삼천대천세계의 삼라만상에 관한 온갖 글이 쓰여져 있는데 그것이 한 티끌 입자속에 들어갈 수 있으며 하나 하나의 티끌 입자가 다 그러하고 그 반대가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 설파되어 있다. 이것은 오늘의 어떠한 기억 소자(素子)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초기억 소자(素子)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놀라운 불교의 우주론은 앞으로의 정보화시대에 있어서 무한한 상상력과 이미지를 제공할 것이다.
나가르쥬나(龍樹)는 일찍이 사물들이 그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고 상호적 작용에 의해서만 그것들의 존재와 자연이 만들어진다고 말하고 실재물들이 서로 동일하면서 다르다고 하는 미묘한 일은 원인과 결과, 실체와 속성, 전체와 부분, 주체와 객체 등이 서로 의존되어 상호관통하고 있는데 연유한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이 우주는 인간의 내적 세계에 대한 외적 세계로서 인간과 우주는 동일한 물질의 양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에 있어서 모든 에네르기 내지 사사물물(事事物物)들과 모든 정신적 의식과 영혼들은 횡계(橫系)와 종계(縱系)의 관계와 같아서 물질의 실들과 정신의 실들이 서로 연관지어져 하나의 분리할 수 없는 끝없는 우주망(宇宙網)을 짜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성론(寶性論)》의 여래장품에 나오는 일체중생유여래장(一切衆生有如來藏)이라는 말의 의미는 일체의 중생(여기서 일체중생이란 우주의 삼라만상 일체를 의미한다)이 여래장 즉 불성 다시 말해서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며 단지 그것이 오염되어 음복되거나 깨닫지 못하여 감추어져 있을 뿐 깨닫게 되면 불성이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컨대 불교의 우주관은 현대의 첨단과학의 세계와 천문학의 우주론을 함축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종교적인 차원에서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의 통일적 세계상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화엄경의 이른바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불광(佛光)에 빛나는 불경계(佛境界)요 그 불광은 서로 방해 받지 않고 상호관통하여 우리들 심광(心光)이 또한 그와 같아서 백삼천대천세계를 시방십중(十方十重)으로 주회(周廻)하여 비추니 주관(心)과 객관(境)이 하나로 합하여 법계(法界)를 두루 관통한다는 부처님의 진리의 설법은 진실로 진리 중의 진리요 지혜 중의 지혜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광(光)반도체 소자(素子)를 개발하여 초고속 초대용량의 정보처리 장치를 개발하여 초고속 초대용량의 정보처리장치를 실현함으로써 대량의 정보의 두뇌를 지탱하는 소자(素子)를 탄생시켰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초밀도의 정보처리장치들은 앞으로 더욱 우주의 신비를 밝혀낼 것이지만 그것은 불교의 우주관을 더욱 증명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불교의 우주론이 현대과학의 우주론과 같은 수준의 과학적 세계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코 외적 세계로만 향하는 과학의 발전이나 과학적 우주론은 결코 인간의 참된 삶이나 가치내지 구원을 제시해 주지는 못한다고 하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불교의 우주관이 현대화학의 우주론에 결여된 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것은 정신적 내지 내적 세계의 중요성이다. 아인슈타인은 『종교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요 과학없는 종교는 맹인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우주적 종교성이 가장 강하게 되어 있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불교라고 말한 일이 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이와같은 종교관과 우주관에서 본다면 불교의 우주관은 바로 과학성과 종교성을 동시에 함유함으로써 새로운 우주시대를 여는 오늘의 세계에 가장 바람직한 우주적인 세계상을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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