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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어머니" 불러줘 고맙구나

淸潭 2015. 3. 20. 09:15



 

☞ 아침편지
25년 만에 "어머니" 불러줘 고맙구나


장미숙 수필가·서울 송파구

▲... '어머니'라는 단어는 처음 써 보는 것 같아요." 신병 훈련소에서 보내온 아들의 편지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어머니'라는 낯선 단어 앞에서 얼마나 망설였을까. 편지를 받은 이틀 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글자가 아닌 생생한 음성은 내 마음에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정겨운 단어가 어머니이지만, 내게는 결코 그런 단어가 아니었다. 아들은 25년 만에 날 '어머니'라 불렀고, 나는 25년 만에 아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25년 만이라고 한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5주 신병 교육을 마치고 수료식이 열린 날, 처음에는 아들의 한쪽 팔만이 내 차지였다. 아들을 끌어안은 것은 할머니였고 아들의 군복에 이등병 계급장을 붙여준 사람은 큰아빠였다. 아들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으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전보다 한결 부드러웠다. 아들이 살며시 안아주었을 때는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했다. 피치 못할 사정과 거부할 수 없는 운명 때문에 아들을 키울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아들을 내 손으로 키우지 못한 건 사실이고, 그 사실은 내게 죄책감이란 응어리로 남았다.

25년 전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과 아들의 탄생은 순식간에 우리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남편은 결혼한 지 1년 만에 병이 들었고, 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우리 곁을 떠났다. 내 등을 떠민 건 시어머니였고, 아들은 할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랐다. 오랜 세월, 나는 아들의 주위를 맴도는 주변인에 불과했다.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아버지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부모가 이혼해서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만 믿고 부모를 원망했다. 아들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건, 고등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둔 때였다. 어느 날, 낯선 이름과 맺어진 관계를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지난날의 기록이 담긴 노트와 육아 일기를 건네주었다. 아들은 비로소 가슴을 옥죄고 있던 끈을 풀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아들의 편지는 날 주변인에서 어머니로 격상해 주었다. 하지만 아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원망, 외로움, 그리움이 내게로 온전히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내가 풀어줘야 할 실타래라 생각하니 비로소 뭔가 할 일을 찾은 것 같아 오히려 뿌듯했다. 아들은 지난날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며 내게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행복은 아주 가까운 곳에, 단 한 장 편지에, 단 한 단어에도 숨어있다는 것을….

장미숙 수필가·서울 송파구 |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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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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