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禪이야기

상대방 解脫(해탈) 돕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淸潭 2015. 3. 11. 10:04


 

☞ 상대방 解脫(해탈) 돕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 배우자와 충돌 생겼을 때 일어난 탐욕·성냄·질투를 바로 보아야 없앨 수 있어

사랑은 상대 영혼 살찌우나 그릇된 愛着은 구속할 뿐… 부부 함께 福 닦으며 해로를

상대방 解脫(해탈) 돕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최근 여기저기서 주례(主禮)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이제 내가 좀 중후해보이나 보다"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늙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 다시 거울을 보기도 했다. 어쨌든 가까운 신도들의 요청이니 거절하기도 어려워 마지못해 자리를 빛내주게(?) 되었다.

한번은 우리나라 여성과 프랑스 남성의 국제결혼식 주례를 보게 되었다. 스님의 주례사는 어쩐지 어색한 듯하지만 부처님 당시에도 스님들이 잔칫집에서는 '행복경'을, 상가에서는 '담장밖경'을 낭송해주었다는 데 힘입어 용기를 냈다.

"불가(佛家)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부부는 수백 생(生)의 인연(因緣)으로 만난다고 합니다. 인(因)은 주관적 요인, 연(緣)은 객관적 요인을 말합니다. 내가 인이요, 배우자가 연입니다. 두 손바닥이 만나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인과 연이 함께 충실해야 과(果)가 충실합니다. 배우자 덕 보려 말고 배우자가 내 덕 보게 하려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때 기쁨은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반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네 유형의 좋은 아내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어머니 같은 아내, 둘째는 누이 같은 아내, 셋째는 친구 같은 아내, 넷째는 하녀 같은 아내입니다. 그대는 이 가운데 어떤 아내를 바라는가요?"

이 질문을 했을 때 한국 신부는 '친구 같은 아내'라고 답하였고, 프랑스 신랑은 'All of them(모두)'이라고 답변했다. 이야말로 멋진 답변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은 넷 중 하나를 선택하는데 프랑스인은 역시 자유로운 영혼이 아닌가 싶었다.

"아울러 남편은 아내에게 존경심을 품고, 예절을 갖추며, 순결을 지키고, 가정을 맡기며, 때때로 장식품을 선물해야 합니다."

그러자 신랑이 "또 선물해야 하나요?" 농담했다. 지금 결혼 예물을 주었는데 또 주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남자에게 장신구는 단순한 선물에 불과하지만 여자에게 선물은 애정의 표현으로 느껴진다. 그러기에 석가여래께서 남편이 아내에게 이행해야 할 의무 사항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로 꼭 집어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배우자와 충돌이 일어났을 때는 얼른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해야 합니다. 탐욕이 일어나면 탐욕이 일어났다고 관찰하고, 성냄이 일어나면 성냄이 일어났다고 관찰합니다. 시기질투심이 일어나면 시기질투심이 일어났다고 관찰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참으면 병(病)이 되고, 터뜨리면 업(業)이 됩니다. 그리고, 바라보면 사라집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이때 주의할 것은 '내'게서 탐욕·성냄·시기질투심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육근(六根)의 무더기'가 탐욕·성냄·시기질투심을 일으키고 있다고 관찰해야 합니다. 육근이란 눈·귀·코·혀·몸·뜻을 말합니다. 이러한 여섯 가지가 모여서 '나'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을 '육근의 무더기'로 관찰할 때 비로소 일어남과 사라짐이 쉬고, 관찰자의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지혜롭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사랑과 애착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으로 포장된 애착에 머물러 있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말했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가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는 상태여야 한다.' '사랑은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면서 동시에 상대도 성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랑으로 행복해지려면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부터 키우라'고 충고한다. 내가 필요해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정신의 응석일 뿐이다.

사랑에는 보호와 책임이 뒤따른다. 꽃을 아낀다고 하면서도 물을 주지 않는 사람이 과연 꽃을 사랑하는 것일까? 상대의 성장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이야말로 사랑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결국 상대방을 구속하려 드는 것은 애착(愛着)이요, 상대방이 해탈하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백년해로(偕老)한 부부가 다음 생에서도 부부로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부처님은 "두 사람이 한 믿음을 갖고, 한 가르침을 받아서, 똑같이 보시하고 똑같이 마음을 닦는다면 다음 세상에서도 똑같이 한마음으로 살아가리라"고 답하셨다. 결국 부부가 함께 복(福) 닦기, 도(道) 닦기를 해야 백년해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한다. 사람은 판단력이 떨어져 결혼하고, 인내력이 떨어져 이혼하며, 기억력이 떨어져 재혼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부부간의 관심이 아름다운 구속이라고 생각하지만 갈수록 불편한 족쇄로 여겨질 수도 있다. 수십 년간 다른 환경과 처지에서 살아온 남녀가 만나 함께 살아가면서 행복해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다행히 어질고 착한 아내를 만나면 행복하겠지만 악처(惡妻)를 만나면 철학자가 된다는 소크라테스의 교훈을 마음에 되새기지 않고서야 어찌 쉽게 결혼할 수 있으랴?

결국 삶은 체험 학습 장이요, 몸뚱이는 체험 학습 교재라고 생각한다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겠지만,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결혼은 해도 문제요 안 해도 문제인 것이다. 결혼은 새장 같은 것이다. 안에 있는 새는 부질없이 나가려 하고, 밖에 있는 새는 들어가려 애쓴다. 남의 떡을 부러워 말고 자신의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야 할 것이다.

월호 스님·행불선원 원장 |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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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