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가고 달이 가고
그래서 또, 가을입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책을 보면
인간이 가지는 세 가지 형태의
절망에 대한 유형이 그려져 있습니다.
절망하면서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 ,
절망하여서 자기 자신이기를
거부하는 사람 ,
절망하여 더욱 더
자기 자신이기를 바라는 사람 ,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절망은
단 한번 뿐인 죽음조차 희망할 수 없는
죽음보다 더 깊은
절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번째의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적인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인간적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신이 죽었다던 니이체 ,
우리 인간 스스로가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한
신은 죽어버리고 없다는 ,
그러나 지금은
그가 말하던 신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좁게 극히 단순하게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거부하고 외면하면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표면과 내부의 갈등, 미련, 사랑 ..
그것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사물을,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는 것 외에
얼마나 더 솔직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육체가 혹은 정신이
심하게 충격을 받았다고 가정한다면
그 결과가 반드시
우리의 삶을
마감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충격은 옳게 시작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더 좋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
일종의 변증법과 같은
아이러니를 연출할 지도 모릅니다.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때로는 조금 아파해야 할 것에 대해
많이 아파하며
자연은 그 상처를 빨아들여
삶의 또 다른
뒷면을 보게 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너무 추상적인가요?
모든 인간에게 간곡하리만큼
자살을 권유(?)했던 쇼펜하워지만
자기 자신은
자살연습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플러스알파인지
아니면 ,
각각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부가가치인지는 모릅니다.
그 영원한
의문을 풀기위해 수많은 길을
우리는 때때로 시행착오를 선택하며
난감해 합니다.
불행은 불행만을 낳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이별은 슬픔만을 낳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낳을 수도 있고,
사랑은 달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맵고 쓴 계피맛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복잡함 속에 습관되어지는
단순함의 그 묘미 또한 ,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 속에는 표현할 수 있는 즐거움보다
더 큰 무엇이 숨어있기도 합니다.
가끔 , 서글퍼질 때가 있습니다.
알고 있는 것들을
서서히 잊어간다는 것 ,
생활 속에서 말로 표현하지 않아서
잊혀져가는 그림자들이
마음 한귀퉁이를
톡톡 건드리며 지나갑니다.
한편으로는 논리에서 놓여난다는
얄팍한 기쁨도 있습니다만
반복되는 생활과
가정이라는 테두리 ,
윤리와 관습의 울타리를
과감히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잊고 잃으며 사는 것은
허무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보이고 들리는 것 ,
모든 생각들 ..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체험을
빠짐없이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때로는 허구의 언어만을
남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서로의 환경과 생각 또는
개념이 다를지라도
여전히 시간은 흘러가고
같은 한세기를 산다는 것은
표현은 다르지만
세월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지금은 밤입니다.
구름에 가렸던
달빛이 바람을 타고
부옇게 흩어져 내리고 있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그래서 또 ,
낙엽이 지는 가을이 오면
펜을 들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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