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서예실

自强不息 厚德載物

淸潭 2014. 3. 28. 03:09

 

자강불식 후덕재물 - 自强不息 厚德載物 POM 소장품들

2013/06/1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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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불식 후덕재물 - 自强不息 厚德載物>은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이다. 해와 달의 굳건한 운행을 본 받아 스스로 힘씀에 쉼이 없으며, 두터운 땅이 자애롭게 만물을 싣고 기르듯 덕행을 쌓아 관대 하라는 뜻이다. 즉 우리의 조상과 옛 어른들은 <천행天行-하늘의 운행>을 살피고 그 굳건함을 본받아 <자강불식自强不息>-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여 강하여 지고, <지세地勢-두터운 땅의 기운>을 살펴 <후덕재물厚德載物>-만물을 싣고 생장시킴을 본받아 덕행을 쌓고 관대하고자 수행한다는 뜻이다.

 

나는 일찍 <자강불식 후덕재물>이란 구절의 깊은 뜻을 알게 된 다음부터 언젠가 이 글을 서예가 한 분에게 부탁하여 좋은 글씨로 받아 나의 서재에 걸어 놓고 늘 감상하면서 글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2007 12월 나는 내 평생의 서예공부를 정리하는 뜻에서 <추사秋史를 넘어>라는 책을 한 권 출판하였다. 이 책은 아마 우리나라 건국 이후 한글세대의 일반독자를 위하여 쓰인 가장 읽기 쉽고 재미있는 서예입문서의 하나일 것이다. 이 때문인지 의외로 독자들의 반응도 좋아 <서예문화>라는 전문 서예잡지에서는 2008 3월호에서 <서예가 보인다>는 제목으로 이 책에 관한 특집을 무려 20 페이지에 걸쳐 꾸미기도 하였다.

 

나는 이 책에서 판교 정섭, 추사 김정희, 도마 안중근, 소전 손재형, 검여 유희강, 소지도인 강창원, 송천 정하건을 포함한 일곱 분의 서예가의 글씨와 인품과 작품에 관하여 다루었다. 이 책에서 다룬 일곱 분의 서예가 중에서 앞의 다섯 분들은 이미 고인이 되셨고, 그들의 삶과 예술은 전설傳說이 되었다. 살아계신 두 분 중에서도 소지도인 강창원 선생은 현재 미국 L.A.에서 활동을 하고 계신 까닭에 나는 자연 서울 인사동에 서실을 가지고 계신 송천 정하건 선생을 자주 찾게 되었다.

 

2008 1 15 <한겨레신문>의 임종업 선임기자는 <웰빙 서예 보급에 나선 서예가 정하건씨> <서예는 현대인 마음 다스리는 최고급 수양>이란 제목 아래 송천 정하건 선생의 삶과 예술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나는 기사의 취재가 있던 날 인사동의 <송천서실松泉書室>과 수유리의 <구봉루九峰樓> 서재를 찾아가 취재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이때 다시 한번 송천 정하건의 삶과 인품, 학문과 서예예술의 세계에 관하여 꼼꼼히 듣고 살펴 보며 적잖이 감동을 받았다. 기사가 나가고 난 다음 우리는 취재와 기사의 후일담도 나눌 겸 인사동에서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나는 어렵게 송천 정하건 선생에게 내가 늘 가지고 싶어 하였던 작품 <자강불식 후덕재물>을 써 주실 것을 부탁 드렸다.

 

송천松泉 정하건鄭夏建은 이 작품을 세 개의 부분으로 구성하였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한글의 궁체에서 발전시킨 송천 정하건 나름의 국한문 혼용체混用體의 행서行書로 썼다. 젊은 세대들에게 <주역周易>에서 따온 문장의 뜻을 쉽게 읽히고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어 문장의 뜻을 상징하는 문인화풍의 그림을 작품의 한 가운데에 넣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원전原典 본문本文의 글을 송천 정하건 특유의 예서체隸書體의 글씨로 조형성造形性을 살려 썼다. 즉 그는 이 한 작품 속에서 새로운 장법章法과 구도를 시험하고 조형적인 완성을 꾀하고 있다. 즉 현대의 한글세대의 감상자들을 위하여 새로운 시서화詩書畵 일치一致의 경지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송천 정하건의 한글 궁체는 전통적인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더하여 힘이 있다. 이는 그가 오랫동안 한문서예를 닦아오면서 얻은 필력筆力을 한글 궁체의 필획筆劃에도 불어넣은 까닭이다. 또한 그의 한글 궁체의 흘림글씨는 한문 행서行書와도 잘 어울려 조화되고 있다. 이런 새로운 국한문 혼용의 서체를 통하여 송천 정하건은 현대의 한글 세대들로 하여금 전통의 한문서예가 갖고 있는 소통疏通과 이해부족理解不足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나아가 한글서예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 때문인지 그는 쉽고 편하게 읽히는 서예를 위하여 국한문 모두를 한글 세대를 위하여 가로쓰기로 하였다.

 

이 작품에서 송천 정하건은 또한 시각적인 감상과 이해를 보다 중요시하는 세대들을 위하여 서예와 현대적 문인화와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즉 한글서예와의 결합을 통하여 한문서예의 난독성難讀性을 해소하고 이해를 쉽게 돕는 한편 나아가 그림을 더함으로써 글자만으로 이루어진 서예 작품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있다. 한글과 한문서예와의 조화와 일치를 꾀하면서 더불어 전통 사군자四君子 또는 사의화풍寫意畵風의 문인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예작품에 쓰인 문구의 해석을 그림을 통하여서도 표현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는 즉각적이며 시각적 효과를 중요시하는 현대 젊은 세대들에게 서예가 <보이는 서예>로서 회화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효과적인 하나의 방법으로 시도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보인 송천 정하건의 이런 장법과 작품구도는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그가 2004 10월 자신의 칠순전七旬展에서 선보인 아래와 같은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와 같은 작품에서 한 걸을 더 나아간 경지라 하겠다. 국한문 행서와 예서만으로 쓰인 작품에서 더 나아가 서예의 필선筆線에서 나올 수 있는 문인화풍의 그림까지 결합하여 하나의 작품 속에 담은 것이다.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아래의 작품에서는 국한문 행서를 위아래로 하고 그 한 가운데 한문 예서로 본문을 썼다. 그는 이런 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인화를 더하여 화면을 3분하고 있는 것이다.

 

 

송천 정하건이 그려 넣은 문인화의 세계는 그의 서예가 갖는 아름답고 맑으며 힘찬 필선의 연장선상延長線上에서 나왔다. 이런 까닭에 자연 그의 그림도 서예작품에서와 같이 청경淸勁한 맑고 곧은 선으로 그려졌다. 절제된 구도, 간결한 필선, 시원한 여백餘白의 공간이 주는 효과는 서예작품 속의 주역 본문의 깊은 내용을 상징하고 함축含蓄함에 부족함이 없다.

 

송천 정하건은 배경의 산을 그림의 중심이 되는 대상으로 삼고, 화면의 왼쪽 끝에 힘차게 뻗은 소나무를 넣고, 그 가지 위 높은 하늘에 일월日月의 상형문자를 새겨 넣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일월日月-해와 달>과 더불어 가까이에 있는 아홉 봉우리의 산과 멀리 있는 힘찬 산줄기와 더불어 힘차게 하늘을 향하여 뻗어 가는 높고 낮은 소나무 들을 하나의 화폭에 실었다. 아홉 봉우리의 산은 그의 서재 구봉루九峰樓에서 마주 보이는 아름다운 산들을 그린 듯도 하고, 금강산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팔도강산에 펼쳐진 아름다운 산봉우리를 상징하는 듯도 하다.

 

멀리 아홉 봉우리의 산들의 뒤에 펼쳐진 산줄기는 그가 동경하며 오르기를 꿈꾸는 높은 예술의 경지와 이상의 세계를 그린 듯 하다. 송천 정하건이 득의得意의 예서隸書를 비롯한 서예의 필치로 그린 <중암첩장重巖疊嶂>의 세계다. 그는 1995년 그의 회갑전이 되는 제4회 개인전에서 대표작으로 <중암첩장重巖疊嶂> 네 글자를 선 보였다. 그에게 있어 만물을 싣고 소생시키는 어머니와 같은 인자仁慈한 땅-곤坤의 세계는 늘 중후重厚하고 후덕厚德한 산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아마 그의 엄격嚴格하고 신중愼重한 성격의 일말인 듯하다. 그가 앞서 2007년에 그린 문인화 <모기고慕其高 학기중學其重>- 산의 높음을 흠모하고 산의 신중함을 배운다-에서 그린 것과 같은 산인 것이다. 

 

왼쪽에 우뚝 선 한 그루의 소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은 마치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歲寒圖 속의 나무들의 기세와 기상을 닮아 곧고 힘차다. 그 중 맨 왼쪽의 소나무는 하늘 높이 솟아 있고, 오른쪽으로 뻗은 가지 위로는 높이 솟은 <일월日月>을 전서체篆書體의 상형으로 그려 보여주고 있다. 그 소나무 가지로부터 가운데에 솟은 또 한 그루의 소나무의 정점頂点과 멀리 보이는 산줄기로 이어지는 필선筆線은 그 뒤로 펼쳐진 광활한 우주를 여백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내고자 한 듯하다.

 

이는 송천 정하건이 추구하는 정신과 예술 세계이다. 그는 옛 선비들이 <자강불식 후덕재물>하고자 하였던 바로 그 곧은 정신과 기개氣槪를 주역의 원문과 그 한글풀이, 그리고 그림의 기호와 상징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일월은 하루도 쉬지 않고 정확한 시간에 스스로 주어진 행로를 운행한다. 군자와 선비는 하늘의 운행을 본받아 끊임없이 자신의 완성을 위하여 노력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물을 싣고 키우는 후덕한 땅의 기운을 본받아 덕을 쌓아가며 관대하고 인자한 사람이 되고자 수양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송천 정하건이 일필휘지一筆揮之하여 그린 먼 산줄기의 필선은 이 작품의 핵심적인 부분이라 하겠다. 마치 석도石濤와 팔대산인八大山人의 필획을 보는 듯 간결한 가운데 힘차다. 그가 오랜 세월 서예와 더불어 공부하여 온 문인화 속에 숨겨온 서예적 필력의 문인화적 변용變容이라고 하겠다. 송천 정하건은 이 그림으로써 우리가 태어나 몸담고 있는 이 우주의 조화와 만물을 키우는 자연의 살아 움직이는 힘과 변화를 서예적 필선으로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나는 송천 정하건의 이 작품 속에서 우리나라 현대 서예와 문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는다.

 

일찍이 추사는 그의 서화의 세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畵法有長江萬里 화법유장강만리 - 그림 그리는 법에는 장강 일만 리와 같은 멀고 긴 연원이 있고

書勢如孤松一枝 서세여고송일지 – 글씨의 필획의 힘은 외로운 소나무 가지의 굳세고 곧음과 같다

 

나는 송천 정하건의 이 작품이 이런 추사가 추구하고 이룬 예술의 과정과 이상을 흠모하고 따라 배우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온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맨 왼쪽에 대지에 굳게 뿌리박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소나무로부터 뻗어난 가지의 모습이야말로 바로 추사가 말한 <書勢如孤松一枝 서세여고송일지>의 경지가 아닐까? 이 소나무는 음과 양이 <일월日月>로 표현된 하늘과 산으로 표현된 땅의 기운을 받고 커가면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로 이 그림 속에서는 화면의 맨 왼쪽 위아래에 가득 차게 맞닿아 있다. 바로 <자강불식 후덕재물>하면서 천지간天地間에서 바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곧은 선비의 올바른 모습의 상징일 것이다.

 

그의 예서는 이제 원숙한 경지에 들어갔다. 그는 <自强不息 厚德載物> 여덟 자를 그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이룩한 송천 정하건만의 독특한 필획의 예서로 써 보였다. 예서의 향기로 그득한 결구와 필체로 쓴 여덟 자의 글씨 속에는 강인한 방필方筆의 힘을 고졸古拙한 원필圓筆의 필법으로 감싸고 숨긴 까닭에 그가 과거에 즐겨 쓴 예서에서 곧잘 보이던 날카로움도 뻣뻣함도 없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그가 오랜 학서學書의 과정에서 즐겨 쓰던 육조체六朝體와 한예漢隸의 강인한 방필의 획들을 녹여 마치 옛 전서篆書의 필획 속에 담은 듯 송천 특유의 새로운 예서체를 창신創新한 듯하다. 그는 마침내 굳세고 강렬하며 완벽한 결구의 필획으로 가득 찼던 과거의 필법을 넘어 원만원융圓滿圓融한 가운데서도 굳셈을 잃지 않는 고졸古拙한 형태와 필획으로 나름의 새로운 글씨를 마음껏 쓰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장중한 가운데 날렵하며 원만한 새로운 예서를 좋아한다. 나는 송천 정하건이 비로서 운필에 있어 방원方圓을 마음껏 섞어 쓰며, 속도의 완급緩急과 필획의 대소大小, 곡직曲直과 향배向背를 마음껏 조절하면서 천의무봉天衣無縫한 글씨로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본다. 그는 마침내 그가 추구하였던 서예의 이상세계와 경지를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송천 정하건은 추사와 검여의 <웅혼雄渾-웅장하고 막힘이 없는> 기상과 <청경淸勁-맑고 곧은> 정신을 이어받은 위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온화穩和-조용하고 부드러운> 가운데 웅혼과 청경함을 살리는 필획을 터득하고 마음껏 쓰게 된 것이다.

 

120 Cm x 60 Cm 크기의 세 부분을 하나의 작품으로 표구를 하자 전체작품의 크기는 120 Cm x 180 Cm. 여기에 배접지褙接紙와 틀까지 합치니 무려 145 Cm x 225 Cm 크기의 대작이 되었다. 좋은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하여는 작품을 걸어 전시하는 어울리는 공간도 중요하다. 나는 이 작품을 내가 춘천에서 운영하는 실내 100평의 Bakery & Book Gallery Café <Peace of Mind>에 걸었다. 서예 전문화랑을 겸한 베이커리 & 카페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정면 벽 중앙에 작품을 붙였다. 그리고 조명등 3개로 작품의 세 부분에 스포트라이트를 주어 조명하였다카페의 입구로부터 작품까지 이어지는 통로의 길이는 무려 33보步, 대략 20 미터가 된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서 안으로 차츰차츰 걸어 들어오면 이 작품이 점점 커지면서 다가온다.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 아침에 청소를 할 때, 낮에 홀서빙을 하면서, 또는 저녁에 책과 음반과 서화들을 정리하면서, 수없이 이 작품 <자강불식 후덕재물>을 마주하며 천지天地와 음양陰陽의 이치理致와 섭리攝理를 깨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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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불식 후덕재물>의 정신은 중국의 많은 과학 엘리트와 정치 지도자들을 키우고 배출하고 있는 북경의 명문名門 칭화대학교淸華大學校의 교육 이념과 목표이기도 하다. 근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전통문화의 토대 위에 서양의 과학기술을 접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목표의 실현을 위하여 칭화대는 중국의 전통 사상 속에서 <자강불식自强不息 후덕재물厚德載物>을 골라 교훈校訓으로 삼았다. 즉 그들은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기에 앞서 중국의 고전古典인 주역周易의 가르침 속에서 <스스로 끊임없이 강하게 만들고, 덕을 쌓은 위에 물질적인 발달을 꾀한다>는 목표를 찾아 낸 것이다. 칭화대는 학생들이 인문人文과 과학科學과 덕성德性을 함께 배우고 키우는 전인적全人的 교육을 목표로 삼고 있다.

  


 

 

自强不息 厚德載物 (자강불식 후덕재물)

 

 

天行健 君子以 自强不息 (천행건 군자이 자강불식)

 

군자는 천체질서를 본받아 스스로 굳세게 행하고,

 

 

地勢坤 君子以 厚德載物 (지세곤 군자이 후덕재물)

 

넓고 두터운 땅처럼 덕을 쌓아 만물을 이끌어가라.

 

 

- 周 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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