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3.01 03:00
[한국경제 이끌어온 오너 경영]
기업 오너, 수조원 드는 사업도 장기적 안목으로 빠른 결정
불황기에도 선제적 집중투자… 한국 기업의 시장 장악력 높여
조선·반도체·휴대폰·車 등 제조업 '글로벌 강자' 탄생시켜
1988년 삼성전자에서 중요한 회의가 열렸다. 회사의 명운이 걸린 메모리 반도체(D램) 개발 방식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회의에서는 반도체 원판(웨이퍼)을 밑으로 파서 IC칩을 집어넣는 신기술 트렌치(trench) 공법과 웨이퍼 표면에 층층이 칩을 쌓아올리는 스택(stack) 공법을 택하자는 개발진의 상반된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반도체 라인 하나를 세우는 데 수조원이 드는 상황이어서 전문경영인들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자료를 철저히 분석한 이건희 회장이 말문을 열었다. "단순하게 보자. 미세한 전자회로를 지하로 파 들어가는 건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차라리 위로 쌓는 게 낫다."
결정이 내려지자 설비투자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을 역임한 황창규 KT 회장은 "오너의 빠르고 과감한 의사 결정이 선발 업체였던 도시바·히타치 등 일본 기업을 앞지르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신속한 결정·과감한 투자로 글로벌 기업 성장
한국은 후발 산업국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조선·반도체·휴대폰·TV·자동차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선진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거나 '글로벌 강자'로 부상한 국가다. 빠르고 압축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한국식 오너 경영 시스템'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불황기에 과감하고 집중적인 투자와 신속한 의사 결정이 큰 위력을 발휘했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극심한 불황기였던 1987년 이후 삼성전자는 4년 연속 연평균 3억9600만달러를 투자했다. 당시 일본 4대 반도체 회사 투자액을 합친 것보다 2.8배나 많았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장기 불황이 시작되던 1970년대 중반 세계 최대 규모인 100만DWT급(재화중량톤수) 조선소를 준공하며 조선업에 진출했다. 한국 기업이 불황기에 선제적으로 '올인식' 투자를 하니 다른 나라 기업은 생산 과잉을 우려해 추가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런 투자를 반복하면서 한국 기업은 세계시장 장악력을 강화했다.
자료를 철저히 분석한 이건희 회장이 말문을 열었다. "단순하게 보자. 미세한 전자회로를 지하로 파 들어가는 건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차라리 위로 쌓는 게 낫다."
결정이 내려지자 설비투자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을 역임한 황창규 KT 회장은 "오너의 빠르고 과감한 의사 결정이 선발 업체였던 도시바·히타치 등 일본 기업을 앞지르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신속한 결정·과감한 투자로 글로벌 기업 성장
한국은 후발 산업국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조선·반도체·휴대폰·TV·자동차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선진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거나 '글로벌 강자'로 부상한 국가다. 빠르고 압축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한국식 오너 경영 시스템'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불황기에 과감하고 집중적인 투자와 신속한 의사 결정이 큰 위력을 발휘했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극심한 불황기였던 1987년 이후 삼성전자는 4년 연속 연평균 3억9600만달러를 투자했다. 당시 일본 4대 반도체 회사 투자액을 합친 것보다 2.8배나 많았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장기 불황이 시작되던 1970년대 중반 세계 최대 규모인 100만DWT급(재화중량톤수) 조선소를 준공하며 조선업에 진출했다. 한국 기업이 불황기에 선제적으로 '올인식' 투자를 하니 다른 나라 기업은 생산 과잉을 우려해 추가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런 투자를 반복하면서 한국 기업은 세계시장 장악력을 강화했다.
현대자동차의 기업 문화를 상징하는 '품질 경영'도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드라이브에서 시작됐다. 1989년 정 회장이 울산 공장을 방문했을 때다. 그는 막 생산 라인에서 나온 그레이스 승합차의 슬라이딩 도어를 20차례나 힘껏 여닫기를 반복했다. 결국 문짝이 슬라이딩 레일에서 이탈해 삐걱거리자 정 회장은 "다시 처음부터 똑바로 만들라"고 짧게 지시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전직 현대차 임원은 "등골이 서늘했다"며 "이 사건 이후 현대차는 목숨을 건 품질 개선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LG화학이 2차전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것도 구본무 회장이 10년 가까이 뚜렷한 성과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장기 비전을 갖고 지속적인 투자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미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경영 환경이 어려울 때는 오너 경영이 더욱 힘을 발휘한다는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벨렌 빌라롱가 교수가 2006~2009년 기업 4000곳을 조사한 결과 오너 기업의 매출 신장률이 다른 기업보다 매년 2%포인트 높았다. 빌라롱가 교수는 "책임 소재가 명확한 오너 경영 기업은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한다"고 밝혔다.
◇해외 기업도 속속 오너 경영 복귀
전문경영인 위주로 운영되던 해외 기업들도 최근 들어 오너 경영 체제로 복귀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대규모 리콜 사태로 비틀거리던 도요타자동차는 창업주 후손인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최고경영자(CEO)를 맡으면서 세계 1위 자리에 복귀했다. 양적 확대에 몰두하던 전문경영인과 달리 그는 직접 경주용 트랙에서 자동차를 몰아보며 가장 기본적인 품질 향상에 힘을 쏟았다.
부도 직전의 애플을 되살린 인물도 창업자 스티브 잡스였다. 망할 위기에 처한 애플에 구원투수로 등장한 그는 돈이 되지 않는 PC와 프린터 사업을 대폭 구조조정했다. 이후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 글로벌 히트 상품을 만들어내며 애플을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구글·페이스북·소프트뱅크 등 현재 각광받는 IT(정보기술) 기업은 대부분 오너가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