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암(水井庵)
대숲으로 가는 길에는
여전히 맑은 가을빛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호젓한 길을 걷다보면
다가오는 여유의 충만(充滿)함이
때로는 허전하고
스산함도 스며드는
가을 정취가
가슴을 아득하게 한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대숲 사이로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마른 잎사귀를 흔들며
쏟아져 내리는 저 찬란한 빛살 ..
언제나 푸르고
매끈한 줄기 때문일까
대숲에 들어서면
군더더기 없는 알몸이 떠오른다.
세상의 먼지가 묻지 않은
저 맑은 몸짓들이
바람의 변주(變奏)에
온몸을 맡긴 채
차르륵 ,
차르륵 .. 청정한 소리를 빚는다.
가끔씩
저희들끼리
몸을 탁, 탁.. 부딪치며
긴장을 즐기기도 한다.
계절을 음미하며
천천히 숲길을 오르자
허리 굽은 대숲지기 노인이 반기며
차를 내놓는다.
대숲은 잎을 떨구기 직전
계절의 기운에 몸을 의탁한 채
깊은 상념에 젖어든
가을 대숲이 인상적이라 한다.
세 칸 토담집 창으로
가득 밀려오는 숲그늘이 맑다.
자연을 마주하며 마시는
녹차의 은은한 향에
온몸이
차분하게 젖어든다.
대숲에서 일상에 찌든
육신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맑은 바람자락을 머금은
한 잔의 따뜻한 차로 영혼을 헹군다.
바람이 분다.
탁악 ,
탁 ..
댓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茶) ..
이곳 대숲 아래
자생하는 차밭에서
욕심 없는 노인이 손나는대로
쉬엄쉬엄 따두었다가
손님이 찾아오면
손수 대접한다고 한다.
" 그저 대가 좋아서,
여기 이렇게 눌러 삽니더.."
늘 푸른 그 모습이 좋아
대숲 속에서 산 지가 벌써 40년이 지났다며
대밭으로 눈길을 준다.
대가 자라 숲을 이루면서
새가 날아들었고
바람자락이 찾아드는
푸른 숲이 그져 좋았다고 한다.
대숲 저쪽 언저리에서
잎사귀를 흔들면서 건너오는
바람자락에
눈길을 주다가
문득 생각이 난듯
대나무도 꽃을 피운다면서
죽향이 번지는
찻잔을 가만이 만진다.
60년에서 100년만에
한 번 개화(開花)하는 대나무꽃(竹花)
쌀알 만한 크기의 꽃을
일제히 피운다.
꽃을 피운 대숲은
그 이듬해 말라버린다.
일생에 단 한번 ,
결코 화려하지 않은
꽃을 피웠다 스스로를 버리는
그 비정함 또한
얼마나 극적인가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단 한 번의 꽃을 피우기 위해
그리도 꼿꼿하게 사는가.
일생에 단 한 번
지극한 사랑 앞에서는
곧은 허리 한 번쯤
바람 앞에 굽힐만도 할터인데
그래서 너는
고고한 푸른 대나무인가?
말을 하는 내내
대숲지기 노인의 눈에는
푸른 빛
맑은 바람이 고여 있었다.
쏴아 ,
바람이 불어온다.
마음이 맑아지다 서늘하다.
대숲이 나를
밖으로 오라 손짓한다.
차르륵 ,
차르륵 ..
대나무가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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