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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淸潭 2013. 10. 1. 10:36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이 5가지가 있는데,

 

첫째 내 뜻대로 살,

두째 일 좀 덜 할,

세째 화를 좀 덜 낼,

네째 가족과 친구들을 좀 더 챙길,

마지막으로 도전하며 살이라고 한다.

 

<걸걸걸걸걸>하니까,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껄껄껄>하며 후회한다는 우숫개 소리가 생각난다. 즉,마누라를 더 사랑해 줄, 인생을 좀 더 멋있게 즐길, 주위 사람에게 좀 더 베풀하며 후회한다는 얘기다.

 

만일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후회하게 될까? 가장 큰 회한은 '다른 사람의 눈과 기대에 맞추지 말고, 스스로에게 진실한 삶을 살았더라면'이 아닐가. 사람들은 삶이 끝나갈 때 쯤 돼어서야 자기가 얼마나 많은 꿈을 이루지 못해던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어떤 것을 하거나 하지 않기로 한 자신의 선택때문에 꿈의 절반조차 이루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것을 후회한다.

 

'일을 좀 더 할걸'하는 후회는 특히 남자라면 다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전성시대니까 여자도 일을 좀 더 할걸하고 병상에서 후회하게 될 날이 올것이다. 남성들은 대개 회사 일에 쫒겨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배우자에게 잘해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특히 배우자와 노후에 여행을 많이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옛 친구를 찾지만 그때는 이미 연락처도 모를 때가 많고 임종시 가족들이 모두 지켜 보는 가운데 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하면 친척과 친구들이 문병 오는 것을 은근히 바란다.

 

며칠 전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는 오랫동안 침샘암과 투병했지만 일절 친구들의 병 문안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장호 감독하고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고교, 대학까지 같이 다닌 절친이지만 그의 문병조차도 사절했다고 한다. 그는 작가로서 자존심이 너무 세기 때문에 죽어가는 초라한 모습을 친구의 추억에 남겨 주지 않기 위해서일거라 추측해 본다. 그러나 범인(凡人)은 그러하지 않다. 나는 통계를 말하는 것이고 세상만사 예외없는 법칙은 없다고 최인호같은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는 천재는 그나름대로 인생관이 있기 마련이다.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부터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5대 성현 등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사색하고 성찰하고 명상하고 번민하고 고민한 명제들이다. 답은 하나일 수 없다. 사람은 각기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 길이 있다. 하기 때문에 생각도 다양하고 일률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보편타당성있는 통설은 있다.

 

삶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누구나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죽음은 피해 갈 수는 없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영혼은 육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하는가?'라고 성찰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사색하게 되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다. 내가 죽는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죽음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다만 남아 있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슬픔을 안겨 주는데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 잊게 된다. 장례식에 참석한 친척이나 친지도 슬퍼하며 흐느껴 울기보다는 고인을 추억하며 조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이 좋지 않을가 생각해 본다. 그래도 죽음은 공포스럽고 두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로마제국의 황제(재위기간 160~180)이고 5현제(賢帝)이며 스토아파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명상록'에서 '오늘 당신은 죽은 몸이라고 생각해라. 더 산다는 것은 덤이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그 시간을 살아라'라고 말했다. 노자의 '도덕경'과 매우 흡사한 철학이다.

 

좋은 죽음은 아름답다. 좋은 죽음은 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일 때, 또 죽음이 언제 어디에서 찾아온다 해도 그 동안 주어진 삶의 충만함에 깊이 감사할 줄 알 때 가능하다. 죽기 전까지 살아온 삶으로 충분하다고 만족하지 못하면, 존엄한 죽음이나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스티브 잡스는 불교신자로 선(禪)에 심취해 있었는데 췌장암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에서 죽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명연설을 하였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이다.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는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시람조차도 죽어서까지 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의 숙명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면 당신은 정말 잃을게 없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암이 재발하여 그로부터 6년 후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머리로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내가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 다만 물질적으로 장례식 비용을 위하여 상조회사에 가입하는 정도다.

 

하지만 장례식 비용보다 죽음의 질을 성찰해야 한다.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면 죽음이 실패도, 불행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 삶의 정점과 완성으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경제적 어려움이나, 질병의 고통이건, 마음의 상처건, 힘든 삶의 도피처로서 죽음을 마지못해 수용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꾸준한 자기훈련, 자기성장의 과정없이 누구도 단번에 큰 깨달음에 도달할 수는 없다. 죽음에 대하여 끊임없이 사색하고 성찰해야 좋은 죽음을 맞이 할 수 있다. 종교적 표현을 빌리자면 영적성장을 통한 영혼의 각성은 하루 아침에 얻어 질 수 없다.

 

삶 속에서 죽음의 사색을 놓지 않고 살아갈 때 비로소 좋은 삶으로 살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죽음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죽음은 인생의 완성이다. 그리고 죽음은 자연의 현상이다. 태어났다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다만 일찍 오느냐 늦게 오느냐의 차이일뿐 우리는 살이가고 있는것이 아니고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각자 주어진 삶에서 사람답게 사는게 중요하다.

 

티벳의 승려들이 소망하듯이 죽음의 순간이 설령 눈부시게 밝은 빛과 하나가 되는 멋진 최후의 경험이 아니라도, 죽음 앞에서 두려움없이 편안하게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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