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수필등,기타 글

하늘 천(天), 따 지(地) ../ 사맛디

淸潭 2013. 6. 26. 11:28

      
      나는 틈만 나면 
      천자문(千字文)을 읽는다.
      책 크기가 
      손바닥만 하니까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꺼내보고는 한다.
      몇 해 전 
      시장 구경을 하다가 
      길에서 책을 팔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책이라야 
      오래 된 옛날 책들 뿐이다.
      장화홍련젼, 
      심청젼, 춘향젼, 구운몽
      천자문, 동몽선습, 
      궁합 보는 법, 
      토정비결, 
      지방 쓰는 법..
      그외 벼루와 붓 등 
      문방필구들이다.
      오가는 사람들은 많은데 
      누구 하나 눈여겨 보는 이가 없다.
      하기야, 
      요즘 세상에 
      그런 코리타분한 책을 
      누가 읽겠는가.
      그 때 사서
      지금까지 읽고 있다.
      하늘 천(天)
      따 지(地) ..
      천자문 첫머리인, 
      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루 황(黃)..
      중국 양(梁)의 
      주흥사(周興嗣:470~521)가 
      하룻밤에 편집을 끝내고 나니 
      머리가 하얗게 세서
      일명 "백수문(白首文)"이라 부른다는 
      옛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1000자 250구 125절에 
      자연自然, 역사歷史, 철학哲學, 천문天文, 지리地理, 
      인물人物, 윤리倫理, 도덕道德, 처세處世 등 
      인간사를 두루 뀄으니, 
      천자문은 
      한자 문화권이 손꼽는 
      종합 교양서이자 
      서사시(敍事詩)라 할 만하다.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宇宙觀)이 모두 다 들어있다.
      천자문에 
      하나하나 주(註)를 달아
      다시 편집을 한다면
      아마..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을 다 모은 것보다
      수백 수천 배는 더 방대한 
      책이 될 것이다.
      매번 느끼지만
      주흥사는 인간이 아닌
      하늘이 내린 
      천인(天人)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글자 수가 
      수십만 자가 넘는데
      그 많은 글자 가운데 
      1000자를 골라 
      첫머리에 
      하늘(天)과 땅(地)으로 시작하는
      불후의 명작인
      천자문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만약 지금에
      천자문이 없었다면
      이처럼 대단한
      사자성어(四字成語)의 천자문을 다시 지을 수 있을까?
      읽고 또 읽어봐도
      그냥 입이 딱 벌어진다.
      하늘 천(天),
      따 지(地) ..
      맨 마지막에는
      있기 야(也)로 끝난다.
      우리 인간이
      보고 듣고 느끼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이
      하늘과 땅에
      그대로 있다(存在)는 말이다.
      있기 야(也)
      글자 한 자를 읽고는
      몇 날 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에 잠긴다.
      하늘이 푸른(靑) 줄만 알았는데
      검다(玄)하니..
      몇 날 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런데,
      깨닫고 보니 검은 게 맞다.
      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루 황 (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니라.
      그런데, 그런데.. 
      깜짝 놀랐다.
      천자문에 꼭 있을 줄 알았는데
      없는 글자가 있다.
      동(東), 서(西), 남(南), 북(北)의
      북(北)자가 없다.
      춘(春), 하(夏), 추(秋), 동(冬)의
      춘(春)자가 없다.
      방위와 계절을 뜻하는 
      가장 기본인 글자,
      북녘 북(北),
      봄 춘(春)이 없다. 
      언젠가는 주흥사(周興嗣)에게 
      꼭 물어봐야겠다.
      복녘 북(北), 
      봄 춘(春),
      왜 넣지 않았느냐고..
      ()
      *
      지난 6월 11일 발사된 
      중국의 선저우(神舟) 10호의 
      여성 우주인 왕야핑(王亞平)이 
      실험용 우주정거장인 텐궁(天宮) 1호에서 
      우주는 온통 검정색이고 
      별은 반짝이지 않는다고 했다.
      *
      사진은 청도 운문호(雲門湖)의 여명(黎明)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