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틈만 나면
천자문(千字文)을 읽는다.
책 크기가
손바닥만 하니까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꺼내보고는 한다.
몇 해 전
시장 구경을 하다가
길에서 책을 팔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책이라야
오래 된 옛날 책들 뿐이다.
장화홍련젼,
심청젼, 춘향젼, 구운몽
천자문, 동몽선습,
궁합 보는 법,
토정비결,
지방 쓰는 법..
그외 벼루와 붓 등
문방필구들이다.
오가는 사람들은 많은데
누구 하나 눈여겨 보는 이가 없다.
하기야,
요즘 세상에
그런 코리타분한 책을
누가 읽겠는가.
그 때 사서
지금까지 읽고 있다.
하늘 천(天)
따 지(地) ..
천자문 첫머리인,
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루 황(黃)..
중국 양(梁)의
주흥사(周興嗣:470~521)가
하룻밤에 편집을 끝내고 나니
머리가 하얗게 세서
일명 "백수문(白首文)"이라 부른다는
옛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1000자 250구 125절에
자연自然, 역사歷史, 철학哲學, 천문天文, 지리地理,
인물人物, 윤리倫理, 도덕道德, 처세處世 등
인간사를 두루 뀄으니,
천자문은
한자 문화권이 손꼽는
종합 교양서이자
서사시(敍事詩)라 할 만하다.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宇宙觀)이 모두 다 들어있다.
천자문에
하나하나 주(註)를 달아
다시 편집을 한다면
아마..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을 다 모은 것보다
수백 수천 배는 더 방대한
책이 될 것이다.
매번 느끼지만
주흥사는 인간이 아닌
하늘이 내린
천인(天人)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글자 수가
수십만 자가 넘는데
그 많은 글자 가운데
1000자를 골라
첫머리에
하늘(天)과 땅(地)으로 시작하는
불후의 명작인
천자문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만약 지금에
천자문이 없었다면
이처럼 대단한
사자성어(四字成語)의 천자문을 다시 지을 수 있을까?
읽고 또 읽어봐도
그냥 입이 딱 벌어진다.
하늘 천(天),
따 지(地) ..
맨 마지막에는
있기 야(也)로 끝난다.
우리 인간이
보고 듣고 느끼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이
하늘과 땅에
그대로 있다(存在)는 말이다.
있기 야(也)
글자 한 자를 읽고는
몇 날 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에 잠긴다.
하늘이 푸른(靑) 줄만 알았는데
검다(玄)하니..
몇 날 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런데,
깨닫고 보니 검은 게 맞다.
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루 황 (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니라.
그런데, 그런데..
깜짝 놀랐다.
천자문에 꼭 있을 줄 알았는데
없는 글자가 있다.
동(東), 서(西), 남(南), 북(北)의
북(北)자가 없다.
춘(春), 하(夏), 추(秋), 동(冬)의
춘(春)자가 없다.
방위와 계절을 뜻하는
가장 기본인 글자,
북녘 북(北),
봄 춘(春)이 없다.
언젠가는 주흥사(周興嗣)에게
꼭 물어봐야겠다.
복녘 북(北),
봄 춘(春),
왜 넣지 않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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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1일 발사된
중국의 선저우(神舟) 10호의
여성 우주인 왕야핑(王亞平)이
실험용 우주정거장인 텐궁(天宮) 1호에서
우주는 온통 검정색이고
별은 반짝이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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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청도 운문호(雲門湖)의 여명(黎明)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