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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률이 8.6%에 이르는데 대학졸업까지 미루고 있는 청년들과 장사가 안 돼 한숨 쉬는 자영업자들, 노후 불안에 빠진 은퇴자들은 경제적 이유로 봄을 느끼지 못한다. 안보불안 사태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스산하게 만들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지난 두 달간 장·차관을 비롯한 주요 공직의 수장들이 속속 교체되고 있지만 국민들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한 것도 봄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민생경제 대통령, 한반도 평화 대통령이 돼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는 귓가에서 멀어져 가며, 우리가 모든 걸 대통령에게만 기대하는 심리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국민 스스로 노력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우선 경제 문제만 해도 정부가 20조원 가까운 추경예산을 만들어서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그것은 마중물에 불과하다고 대통령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청년들이 기대하는 괜찮은 일자리는 대기업들의 투자가 있어야 만들어지는 것인데, 지금 대기업 내부에선 세계시장의 불투명과 국내정세의 불안감이 겹쳐서 찬바람만 불고 있다. 삼성전자 한 곳만 1분기에 8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지만 자동차, 조선, 태양광, 해운, 건설은 물론 금융산업에까지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중소 서비스업의 경기도 제조업과 건설업과 마찬가지로 갈수록 힘들어지는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성장 전략인 창조경제야말로 미래창조과학부만 쳐다보고 있으면 새로운 제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인과 기술자들 스스로 산업현장에서 과학기술이나 정보통신기술(ICT)을 응용하려는 도전정신이 있어야 된다. 특히 벤처산업을 지원할 금융산업의 변화가 있어야 가시적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이런 몇몇 사례에서 보듯 동아시아에서 최하위로 추락한 경제성장 위기와 일자리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기업인, 기술자, 근로자와 노동조합 같은 경제주체들이 80%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나머지 20%가 대통령, 국회, 정부기관들이 하는 것이라는 ‘민본주의 의식’이 필요하다.
봄을 스산하게 하는 북핵 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구도를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색다른 대북정책이 제시됐지만 지난 20여 년간 북한의 대남 협박전술이나 우리의 선(先) 핵 포기 주장만 되풀이되고 있을 뿐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국민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이뤄 나가기 위해 국민적 비전과 분담 역할을 자임해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런 노력을 토대로 미·중·일·러를 꾸준하고 성의 있게 설득해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그들의 국익에 도움이 되고 동아시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확신을 줘야 할 것이다.
봄이 스산스럽더라도 겨울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여름이 올 것이다. 이것이 계절의 법칙이고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이 봄을 봄같이 맞이하려면 경제와 안보에 순리가 있어야 목전의 작은 변화에 불안해하지 않고 미래의 큰 희망을 키워나가는 행복한 국민이 될 것이다.
강봉균 군산사범학교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행시 6회(1969년). 관료 생활 31년 동안 정보통신부·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3선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