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千江에서 달을 보다] 반룡사 율장연구원 원장 철우 스님
- 지계토대 위 청정승풍 불어야 ‘앗사지 비구’ 배출
- 2010.11.01 11:20 입력 발행호수 : 1070 호 / 발행일 : 2010-11-01
종법은 알아도 갈마법은 몰라
계율 모르는 게 아니라 등한시
올해로 조계종 단일계단이 출범된 지 30년이 되었다. 계사로부터 비구(니)계를 받아야만 공식적인 ‘스님’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니 승가에서의 ‘계(戒)’는 ‘생명’과도 같다. 그렇다면 단일계단 30년을 맞은 조계종의 지계정신은 어느 정도인가. 최근 ‘계율’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도일 스님은 이렇게 주장했다.
“비구계는 승려가 되는 관문인 동시에 평생을 실천해야 하는 비구의 덕목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승단에서 인식하는 비구계는 단지 승려가 되는 요식행위 정도로 그치고 있다. 왜냐하면 비구가 된 뒤 계를 잘 배울 수 있는 전체 초보 비구들에 대한 보편적 교육제도가 없고, 계를 범하여도 갈마하고 참회를 구하여 청정을 회복할 수 있는 승가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구가 되기 위한 비구계는 있어도 비구계의 지범개차를 위한 제도는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비구승가로서의 기능은 마비되었다 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도일 스님은 ‘비구계’는 공식 스님이 되는 ‘자격증’ 정도로 추락됐다고까지 했다. ‘계를 스승으로 삼으라’는 부처님의 유언에 비춰볼 때 이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본지에 ‘계율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철우 스님은 최근 지면을 통해 “우리가 율원을 하는 것은 주위에서 생각하듯 명예와 이양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만, 생각이 바르고 행이 바른 수행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길러서 계율을 꽃 피우자는 생각에서였다”고 토로한 바 있다. 도일 스님의 ‘일갈’과 철우 스님의 ‘고백’ 사이에 흐르는 그 무엇인가가 감지되었기에 철우 스님을 뵙기로 했다. 도일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반룡사의 ‘율장연구원’이 개원되기 직전 경북 고령으로 향했다.
1996년 파계사에 영산율원이 개원되면서 철우 스님은 율원장을 맡아 후박을 양성했다.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의 율원장이 배출됐음은 큰 성과다. 영산율원에서 머문 14년 동안 철우 스님은 ‘율사’라는 고독한 길을 걸으면서도 70권의 율장전서를 완간했고, 사분비구(니)계본강의초와 율학논문집, 사미율의찬요, 등의 참고서도 간행했다. 무엇보다 지난 2009년에는 1000쪽이 넘는 분량의 4권이 한 질로 된 현토, 번역 사분율 60권을 완간하기도 했다. 1967년 해인총림 동안거 때 처음 율장을 접하며 ‘후박들만이라도 책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며 세운 원력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철우 스님에게 도일 스님의 일갈을 전하자 “삼장 가운데 계율에 대한 관심이 가장 적고, 계정혜 삼학 중에서도 계의 비중이 미미한 건 사실 아니냐”며 되물었다. 무엇보다 철우 스님은 “종헌종법은 알아도 갈마법은 모르는 게 우리 승가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현 조계종 풍토를 보면 계정혜 삼학 가운데 정혜만을 강조할 뿐 ‘계’는 논하지 않는다. 왜 일까. 어떤 이는 지눌 스님의 ‘정혜쌍수’를 들어 이를 대변하려 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지눌 스님이 ‘계’를 등한시 했던 게 아니다. ‘계’는 가장 기본이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지켜야 하는 것이기에 애써 주장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스님은 영명연수 선사의 가르침을 들어 보였다.
“계율을 지닌다는 것은 부처님의 삶을 실천하려는 것이요, 경전을 보는 것은 부처님의 이치를 환하게 알려는 것이요, 좌선하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 경계에 도달 하려는 것이라 했습니다. 지계 없이 어떻게 부처님의 이치를 꿰뚫어 부처님 마음 경계에 이른단 말입니까? 지계 없는 참선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파계를 무슨 무용담으로 쯤 여기며 자랑하는 사람들은 각성해야 합니다.”
철우 스님은 출가를 왜 했는지부터 다시 돌아보라 한다. 사미(니)계와 비구(니)계를 받았다고 스님이 다 된 양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요, 계를 지키는 않는 출가는 머리카락 깎은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제 저녁 해질녘에 봤을 때는 상투 튼 촌로였는데, 새벽예불 올리고 아침공양 할 때 보니 어간에 앉은 큰스님이더라는 말은 출가를 너무 쉽게 생각한데서 비롯된 말입니다. 수행인은 세속에서 하는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버려야 합니다. 얼마나 버렸느냐에 따라 좋은 과(果)를 맺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몸이 욕락을 즐겨 달란다고 해서 욕락을 즐겨서야 되겠습니까? 아침예불 끝에 ‘서리같이 엄한 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라며 부처님 전에 약속하지 않습니까.”
재물 탐하면 혜명 사라지는 법
세속 일 버린 만큼 果 얻을 것
옛 스님들은 세속에 물들까봐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으려 산문 밖 출입을 자제했다. 그 어떤 경계와 마주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경지가 되었을 때 산문 밖 출입을 자유롭게 하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수 년 동안 두문불출하지 않은 스님을 존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게 아닌가.
초계(草繫) 비구를 다시 한 번 떠올릴 때다. 한 비구스님이 길을 가다 도둑을 만났다. 빼앗을 게 별로 없자 도둑들은 옷만 벗겨서는 비구를 풀에 매어 두고 가버렸다. 비구는 풀이 끊어지면 풀도 생명을 잃은 것이라 염려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더위와 굶주림을 참으면서 사람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던 것이다. 때마침 사냥을 나왔던 왕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 풀어주었다. 그 비구에게 사연을 들은 왕은 크게 감동을 해서 불교에 귀의했고 그 이후로는 사냥을 금했다고 한다.
“수행자에게도 네 가지 행하기 어려운 법이 있습니다. 욕됨을 참기 어렵고, 가진 것 많아도 베풀기 어렵고, 어려움을 만나면 정법을 행하기 어렵고, 부귀해도 교만·명예에 얽매이지 않는 게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경도 넘어서려 하고, 넘어설 때 진정한 수행인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타오르는 불을 종이로 담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타오르는 불을 무엇으로 담을 수 있는 것일까. 스님은 ‘재물을 탐하면 지혜를 잃고 번뇌도 늘어나는 만큼 탐착심부터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소유’를 말하는 승가에서 ‘탐착’이라는 말 자체를 쓰는 것조차 외람 된듯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부처님 당시처럼 걸식하고 있지 않습니다. 총림이나, 암자에 살며 각 지역은 물론 해외에까지 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돈을 사용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마저도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줄 알고, 부끄러운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정진의 길을 지속해서 걸을 수 있습니다.”
방거사는 자신이 모은 재산을 강에 모조리 수장시켰다. 그가 재물을 물속에 버리려 하자 주위 사람들이 이를 만류했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든지 불사에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었다. 방거사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답변했다. ‘내가 이미 원수라고 생각하고 버리면서, 어찌 다른 사람에게 주겠는가? 재물은 몸과 마음을 근심스럽게 하는 원수다.’
“세간의 재물을 탐하면 출세간의 법재(法財)를 손실합니다. 지혜의 목숨을 죽여 쇠잔하게 하고 맙니다. 보물을 모으면 혜명이 없어지고 번뇌가 늘어나며 바른 생각이 상합니다. 차라리 불구덩이에 들어갈지언정 결코 재물을 탐하지 말라 했습니다.”
계 없는 참선, 깨진 독 물 붓기
정법 진작에 힘 더하고자 연구
철우 스님은 우리 승가에도 ‘앗사지 비구’가 많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출가하지 전 어느 날 아침 걸식하고 있는 부처님의 젊은 제자 앗사지 비구를 보았다. 위엄 있으면서도 너무도 편안해 보였다. 순간, ‘만일 이 세상에 성자라 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은 그 제자 중 한 사람일 것’이라 확신하며 스승이 누구인지 물었다.
앗사지 비구는 자신은 부처님의 제자이며 부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사리불과 목건련은 그 가르침을 들려 달라고 간청했다. 앗사지 비구는 ‘모든 것은 원인에 의해 생긴다 했습니다. 부처님은 그 원인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의 멸에 관해서도 역시 그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앗시지 비구의 이 한마디에 사리불과 목건련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부처님의 제자는 앗사지 비구와 같은 풍모를 지녀야 합니다. 고가의 공양을 즐긴다 해서, 값비싼 승용차 타고 다닌다 해서 비구의 위엄을 보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시대의 앗사지 비구는 승가, 나아가서는 사부대중이 배출시키는 겁니다. 승가가 청정할 때 앗사지 비구가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제자가 잘 못 해도 스승은 꾸짖지 않고, 도반이 잘 못해도 문중의 힘으로 감싸 안으려 한다면 앗사지 비구는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승가가 귀담아 들어보아야 할 대목이다. 스승은 제자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조계종의 문중은 진정 불교 진흥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제자가 스승을 찾아오면 스승은 물어야 한다. ‘계를 잘 지키고 있는지’를 말이다. 스승도 계를 지키고 있지 않으니 제자에게 묻지도 않을 것이라 추론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금의 ‘문중’이 ‘승풍진작’을 위한 문중인지, ‘세력규합’을 위한 문중인지도 자문해 보아야 한다. 적어도, 일주문 밖에서 이를 지켜보는 시각은 후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의구심을 털어버려야 할 당체는 승가다. 물론, 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재가에게도 있지만 승가 스스로 정화의 노력을 보여야 한다. ‘아이들은 사회가 키우는 것’이라는 말처럼 ‘앗사지 비구도 승가가 배출 시키는 것’이리라. 승가가 청정하면 그만큼의 많은 청정비구가 세상에 선을 보이고, 그 비구를 본 대중이 ‘출가’의 원력을 세우지 않겠는가라고 철우 스님은 생각하고 바라고 있는 것이다.
청정한 모습서 출가원력도 생겨
계율 외면하는 풍토부터 바꿔야
“희망은 있습니다. 진흙이 많을수록 큰 불상을 만들 수 있다 했습니다. 계율을 지키는 우리의 여건이 어렵다 해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체념이나 열등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의 생각이 더 큰 병입니다. 계율을 외면하려는 그 마음이 더 큰 병입니다. 이는 언제라도 한 생각 돌리면 바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철우 스님이 율장을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스님이 ‘계율칼럼’에 쓴 한 대목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스님들이여, 지금도 바람이 있다면 ‘계율이 번창하여 정법이 오래 머무르는 일에 애쓸 수 있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또 계율을 공부하는 후학들에게도 ‘계율을 공부하여 청정승가를 위하여 회향할 수 있도록 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싶다.”
선가귀감에서도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삼업(三業)을 지키지 않는다. 함부로 놀아 게을리 지내며, 남을 깔보아 따지고 시비하기를 일삼는다’고 했다. 초계 비구가 왜 풀을 끊지 않았겠는가. 마음의 계율을 깨뜨리면 온갖 허물이 함께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란하면서 참선을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자신의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고,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밑 빠진 그릇에 물이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 거짓말을 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은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모두 악마의 길을 이룰 뿐이다.”
서산휴정의 일갈을 뼈 속에 새겨야 할 것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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