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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江에서 달을 보다] 연꽃마을 대표이사 각현 스님

淸潭 2012. 5. 7. 16:33
[千江에서 달을 보다] 연꽃마을 대표이사 각현 스님
 
1000원 후원 이끌어 한국대표 노인법인으로 ‘우뚝’
 
2010.08.25 10:39 입력 발행호수 : 1061 호 / 발행일 : 2010-08-25

자원봉사 1만 4000명 확보
연꽃마을 생동의 큰 원동력

“이 세상의 모든 힘 중에서 복의 힘이 제일이다. 그러나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봄에 씨앗을 뿌린 사람이 가을에 거두는 것처럼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다.”
『아함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이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깨달음’과 함께 불자로서 가야 할 또 하나의 길이 이 속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량없이 복을 지어가며 궁극의 지혜를 완성해 가는 것이 바로 불자가 세워야 할 원력임을 『아함경』은 제시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을 지난 20년 동안 이끌어 온 각현 스님은 2008년 저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선보인바 있는데 서두에 쓴 한마디가 지금도 생생하다. 해야 할 일은 ‘업력(業力)’이고, 하고 싶은 일은 ‘원력(願力)’이라고 전제한 스님의 일언은 이렇다.

“내가 베푼 작은 사랑 때문에, 내가 만든 작은 시설 때문에, 누군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하고 싶은 일을 가슴에 안고 업파(業波)에 넘실대며 살겠습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스님의 업력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연꽃마을을 통해 복지활동을 펼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스님의 원력은 무엇일까?

연꽃마을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대표 노인복지 전문법인이다. 1989년 성수 스님에 의해 설립된 연꽃마을은 각현 스님이 이어 받으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는데, 그 해가 1990년이니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셈이다. 현재 연꽃마을 산하시설은 69개이며 종사자 수만도 700여 명에 이른다. 양·한방 병원인 파라밀요양 병원을 비롯한 병원과 의원만도 전국 6곳에 9개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안성종합복지타운 내 파라밀 병원의 경우 보건·복지·의료 연계체계를 갖추고 있어 한국의 선진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단돈 천원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각현 스님이 복지 원력을 처음 세운 건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계사 주지를 맡았던 각현 스님은 돌연 홍콩 유학길에 오른다. 불현듯 ‘앉아서 시주금 셈하는 자신’이 처량해 ‘새로운 공부라도 해 보자’는 심산으로 홍콩 중문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각현 스님이 홍콩에서 체득한 것은 당초 공부하고자 했던 ‘중국어’가 아니라 ‘불교복지’였다. 고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찰이 복지시설 속에 녹아들어 있음을 간파한 각현 스님은 ‘바로 이것이구나!’하고 무릎을 쳤다.

복지 속 포교, 불교 속 복지의 홍콩불교를 생생하게 체험한 것이다. 생활불교를 통한 한국불교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예견한 때가 바로 그 때였다. 1982년 귀국한 각현 스님은 1984년 동국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 전문 지식을 쌓아갔다. 연꽃마을과의 인연은 이후 1990년에 이르러서야 닿았다. 법주사 청동미륵대불 불사를 원만하게 회향한 스님은 새로운 고민에 몰두했다.

나눔-봉사 의식 확대될 때
세상은 더 맑고 향기로워져

 
지난 6월 연꽃마을 주최로 열린 효사랑마라톤대회에서 참가자를 격력하고 있는 각현 스님.

“도심 속 포교불사, 산 속 수행, 노인복지사업. 이 세 가지 갈림길에서 몇 달을 고민했습니다.”
결국 각현 스님은 노인복지사업을 택했다. 1990년 8월 연꽃마을 대표이사직을 맡으며 새로운 장도에 올랐다. 그러나 막막했다. 연꽃마을 대표이사직을 맡았지만 기반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당시 양로원이라 하면 서울, 대구, 제주도 정도에나 있었을 때였다. 더욱이 불교 사회복지 특히 노인복지 분야는 타 종교에 비해 아주 열악했던 시절이었다.

돈도, 능력도, 후원자도 없이 어떻게 노인복지사업을 할 것인가는 난제 중의 난제였다. “불자들의 원력으로 무료양로원을 건립하자는 캠페인을 전개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지요. 수년이 걸리더라도 불자들의 성금으로 불교 최초의 양로원을 마련해 보겠다는 각오 하나로 서울로 향했던 겁니다.”

‘무료양로원 건립 모연문’과 함께 ‘연꽃마을 후원회원 신청서’를 들고 법회가 열리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지 달려갔다. 신청서에는 ‘마을마다 연꽃마을, 마음마다 연꽃마음’이라는 글귀가 있었는데 이 글귀가 큰 힘이 되었다.
“매월 1000원의 후원금을 부탁드렸는데 5000원, 1만원의 후원금을 적어 주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단돈 1000원이라도 보시하는 마음이 곧 ‘연꽃마음’이라는 의식을 한 듯 싶습니다.”

후원회 모집 3개월 만에 1만여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양로원 기공식이 거행 됐고, 양로원이 완공됐을 때에는 회원이 2만 5000여 명으로 늘었다. 교계에서 양로원 건립 불사를 해 본적이 없던 당시를 감안하면 이러한 회원 확보와 동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1000원 후원에 얽힌 사연이 하나 있다. 매일 우체국 통장으로 1000원을 후원하는 분이 있었다. 월요일이면 2000원이 입금됐다. 일요일 몫까지 챙긴 것이다. 각현 스님과 직원들은 이 후원인에 대해 예의 주시했다. 간혹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많은 돈을 입금하는 후원인도 있었지만 이처럼 매일 1000원을 후원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 달, 두 달, 6개월, 1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다. 그 사연이 궁금해 인연 있는 기자에게 부탁해 수소문해 찾았다. 주인공은 우체국의 우편배달부! 인터뷰 불가 입장을 보인 그에게, 비보도 전제 조건으로 매일 1000원을 보낸 이유라도 알고 싶다고 하자 짧게 털어놓았다.

孝 실천은 만 가지 덕의 근본
교계 주도 속 사회로 확대해야

“매일 똑같은 시간에 돈을 입금하고 나면 마치 기도하는 마음이 되어서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퇴직할 할 때까지 계속 보내고 싶다.”
‘1000원 후원’과 ‘연꽃마음’ 두 사이를 관통하는 그 무엇이 있을 법하다.
“부처님 경전 중 연꽃을 상징해 제목으로 쓴 경전은 흔하지 않습니다. 대표적 경전이 『법화경』일 겁니다. 『법화경』은 산스크리트어로 ‘묘한 백련의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중국 사람들은 이를 ‘묘법연화경’이라 했지요. 혼탁한 곳에 있으면서도 항상 맑은 처렴상정(處染常淨)의 의미를 안다면 묘법연화경에 담긴 뜻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법화경에서 연꽃은 진리와 보살을 상징합니다. 진흙탕 속에서도 고고한 자태를 보이는 연꽃처럼 번뇌, 갈등, 욕망, 고뇌가 있는 이 사바세계에서도 물들지 않고 진리를 밝히고 실천하는 보살의 원력을 세우라고 『법화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를 맑게 하는 작은 실천, 정토구현을 향한 보살의 작은 실천을 각현 스님은 ‘1000원 후원’을 통해 이끌어 낸 것이다. 각현 스님은 연꽃마을 대표지만 월급이 없다. 돈 문제에 관한한 깨끗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데 거의 강박에 가깝다.

보건복지부에서 연꽃마을을 감사 나온 적이 있었다. 복지법인을 통해 사익을 챙기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일던 시절, 연꽃마을도 그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감사를 나온 사람들은 단 며칠 만에 되돌아갔다. 감사 중 각현 스님이 월급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각현 스님은 ‘삼물(三物)이 청청하면 공덕이 따른다’는 경전의 말씀을 강조한다.

“주는 사람의 마음, 받는 사람의 마음, 주고받는 물건 또한 청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 청정하지 않으면 공덕이 따르지 않습니다.”
각현 스님은 자본시장 사회에서 부유와 빈곤의 양극화 현상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 진단한다. 문제는 그런 양극화 현상을 어떻게 좁히는가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숙제로 남아 있다. 스님은 ‘나눔과 봉사’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소유와 이익에만 치중하면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겁니다. 내가 가진 것을 없는 사람에게 나누고자 한다면 양극화는 그나마 줄어들 겁니다. 물질만 나누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나누는 것도 나눔이요, 보시입니다.”

연꽃마을은 1999년 처음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기 시작해 현재 1만 4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를 확보해 놓은 상태다. 법인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는 물론 산하시설에서 일손이 필요 할 때 언제든 달려와 팔을 걷어붙인다. 처음 자원봉사자 모집 때부터 전국 최초로 자원봉사자 명단을 데이터베이스화 하고 봉사시간에 따라 혜택을 부여했다. 산하 시설간의 상호협력 속에서 연대감을 고취시키는 자원봉사자의 체계적인 시스템은 연꽃마을의 사업을 극대화 시키는 원동력이다.

수행은 원력으로 남겨 두고
해야 할 일 복지에 전념할 뿐

 
연꽃마을이 운영 중인 파라밀요양병원 전경.

“우리나라도 자원봉사자 참여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 다행입니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해 아직 갈 길이 멀지요.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전 국민의 46%가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36%, 일본은 32%인 반면 우리나라는 12%입니다.”

불교의 ‘보시정신’이 사회의 ‘나눔의식’으로 확대 돼 이 사회가 더욱 풍성해지기를 각현 스님은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이 연꽃마을을 통해 이 사회에 실현하고자 펼치는 운동이 하나 있다. 바로 ‘효(孝)의 사회화 운동’이다. 각현 스님은 효의 실천이 다시 재개될 때 노인복지 문제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복지시설이 아무리 훌륭해도 효 실천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노인들의 정신적 공허함을 채워주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소외와 고독의 문제는 복지시설로만 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효의 사회화만큼은 불교가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효는 만덕(萬德)의 근본이요, 만행(萬行)의 근원이며, 가르침의 시작입니다. 효의 실천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가꾸는 대안입니다. 효의 대상을 나의 부모에서 시작해 가족과 친족 그리고 우리가 사회 모든 노인들로 확대시켜가야 합니다. 이런 사회야 말로 복지국가요, 정토사회가 아니겠습니까?”

각현 스님은 향후 장애인복지 사업도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중·서민층에 맞춘 실버타운 조성도 계획하고 있다. 각현 스님의 복지사업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홍콩 유학시절 불교복지 원력을 세운 후 30여 년이 흘렀다. 연꽃마을만도 20년을 이끌어 왔다. 누가 보아도 대단한 원력을 성취하고 있는 듯해 보이지만 스님은 이를 ‘업력’이라 한다.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스님이 하고 싶은 일은 수행인 듯싶다.

“처음 복지사업을 한 번 해보겠다고 했을 때 불국사 월산 스님이 이르셨지요. ‘후회할 거다. 선방에서 수행해라!’ 아직도 산사에서 들려오는 경 읽는 소리가 정겹고, 면벽구도의 수도자는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옛 선사들의 행적을 흉내 내고도 싶었고, 이 시대의 부루나 존재도 꿈꾸었지요. 아직도 감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니 원력으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새삼 스님의 저서 서두에 쓴 글이 다시금 되새겨 진다.

‘내가 베푼 사랑 때문에, 내가 만든 작은 시설 때문에, 누군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하고 싶은 일을 가슴에 안고 업파에 넘실대며 살겠습니다. 소승은 오늘도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마음의 방랑자가 되어 노인복지 현장을 맴돕니다. 모든 세대가 함께하는 사회를 위하여….’

스님은 연꽃마을 후원인들과 함께 복을 지어가고 있다. 그 속에서 ‘모든 세대가 함께하는 사회’, ‘연꽃마음으로 가득 찬 연꽃마을’을 가꾸어 가고 있다. 시대 흐름에 걸 맞는 지혜를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각현 스님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구도자의 길이요, 수행인의 길이 아니라 누가 말하겠는가. 스님이 내어 보인 연꽃이 진향 향을 피우고 있다. 천리, 만리를 가고 있는 연꽃향이 세상을 조금씩 더 맑게 하고 있다.   
채한기 상임 논설 위원 penshoot@beopbo.com


각현 스님은

1968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출가. 1986년 법주사 부주지, 조계종 9, 10, 11대 중앙종회 의원, 청주불교방송 사장, 법보신문 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연꽃마을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2008년 불교인권상, 제23회 불이상을 수상했다.